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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약사 Sep 22. 2022

로또 당첨금보다 값진 종이 한 장

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11

어쩌다보니 장수생

약대 입학 전 나의 스펙은 수능 시험 2번, PEET(약학대학 입문시험)를 3번 응시 장수생이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벗고 20대 초중반까지 엉덩이 힘으로 시험과 사투를 벌인 끝에 약대에 입학한 사람이 바로 나다. 몇 번의 시험을 낙마했었기에 ‘공부가 나의 길이 맞는 건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다른 길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난 공부로 나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이 열망은 수능 재수생 신분에서 벗어나 대학 신입생이 되기 직전 활활 타올랐다.    

 

어느 날 아버지의 부름에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평상시에 소통이 활발한 부자관계가 아닌지라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긴장되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들아. 공부로 너의 삶을 건강하게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을 택하거라.”


 커뮤니티에서 ‘1형 당뇨인’이기 때문에 면접 이후 회사에서 함께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회사는 같은 조건일 때 건강에 이상 없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롭다. 뼈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다. 또 워라벨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추가 업무와 야근은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버지는 당신의 삶보다 나의 미래에 대해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건강을 책임지며 살 수 있는 최적의 길이 공부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였다.    

 

 아버지는 매주 로또를 샀다고 한다. 불안정한 내 미래를 위해 금으로 편의점이라도 차려 줄 생각이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에게 아버지의 꿈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걱정을 끼쳐야만 하는 나의 처지가 서글펐다. 내가 부모님에게 짐이 되는 자식인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남자는 몸만 건강하면 입에 풀칠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공사판이나 현장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하지만 롤러코스터같이 급격한 혈당 변화를 겪는 1형 당뇨인은 신체활동에 따라 그 변화가 더 심해진다. 그럼 저혈당 빈도가 높아져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무엇을 할 때 지금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을 해야 능률이 오르는 법이다. 그런데 머리 한편에서 혈당이 높아서 합병증 걱정, 낮아서 저혈당 쇼크를 걱정하다 보면 일은커녕 일상생활도 제대로 안된다.      


 나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혈당과 건강을 관리하며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는 직업을 생각 보았다.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시대지만 전문직 중 약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적합할 것 같았다. 그 이유는 PEET 시험의 높은 합격 가능성, 자아실현 그리고 생계에 대한 불안감 해소 3가지다. PEET는 자연과학을 시험과목으로 선정한 것으로 이공계 출신인 나에게 유리한 시험이었다. 수능시험에서 2번이나 안 좋은 기억이 있었지만 PEET가 나에게 동아줄이 되어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더불어 약사로 사회에 나간다면 낮았던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또 일정 수준의 급여도 나에게 안정감을 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2번째 응시한 PEET에서도 낙마하면서 내 바람은 상상 속의 유니콘이 되는 건가 싶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입력을 했는데 계속 잘못된 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나는 빨리 그 길에서 빠져나와 삼세판의 정신으로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PEET를 응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다른 길을 찾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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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보단 집념을 가지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는 때론 명확할 때가 있다. 마지막 도전에 들어가기 전, 나는 그동안 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과거를 돌아봤다. 시험공부보다는 내 상태를 점검하고 실패 요인을 하나씩 파악했다. 원인은 크게 다음과 같이 3가지였다.     


    자기연민  

    신뢰감 부족에 따른 불안감  

    뚜렷한 목표의식 결여  

    

 나는 자기 연민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식이요법과 운동 그리고 공부 이 3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현실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공부에만 집중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내가 불쌍다. 보통 공부할 때 스트레스 때문에 군것질을 많이 찾게 된다. 하지만 난 군것질을 참는 경우가 많았다. 인슐린 주사 투여량이나 타이밍을 고려하는 것도 일이었기에 단념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씩 폭발한 식욕이 나를 집어삼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내 일상은 욕구불만에 따른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더해서 그동안 시험에 낙마했던 경험들이 나에 대한 신뢰감을 무너뜨리기 좋은 재료였다. 그렇게 믿음이 없어지다 보니 낮은 자존감은 물론 불안감은 나의 오랜 친구가 되었다. 공부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맞지만 홀로 긴 수험생활을 보내서 그런지 외로움은 덤으로 따라왔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벗 삼아 난 책상에 오래라도 앉아 있었다. 이 행위가 나를 구원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 뭐라도 했다는 자기 위안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으면 그 끝은 흐지부지 되는 것이 다반사다. 나는 매 순간 안일함과 착각 속에서 몇 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던 것이다.


 약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 묵은 때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위 사진과 같이 각오를 다지고 매일 눈으로 확인하며 실천에 옮겼다. 적힌 것과 별개로 이때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2가지는 꼭 달성하자고 다짐했다. 그것은 내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과 나의 몸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다. 수험생 신분일 때는 일정한 루틴을 만들고 행동하기 좋은 시절이라 나의 몸을 이해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몸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 이것이 쌓인다면 나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가 워낙 오래돼서 그런지 벗겨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면역력 저하로 인해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 질환이 따가움과 가려움으로 나를 괴롭혔다. PEET는 무더운 여름에 치러지는 시험이라 신경이 곤두설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하는 계기라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지막 시험 당일이 다가왔다. 나는 초조하고 불안해하기보단 오히려 초연했다. 떨어진다면 이 또한 내 운명이겠거니 하며 마음을 비웠다.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순 없었기에 후회와 아쉬움이 1g도 남아 있지 않았나 보다. 시험 좌석에 착석한 순간,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매 교시 시험이 끝날 때마다 마음속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험의 마지막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이 클라이맥스였다. 잔잔한 공허와 허무함이 공기처럼 내 주위를 감쌌다. 뒤이어 메말랐던 마음을 적셔주는 단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나긴 수험 활은 그렇게 이 났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일정한 루틴을 정해서 내 몸을 이해했던 경험이 내가 약사로 일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되어주었다. 내가 다른 길을 갔더라도 이 경험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로또 당첨에 운을 맡기기보단 더 나은 자신과 마주하겠다는 믿음에 베팅한 것이 로또 당첨보다 값진 선택이었다. 물론 과정이 험난했지만 문턱을 넘어보니 어떠한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지금 힘든 길목에 있더라도 이  나의 한 시간이다.

또한 이 순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도 의 몫이다.

그 몫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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