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 당뇨인 약사 에세이 EP08
나 좋아하지마
그게뭔데?
나 좋아하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싸이월드 시절에나 볼 법한 감성 글귀가 나에게도 해당되는 때가 있었다. 그 대상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따라다니던 어떤 감정이었다. 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내 동반자를 자처한 그 감정, 불안이다. 사생팬인 양 어찌나 나를 쫓아다니던지 버거웠다. 췌장이 해야 할 임무를 뇌가 도맡아서 한 이후로 난 무력해질 때가 많았다. 무슨 일이든지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나의 1형 당뇨인 시기는 수동태와 능동태 시절로 나눌 수 있다. 미성년자일 때는 이론과 지식 없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관리를 했기 때문에 수동태 당뇨인이었다. 반면에 갓 성인이 된 20대 초반은 능동태 시절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으며 관리에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다. 나는 억지로라도 능동적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해야만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안감에 잡아먹히면
어느 날 뉴스 속 아나운서는 당뇨 유병기간에 따른 합병증 발생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쫑긋 세워진 나의 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당뇨를 20년 이상 앓을 경우 심혈관계 질환이나 미세혈관 손상으로 인한 망막병증, 신경계 질환을 대부분 앓게 된다고 합니다."
이 문구에서 나는 '20년'과 '대부분'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당뇨 관리를 잘하더라도 20년이 넘으면 대부분 합병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한 미래가 그려졌다. 어릴 때부터 나의 뒤엔 그림자처럼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항상 뒤따라 다녔다. 때로는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하며 내 일이 아닌 남일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외면하면 할수록 내 안의 불안은 나를 병들게 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관리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 가는 게 좋지 않나'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말 그대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누구나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정해진 미래가 있다며 부정적 세계관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내 맘속엔 불안의 씨앗이 싹을 틔워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내 정신적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일상적인 무기력증을 넘어서 무기력병에 빠져서 살았다. 합병증에서 시작된 불안은 미래의 진로, 연애, 결혼 등의 문제까지 뻗쳐서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20대 꿈 많은 청춘의 이야기는 남 얘기였다. 나에겐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치였으며 언감생심이었다.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무교인 내가 아무 신에게 두 손 잡고 애원하며 빌었다. 눈물이 났으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 안에 무엇인가 가득 차올라서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나를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살다 살다 유체이탈도 경험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불안에서 부란(孵卵)으로
언젠가 '책 속에 답이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책과 담쌓고 살았지만 무작정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스트셀러 구간을 거쳐서 심리에 대해 서술한 책 코너에 갔다. 나는 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듯 가지런히 진열된 책장을 살폈다. 그중에서 나의 맘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지금 나는 고민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라는 책이었다.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책이 선사하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기도를 해도 반응이 없었던 신들이 드디어 나에게 응답을 해주는 순간이었다.
외식메뉴는 탄단지가 골고루 배합된 것을 고르기 ex) 비빔밥
실생활에서 운동하기 ex) 등교할 때 지하철역까지 먼 길을 돌아 산책하기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근력 운동하기
식후 15분 산책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