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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화의 가벼움

-화해

by Sapiens


젊은 시절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드는 것일까? 사실 살다 보니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게 하는 포용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살아감에 있어 공짜는 없었다. 수많은 부딪힘 속에 멍이 들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 감정의 소비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가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 동네 마트에서 한 친구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친구의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이후 우리는 재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친구와는 소소한 감정으로 날카롭게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난 후 연락이 끊긴 경우였다. 하지만 서로 거리를 둔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변화된 의식 속에서 다시 만난 친구의 앞에서는 예전의 상처가, 아픔의 기억이 희미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희미해진 기억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내면의 내공이 더 단단해졌음을 알게 해 주었다.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부딪힘 속에 자신이 놓여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의 고통스러운 사슬이 되어 자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다른 해석 속에서 자신을 좀 더 편안하게 둘 수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화를 그냥 삼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점화되는 화를 누그러트리거나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생성되는 화를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요즘은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마음이 아픈 사회, 치료가 필요한 시대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신경정신과 병의원들이 즐비하게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일일 것이다. 마음과 정신이 병들고 아프다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물론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다. 모든 상황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나의 마음은 어떤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까? 누군가 때문에 또는 자신의 행위와 올라오는 작은 감정에 매몰되어 순간이 주는 기쁨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감정은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도 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감정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은 자신을 작은 정원 속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 속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과 대화하고 감각을 세워 다양한 촉수를 사용할 수 있다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를 잊게 되는 경우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친구와 다시 재회하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 시간이 올 때 나는 그녀를 맘껏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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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