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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선물

-삶의 조각들

by Sapiens


딸아이가 병가를 연장해서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그제 공항에서 픽업한 상태이다. 다시 만나는 딸과 나는


“우리 내일부터 뭘 할까? 이번에는 제대로 휴가를 보내보자.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얘기해 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신난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딸아이가 내 방으로 와서


“엄마, 스위스 마을에서 플리마켓을 하네요.”


“그럼 가볼까?”


드라이브할 때 가끔 들리던 곳이었다. 우리는 옷을 챙겨 입고 마트에서 생필품들을 미리 사고 스위스 마을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우리에겐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병가가 3개월째이다. 손가락 골절로 이제 재활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 시간은 딸아이에게 주어진 삶의 안식년과 같은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얼마큼 지나고 나면 기억의 파편들이 오래 남겨질 것임을 서로 인지하고 있었다. 제주의 모든 소품샵 투어를 하며 함께 제주 구석구석을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다크투어 등도 함께 했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도착한 스위스 마을은 한산했지만, 스피커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에 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주말의 햇살이 플리마켓을 화창하게 열고 있었다.


진입로를 따라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사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마켓 하나하나를 구경하며 언덕을 올랐다. 체험들이 다양했다. 처음 맞이하는 부스에는 향으로 마음을 알아보고 조향사가 되어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해보았다.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향에 관심이 많은 터라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나 보다. 자리를 이동하고 가다 보니 캠퍼스에 그림 그리는 체험이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이들이 체험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도전해 보았다. 홍대에서 친구와 체험해 본 딸아이가 앞치마를 챙겨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엄마와 아이가 바뀐 듯 나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림을 그리며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나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주인장이 플리마켓 기획자까지 데리고 와서는 인사를 시켜주신다.


“무슨 일을 하세요?”


나는 딸아이에게 가방에서 내 명함 하나를 건네 달라고 했다. 그리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또 다른 인연을 맺고 있었다. 주인장과 딸아이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림이 마르는 동안 또 다른 부스로 이동했다. 둘러보다 보니 두 노부부가 운영하는 커피 부스가 있었다.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자석에 끌리듯이 우리는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맞이해 주는 넉넉함이 푸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원두 이야기며 자신이 로스팅 작업을 10여 년 해왔다는 등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노부부의 살아온 흔적 속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꺼내놓는 일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포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바로 옆 광장에서는 한 젊은 여성이 개성 있는 목소리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한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곳 플리마켓은 주말마다 열린다고 한다. 생각하지도 못한 발걸음이 이런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어 주다니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는 순간이다. 행복은 무심히 찾아온다는 말처럼 딸아이와 나는 친구가 되어 이 순간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새로운 경험은 오감을 자극하고 뜻밖의 감정들을 생성해 준다. 그 속에서 자신이 가진 색다른 기분을 누려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로운 장소에 자신을 두려고 하는 편이다.


딸아이와 그 밖의 다양한 체험을 더 하고 구경하며 가방과 앞치마도 구매했다. 하루의 장면 장면들이 완벽하게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이었다. 찍힌 사진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묻어나는 웃음 끝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조각이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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