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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Oct 18. 2020

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왕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디에고 벨라스케스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의 주요 화가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페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피카소, 고야, 엘 그레코, 가우디가 있는데 최고의 거장은 단연 디에고 벨라스케스이다. 벨라스케스는 앞에 열거한 화가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 수많은 화가들의 우상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1620년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의 펠리페 4세 때 왕의 마음까지 헤아린 궁정화가로서 펠리페 4세는 자신의 화가 벨라스케스를 존경했다.


왕은 벨라스케스에게 "당신만이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내 얼굴을 그릴 수 있는 화가요"라고 말할 정도로 벨라스케스를 신뢰했고 그 신뢰가 얼마나 두터우면 왕의 아들이 일찍 죽어 비어있었던 마드리드의 알카자르 궁을 그의 작업실로 내어줄 정도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에서 태어나 23살의 젊은 나이에 스페인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의 수많은 걸작들에는 <펠리페 4세 초상>, <바쿠스의 승리>,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라스 메니나스>로 우리말로는 '시녀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단, <라스 메니나스>작품은 압도적으로 큰데다가 세밀함과 사실적인 표현까지 느껴지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구도, 시점, 원근, 기하학까지 모든 기술이 총동원되어 적용된 걸작이다. 그래서 모든 서양미술사 책에 꼭 언급하는 작품이기도하다. 회화의 신학이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해석이 다양하다.


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녀들>은 작품 속 벨라스케스의 방에 6명의 여인과 3명의 남성, 거울에 남녀 2명,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는 5살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로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왕비가 된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펠리페 4세의 당시 생존한 유일한 자녀이다.


두 번째로 오른쪽 끝에 눈이 가는 머리가 큰 난쟁이 하녀는 이름이 마리바르볼라이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양옆으로 2명의 시녀가 있는데 공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빨간 물 잔을 건네고 있는 소녀는 마리아 오거스티나 사르미엔토 이고 다른 시녀는 이사벨 데 벨라스코이다. 가장 오른쪽 구석에서 개를 발로 건드리고 있는 시녀는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다. 이 4명이 바로 작품의 제목인 '시녀들'이다. 당시에는 난쟁이가 애완동물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난쟁이 하녀 마리 바르볼라는 개와 함께 그려진 것이다. 


왼쪽 큰 캔버스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척하는 사람이,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신이며, 시녀들 뒤에 수녀 복장의 여인은 시녀장 마르셀라, 남자는 수행원 돈 디에고 루이스 로 추정된다. 문쪽에 서있는 남자는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이고, 거울에 비친 남녀는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다.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는 시종들이 모두 등장했다. 


작품 속 배경은 마드리드의 알카자르 궁에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업실이며, 벨라스케스는 작품 속의 공주와 시녀들, 액자 속 펠리페 4세 내외와 그들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그렸다. 이 작품이 완성되고 펠리페 4세는 자신의 집무실에 이 작품을 걸어뒀는데, 왕궁이 이사를 다니면서 이 작품도 같이 따라다녔지만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19세기 초이다. 이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기면서 또다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왕과 측근들만 볼 수 있었던 매우 귀한 작품이다. 그 이유는 바로 거울에 있는데 지금 이 모습은 왕과 왕비의 시점에서 공주와 시녀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니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자는 자동으로 왕이 되는 것이다.


이 귀한 작품을 관람하면서 왕인 것처럼 작품을 바라보며 마치 왕이 된 기분이었다.


많은 미술책에서 <라스 메니나스> 시녀들은 위대한 구도와 완벽한 황금비율이 적용된 구성에 대해서 극찬하는데, 그보다는 이 작품을 대단하게 만드는 것은 소장자의 작품과 화가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펠리페 4세는 자신의 화가 벨라스케스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가족이 죽은 것처럼 슬퍼했고, 그에게 무엇을 더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에게 휘장을 하사해 작품 속 벨라스케스의 가슴에 그려진 산티아고 기사수도회 휘장을 왕이 직접 그렸다. 세계를 제패한 스페인의 왕이 그림에 직접 휘장을 그려 넣었다니 벨라스케스의 위엄이 그에 대한 왕의 존경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미술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왕의 마음까지 헤아린 궁정화가로 23살의 젊은 나이에 모든 화가의 로망인 궁정화가가 되어 37살에 왕의 최측근이 되었고 53세에 전례가 없었던 궁중 서열 3위 왕실 관리장으로 올라갔다. 이렇게까지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정직함, 진실함이 준 신뢰감과 평등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고 그의 그림에는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기에 평생 왕의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에드워드 마네는 "그는 화가 중에 화가였다. 나는 그의 그림 안에서 회화적 이상을 발견하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화가들에게 우상이자 존경받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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