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고 고대했던 말이었다. 1시간 뒤쯤 목적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드디어 흘러나왔다.
우리는 좌석 앞 화면을 더 뚫어져라고 봤다. "오, 내려간다. 내려간다." 비행 고도가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의 도시 위를 지나가면서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시간이 빨리 줄어들기만 바랬다.
비행기가 곧 부다페스트 공항에 착륙했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유럽 땅을 밟으셨네요."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눈웃음을 진하게 날리며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리고 똑같이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앙~ 덕분에 호강합니다앙~"
길고 지루하고 힘들 줄 알았던 비행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을 정도로 잘 끝났다. 유럽이 체질 같다는 엄마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재밌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엄마는 배웅해 주는 승무원들을 향해 "땡큐, 땡큐!" 인사를 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입국 심사받으러 걸어가는 길. 엄마는 백팩을 야무지게 매고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신나게 팔을 흔들며 걷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심사를 위해 줄을 섰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인천공항이 진짜 세계 최고다. 정말 빠름 빠름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줄은 길어지고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대기 공간이 북적북적해져서 땀이 날 정도로 더워졌다.
줄이 교차하면서 옆줄에 나란히 서는 한국 사람들과 계속 얼굴을 마주쳤다. 대부분이 우리와 함께 패키지여행을 하시는 분들 같았다.
"여기 사람들 다 우리 팀 인가 봐." 엄마가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저마다 가족들과 또는 일행들과 대화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엄마가 옆줄에 서 계신 분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다짜고짜 끼어들면서 말했다.
"목 아프시면 마스크 하나 드릴까요? 많은데."
"아.. 아니요.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엄마의 행동에 대화하던 분들은 당황해했다.
"아이고! 주책이야 증말. 그냥 가만히 있어!"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왜! 같은 팀인데 어때. 너는 뭐 내가 말만 하면 다 하지 말라고 하냐." 엄마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심사받을 차례가 가까워지자 가이드님은 우리들에게 입국심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원이 무언가를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면 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괜히 잘못된 대답을 하면 절차가 피곤해질 수 있다. 말해준 대로만 잘하시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 순서가 되자 들고 있던 여권을 엄마 손에 쥐어줬다.
"직원한테 여권을 줘. 그리고 도장 찍어서 주면 그냥 바로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면 돼. 혹시나 뭐 물어보면 아까 가이드님이 말해준 대로 하면 돼. 알았지?"
"그냥 같이 하면 안 돼?" 엄마는 긴장하고 있었다.
"거의 다 아무것도 안 물어본대. 뒤에서 보고 있을 테니까 먼저 가." 엄마를 보내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도장을 빨리 찍어주면 될 것을.. 직원이 전화통화를 하는 건지, 무슨 업무가 있는 건지 시간을 오래 끌었다. 엄마는 자꾸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별거 아닌데 나까지 괜히 긴장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인데 그땐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쾅' 직원이 별 말없이 도장을 찍고 여권을 돌려주었다. 엄마는 웃으면서 나를 보더니 손에 쥔 여권을 흔들며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함께 여행할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가이드의 인솔을 따라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이동했다.
"와, 너무 덥다." 헝가리가 우리에게 준 첫인상이었다. 이곳의 날씨도 한국만큼이나 무지하게 뜨겁다는 거.
공항 출구에서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이동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잠깐 시간에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가 또 질질 끌었다 하니 땀이 줄줄 나고 숨이 막힐 거 같았다. 진이 빠진 채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