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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Jun 08. 2020

당신과 함께 떠나는 프라도 미술관 2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실 잣는 사람들>

우리집 바로 옆에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우리집은 자연 학습장이 된다. 별의별 벌레들이 집 안까지 방문한다. 특히 자주 방문하는 벌레는 거미다. 방문만 했으면 좋겠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거미줄로 장식한다. 거미 덕에 마치 폐허에 사는 기분이 든다.


거미하면 떠오르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리디아의 염색 명인인 이드몬의 딸 아라크네는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나 수공예의 여신 아테나보다 자신의 솜씨가 낫다고 자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아테나는 노파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를 찾아가 신에게 겸손할 것을 충고한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이 충고을 듣지 않았고, 결국 아테나와 베 짜는 솜씨를 겨루게 된다. 아테나는 베에 근엄한 신들의 모습과 신에게 도전했다 고통을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반대로 아라크네는 제우스가 인간 여인들을 납치하거나 농락하는 신들의 방탕한 모습을 짜 넣었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지만, 베에 수놓은 그림의 내용에 진노해 아라크네의 베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모욕을 느낀 아라크네는 목을 매 죽으려고 했지만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를 거미로 만들어 영원히 베를 짜게 했다.


아라크네는 그리스어로 '거미'라는 뜻인데 우리집에 방문한 거미를 보면서 영원한 형벌로 베를 짜는 거미, 아라크네가 떠올랐다. '그래, 거미야! 이게 너의 업인데 내가 싫어한들 거미 네가 거미줄을 안 만들리없지' 하며 체념하고 오늘도 거미줄을 치우고 또 치운다. 나는 불청객 거미를 보고 거미줄을 제거하며 그리스 신화를 떠올렸지만 스페인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아라크네에 관한 신화를 그림으로 묘사했다.


<실 잣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그림인데 앞부분은 아테나와 아라크네가 베를 짜는 시합을 묘사했고, 뒷부분은 갑옷을 입은 아테나가 고개를 돌린 모습의 아라크네를 응징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태피스트리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은 아테나이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는 주로 갑옷과 투구 차림으로 등장한다. 바로 옆에 있는 여인은 아라크네로 추정된다.

앞부분의 아라크네는 털실을 감고 있고, 노파로 변장한 아테나는 물레를 돌리고 있다. 인간 아라크네의 신에 대한 도전은 화가 자신이 신의 경지에 오른 '천재적 실력'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벨라스케스는 전경 어둠 속에 묻힌 노파 아테나의 모습을 환한 빛을 받고 있는 젊은 아라크네에 비해 다소 초라한 느낌으로 그려 넣었다.


인물들의 동작은 정확한 세부 묘사를 생략한 벨라스케스 특유의 붓질로 인해 더욱 활달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아테나가 돌리고 있는 물레이다. 노파의 손과 물레 살에서 빠른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움직이는 물체들의 흩어지는 형태를 이토록 생생하게 잡아내는 화가는 당시로서는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모네의 그림에서도 벨라스케스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다. 모네뿐만아니라 많은 화가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큼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미술사적으로 위대하다. 그는 펠리페 4세가 가장 총애하는 궁정화가로 미술가의 위상이 상당히 높았고 궁중에서 서열3위의 관리장으로서 귀족의 칭호를 받았을 뿐만아니라 마드리드 알카사르 왕궁의 왕자의 방을 내어줄정도로 펠리페 4세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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