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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노동이 될 때​

-돌봄이 필요한 시대

by Sapiens


예전에는 아이가 자라 유치원을 가듯이 나이가 들면 마을에서는 노인정에 나가 여가를 보내던 시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저출생과 맞물려 평균수명 연장은 노인들이 골칫거리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으면서 돌봄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인 주간 돌봄 센터, 목욕차제도 실시 등 다양한 제도를 시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제도들이 가족들의 돌봄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거의 가족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국가가 마련한 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지만 복지제도는 성장하고 있다.



사실 돌봄이 노동이 된 지 오래다. 생각의 차이가 제도를 바꾼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예로부터 공경사상이 몸에 밴 국민으로서 노인을, 병자를 돌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노동의 가치를 자본으로 환산하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고 자본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사고의 변화는 불가피해지고 있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무가치한 행위로 전락하고 있다.



사실 가정을 이루고 출산과 양육을 하는 것 자체가 노동이 근간을 이룬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없다면 가정의 가치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 아프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갈 수 있는 힘, 그것을 돈으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가정이라는 둥지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이 노동으로 치환되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킬 수 있을까? 물론 복지제도는 필요하다. 그러한 제도를 악용하며 현대판 고려장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유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니다. 무에서 우러나올 수 있을 때 또 다른 유를 창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준다. 그때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것이 예로부터 이어져오던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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