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09
우리가 살아가면서 1%에 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1%에 속한 분야가 있다. 어쩌다 나는 우리나라 전체 당뇨 인구 중에서 약 1%에 해당하는 '1형 당뇨인'이 되었다. 1형 당뇨를 풀어쓰면 '인슐린 의존성 당뇨'다. 인슐린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소아당뇨'라고 잘못된 명칭으로 불렸다. 왜냐하면 신생아나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서 자주 발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 불문 발생한다고 밝혀졌기에 '1형 당뇨'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질환의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한 자가면역질환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확실치 않다. 게다가 교과서의 당뇨병 chapter에서도 단 몇 줄로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이 미지의 세계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은 이상, 나를 포함한 1형 당뇨인은 하나씩 적응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 말하는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비밀스러운 남자
아침 공복과 3번의 식사 이후, 식간, 자기 전
이 시간대는 1형 당뇨인이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혈당체크를 해야하는 때다. 하루 최소 8번 이상 해주는 것이 좋다.왜냐하면 인슐린을 직접 투여하므로 혈당 변동 폭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슐린 투여 횟수는 하루 최소 4번 이상이며 조절을 위해서 하루 6~8번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꿀물과 사탕은 낙하하는 혈당에 대응하기 위한 나의 생명수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학교나 직장에 가면 새로운 루틴을 만든다. 그리고 수정과 반복을 거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이것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화장실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이 공간에서 나만의 은밀한 의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혈당측정기라는 신에게 나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의식의 핵심이다. 신의 응답에 따라 인슐린이라는 집행관이 지시를 내린다. 응답의 결과가 좋으면 나는 안심을 하고 그 반대일 경우엔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내 하루는 일희일비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 루틴을 만들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새로운 곳에 가면 분위기를 잘 살펴야 한다. 직장에서는 일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 한가할 때 화장실에 간다. 이곳에서 의식을 치르는 동시에 배설기관 본연의 임무도 수행하게끔 해야 한다. 그래야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씩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남들이 용변을 본 직후나 비위생적인 환경일 경우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지금은 잠시 숨을 참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은 나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닌
나의 몸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 타투가 있다. 복부나 허벅지와 같이 인슐린 주사를 자주 투여하는 곳에서 출몰한다. 색깔도 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 형형색색이다. 인슐린 주사는 피하지방에 투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요새는 4mm 길이 바늘 덕분에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지만 내가 어릴 땐 바늘이 길어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일단 아픈 것은 물론이고 주사 투여한 부위에 멍이 들고 부풀어올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특히 마른 체질인 경우 피하지방층이 얇아서 바늘이 근육층에 잘 못 꽂힐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인상 찌푸리는 일을 맞이해야 한다. 참 묘한 게 요즘엔 주사 맞을 때 한 번씩 찾아오는 통증을 즐길 때가 있다. 고통의 카타르시스라고 할까나.
화장실에서 의식을 치르며 일희일비하고 내 몸의 자연 타투를 감상하는 날들을 겪다 보면 예민해질 때가 많다. 어릴 땐 이 예민함을 누구에게나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누구나 사연이 있는데도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 살고 있으니 나의 특권이라 여겼던 것 같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도움을 준 존재는 가족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부모님과 갈등을 많이 겪었다. 그 원인은 나의 예민함도 한 몫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내가 반성할 수 있도록 꾸중하면서도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셨다. 청개구리 같은 자식 때문에 걱정이 많았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송하면서도 감사함이 크다. 지금은 예민해진 나를 마주할 때면 우선 심호흡을 한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면 뾰족한 송곳 같은 날카로움도 점점 무뎌졌다. 물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항상 연습한다. 인생은 실전이라고 연습하다 보니 예전엔 오래 걸렸던 것이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갈 때가 많다.
건강한 루틴이 건강한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