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당약사 Sep 16. 2022

이번 생은 군대 면제라

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10

 따사롭다 못해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내과에 갔다.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라 환자가 없어 조용한 오후였다. 안내데스크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원장실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원장님의 안부인사와 함께 백과사전 몇 권만큼의 종이 꾸러미였다. 이것의 정체는 내가 1형 당뇨 진단 시점부터 이 날까지 내 몸의 역사가 적혀있는 박물관이었다. 즉 병무청에 나의 건강상의 진실을 밝히는 고증이었다. 이전부터 내가 현역 입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오묘했다. 이 기분을 빨리 해소하고자 즉시 난 내 몸의 역사적 고증과 함께 병무청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남성의 통과의례

 병무청을 가기 위해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에서 하차 직후 내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굵은 검은 뱀 두 마리가 일정한 속력으로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당시만 해도 이렇게 길~다란 에스컬레이터가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이것이 병무청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찰나의 감탄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린 뒤 나는 곧장 병무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전 처음 와봤던 병무청의 분위기는 삼엄함 그 자체였다. 아무렴 대한민국 남성의 젊은 날의 한 축을 판정해주는 중요한 곳이기에 당연했다. 나의 검사 차례가 다가와서 기본검사가 다 진행된 이후에 담당자에게 서류를 넘겼다.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담당자는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안함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담당자는 대학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받아오라고 통보했다. 병역비리 문제로 예민해져 있던 사회였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하지만 10여 년이 넘는 내 몸의 기록이 무시받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다. 나는 단념하고 증명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한 번이면 족한데 두 번이나 ‘1형 당뇨’라는 확인사살을 하고 나니 낙인찍힌 기분이었다.


"제 2국민역입니다!"

 병무청 병역판정 담당자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제2 국민역, 이것으로 판정 나면 5급으로 분류된다. 현재는 전시 근로 역으로 정식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타이틀을 얻게 되면 현역 입대 및 예비군 훈련이 모두 면제된다. 더불어 민방위 훈련만 잘 받으면 대한민국 남성으로의 국방의 의무는 다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는 군 입대란 없다는 것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는 세상에 이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열외 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학교 수련회를 가게 되면 갑작스러운 집합과 함께 체력훈련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선 참가할 수 없는 이들의 명단을 제출했고 이 속에는 항상 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안전상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훈련 전에 내 이름 석자가 호명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면 소외감을 느꼈다. 다른 친구들에겐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나에겐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고 특별해야만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도 기능 결함이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가 하며 서글퍼졌다. 병무청에서 또 한 번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에서도 열외 된다는 것이 나에게 비참함으로 다가왔다.     



컴플렉스는 내가 만드는 것 

 나는 군 면제라는 사실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해명해야 할 숙제가 생긴 것만 같았다. 지금은 건강상 안 좋아서 못 갔다 말하며 능숙하게 넘기는 편이다. 하지만 20대 초중반에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이 콤플렉스였던 나는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대외적으로 군필자라는 프레임을 나에게 씌워서 학교를 다녔다. 이 당시 20대 중후반 남자 동기들이 많았기에 1년에 한 번은 예비군을 가야 했다. 그래서 1년 중 하루는 수업을 듣지 않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갔다. 물론 나는 수업을 들었다. 근데 남들 갈 때 나는 왜 안 가냐라는 질문이 쏟아지면 난 따로 간다고 대충 둘러댔다. 이럴 땐 솔직하게 건강 때문에 면제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할그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답답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던 중 나의 거짓말이 들통 난 작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학기 초 수업을 마치고 남자 동기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현관에 멋있는 워커가 웅장하게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보고 나는   

   

“오. 이 워커 멋있네. 어디서 산거야? “     

 

동기는 이방인을 보는듯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며


“에? 군화잖아..”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이 순간을 빨리 모면하려고 집 안으로 얼른 들어갔다. 군필자인 척했던 군 면제자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얼마 뒤 동기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미필자냐고 물었다. 난 솔직하게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그렇게 군필자인 척했던 나의 만행 다른 동기들에게도 전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역비리를 저질러서 면제받은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랬나 싶다. 콤플렉스로 인해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내가 병역판정 결과를 받았던 2010년 육군 복무기간은 24개월이었다. 20대의 2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면제로 인해 낙담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20대 청춘의 값진 2년을 군 입대한다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단단한 초석으로 만들고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철이 든다는 말이 있다. 이 시기에 내가 철이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고 믿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