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비가 내린다. 귓속으로 빗소리가 걸어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창가로 향한다. 유리창 위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들이 마치 하염없이 일어나는 과거의 아픔처럼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후련한 마음이 찾아올 것이기에 그도 그녀도 마주하며 이 순간 통증을 쏟아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창가에 화분이 앙증맞게 앉아있다. 눈물을 훔치는 사이 숙인 고개 사이로 삐죽 돋아난 잎들이 활짝 웃는다. 싱싱한 초록이 주는 느낌일까? 비가 와서 유난히 돋보이는 네 모습이 부럽다. 그녀도 한때는 그처럼 아름다운 청춘의 마디를 걸었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 시절이 지난 지금, 찾아온 편안함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 한 잔이 주는 여유로움과 명상을 할 수 있는 그녀는 은은한 미소로 바라본다. 흐르는 피아노 연주는 공간을 가득 메우며 내면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녀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지나쳐 버렸을 순간이 이제는 시선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눈다. 사물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기적을 맛본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매 순간 살아있으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들이 그녀 자신을 새롭게 빚어주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과 교감을 한다는 건 축복이다. 시야를 넓히기도 좁히기도 하며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보이는 것들의 겉모습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어서.
그녀도 예전에는 삶의 힘듦과 아픔으로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비가 그치면 반드시 다시 화창해진다. 그 이치를 알아차린 순간 이제는 고통을, 아픔을 두려워하며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순간 흐르는 비가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며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메마른 대지를,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선사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창밖에 부딪히며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한참 동안 그렇게 빗줄기와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