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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약사 Aug 31. 2022

태풍이 휩쓸고 간 그 자리는 고요했다

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07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를 한 단어로 줄여보세요

단어를 줄이고 줄이는 것이 유행인 세상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서두에 나온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바로 '질풍노도'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서 외웠던 이 단어를 지금 다시 음미해봤다. 사춘기 청소년의 감정 변화를 찰떡같이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사춘기 시절은 질풍으로 표현하기엔 그 의미가 약하다. 나의 10대는 잔잔했던 물결 위로 거센 태풍이 휘몰아쳤던 시기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자랐다. 그래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다. 말 그대로 순둥이였다. 그런데 너무 순종적으로 살았던 걸까? 어느새 나의 마음속에 잠겨있던 나사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교복을 벗어던진 순간 순둥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은 층간소음처럼 ‘나는 무엇인가’와 같은 풀리지 않는 물음표를 던지며 나를 괴롭혔다. 키 183cm, 온갖 불만을 품고 있는 듯한 눈빛, 저 세상 중력이 작용하는 건지 의심 가는 축 쳐진 입꼬리와 퉁명스러운 말투. 고등학교 입학 당시 나의 자화상이다. 이 당시 나의 인상은 '불만 있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어두웠다. 게다가 내성적이며 극소심하였기에 MBTI 검사를 했다면 '트리플 아이 내향형 인간'으로 진단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친구가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이 시기엔 가족보다 친구가 더 편한 존재이기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던 나의 맘은 1형 당뇨로 인해 천근만근 무거워져만 갔다. 사춘기 이전의 난 췌장이 고장 난 사실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마음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예민함+1 상태였다. 짜증과 예민함 만렙을 찍은 사춘기 소년에게 앞으로 버거운 현실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평생 식단 조절을 하면서 혈당 측정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현실이 비참했다.  


 나의 하루는 손가락 끝에서 나온 피로 혈당체크를 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기 전 엄마는 나에게 인슐린 주사를 투여해준다. 물론 내가 할 수도 있었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는 엄마가 나의 전담간호사를 맡아주었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내 머릿속은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나는 이렇게 태어난 운명을 탓하며 부모님에게까지 원망의 화살을 쏘았다. 속으로 ‘왜 이렇게 낳아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건가’라는 불효 막심한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내 안을 갉아먹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단단하기만 했던 나의 공간도 이제는

단체생활에서 빠지게 되면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야간 자율학습에서 빠진다고 공표했다. 이 내용을 전달하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개인과외 같은 꼼수를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으로 봤을 때 사지 멀쩡했던 나였기에 주위에서 불신의 눈초리도 느껴졌다. 불씨가 점점 커져 확신이 되면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공부가 잘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No’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집이 그 어떤 초호화 독서실보다도 좋은 공부방이었다. 왜냐하면 혼자 있을 때 공부가 가장 잘 됐기 때문이다. 나는 밖에서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며 혈당과 씨름을 했기 때문에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의 건강에 이로웠다. 물론 자율학습에서 빠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참여를 위해 인슐린 펌프를 내 몸에 부착해볼까도 고민해봤다. 인슐린 투여가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부착하면 내가 사이보그가 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외부장치의 도움을 받기보다 나의 의지로 인슐린을 투여해서 건강관리를 하고 미래를 책임지고 싶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9시까지라서 나도 이 시간에 맞춰 집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자율 학습이 끝나면 집에 가면 좋겠지만 성적을 위해 학원까지 가는 것이 국룰이었다. 나 또한 집 근처 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다녔었다. 이곳은 같은 학교 학생들도 다녔던 곳이다. 얼마 후 내가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이 교실에 메아리처럼 퍼졌다. 나에 대한 불신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나에 대한 동급생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따갑다 못해 날카로워서 베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하면 과장일 수는 있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에겐 그 정도의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물론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에는 상처가 없을지언정 마음속엔 생채기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학교를 가는 것이 내 주위로 벽돌을 하나씩 쌓으러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이 점점 높아지더니 출구 없는 단단한 성이 되었다. 갑갑했지만 이곳에서 나는 홀로 숨어있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차단하고 외로움과 벗하며 지냈다. 이 벗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거센 태풍과 대비하여 그 중심부인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고 한다. 나는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랬더니 점차 고요함에 이르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의 평안이 최고치에 도달한 것 같다. 이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들어갔던 단단한 성도 지금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허물고 난 뒤 생긴 잔재들은 치우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편안한 나를 발견할 것이고

지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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