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작품에서 배우는 인문학적 깨달음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1757년 11월 28일 ~ 1827년 8월 12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세상, 융합의 애플 스마트폰을 창조한 스티브 잡스가 영감을 받은 것을 무엇일까요?
뉴턴이 창조한 과학기술의 절대적인 공식이 반드시 절대적이지 않다는 블레이크의 냉소적인 시선이 <뉴턴>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수많은 뉴턴의 신봉자들 과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문제작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뉴턴을 비판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만유인력의 우주 법칙을 해석, 발견하고 현대 과학기술 혁명의 뿌리를 만들었던 위대한 과학자, 뉴턴을 풍자할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요?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예술가로서 인문학과 예술은 과학이 감히 넘어설 수 없다는 냉소를 그의 작품에다 퍼부은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영국 화가, 삽화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블레이크는 우아한 선의 사용과 선명한 색채, 기상천외한 형상과 엉뚱한 상상력으로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미술은 존 밀턴의 ‘실낙원’의 삽화로도 유명합니다. 혁신적이고 신비로운 그의 작품은 정말 감상자들을 빠져들게 만듭니다.
상기 작품, <뉴턴>은 영국의 시인, 화가, 판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1795년에 처음 완성했지만 1805년에 재작업하여 재인쇄한 작품입니다. 1795년에서 1805년 사이에 만들어진 12개의 "대형 컬러 인쇄물" 또는 "대형 컬러 인쇄물" 중 하나이며, 여기에는 성경 통치자 느부갓네자르에 대한 그의 일련의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해조류로 뒤덮인 바위 위에 벌거벗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바다 밑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관심은 두루마리 위에 나침반으로 그가 그린 도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블레이크의 계몽주의 반대는 뿌리가 깊었습니다. 식물성 눈의 시력과 영적인 시력을 분명히 구분한 블레이크에게 뉴턴의 광학 이론은 특히 모욕적이었습니다.
뉴턴은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과 존 로크와 함께 블레이크의 영원한 삼위일체에 편입되었습니다
뉴턴(1642.12.25.~1727.3.20)은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촉발된 17세기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687년에 출판된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근대 역학과 근대 천문학을 확립했다. 그는 지구와 사과 사이에, 지구와 달 사이에, 태양과 목성 사이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히고, 이것과 자신의 3가지 운동 법칙, 즉 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결합해서 행성의 타원 운동은 물론 지상계와 천상계의 여러 운동들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뉴턴은 1660년대부터 빛과 색깔에 대한 독창적이고 근대적인 이론을 주창했고, 이를 1704년에 『광학』에 집대성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1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변화들은 뉴턴이라는 하나의 수렴점을 거쳐 근대과학이라는 통일된 체계로 태어났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이작 뉴턴 [Sir Isaac Newton] -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혁명의 완성자 (과학 인물 백과, 홍성욱)
영국의 런던 국립도서관에 파올로치의 조각상이 <뉴턴>는 블레이크의 그림을 조각하였습니다.
에두아르도 루이지 파올로치( 1924년 3월 7일 ~ 2005년 4월 22일)]는 조각과 그래픽 작업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예술가입니다. 그는 팝아트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런던 국립도서관 앞의 조각상>
이 작품이 런던 국립도서관에 세워진 의미가 무엇일까요?
과학기술과 인문학, 예술이 융합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아니겠습니까?
과학은 철학에서 태동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밀레토스 학파부터 시작된 고대 자연철학가, 혹은 고대 인도의 철학과 천문학을 동시에 탐구하던 지혜를 전수하던 철학가들이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이 세상을 신을 벗어나서 인류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피타고라스 또한 철학자였으며, 근세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도 수학자였습니다.
과학이 철학에서 분리된 것은 18세기 근세에 이르러서입니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철학은 인간의 이성과 가치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20세기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서 아인슈타인도, 또한 천문학의 위업을 이룬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문물리학자인 칼 세이건도 철학적인 질문으로 우주과학을 풀어갔습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은 원래 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 뿌리입니다. 인문학과 과학이 떼어놓고 다툼이 생길 필요가 없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과학기술, 계몽주의를 조롱한 것이 아니고 융합되고 통합되기를 외쳤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고 인문학의 기회가 되고 있는 이유들입니다. 심지어 양자역학, 양자중력, 양자 물리학이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로 풀 수 없고 관찰할 수 없으며 해결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류의 인문학 분야는 과학적 접근과 나란히 서로 보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21세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인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학문의 융합을 통해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에 인문학적 요소를 적용하여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거나, 빅데이터 분석에 인문학적 시각을 더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시도가 가능합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에 많은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로 인한 환경문제나 윤리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인류의 영성 에너지와 상상력의 힘을 이해하는데 과학적인 발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지성과 영성의 힘을 성장시키는 인문학의 우주 안에 있습니다.
인문학적인 생각들, 사고의 날개들은 과학기술의 세상과 미지의 우주를 날아가는 새입니다. 그 새의 동력은 과학기술이 미치지 못하는 무한한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지점입니다. 통섭, 융합, 통합된 만유인력의 법칙을 블레이크 화가의 창조의 세계에서 배우게 되는 지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상력은 우리의 지식이 닿지 않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 칼 세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