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은 펠리페 4세의 명령에 따라 여러 화가들이 부엔레티로 궁정의 '세계의 전당'이라는 방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열두 점의 작품 중 하나로, 1625년 남부 네덜란드의 주요 요새 브레다 시가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항복한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다. 펠리페 4세 때 30여 년간 끌어온 전쟁은 네덜란드의 독립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전투만큼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용맹하다고 소문난 장수를 무찔렀다는 일화로 인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적을 과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림 중앙에 왼쪽은 브레다 성의 유스티누스 판 나사우 장군이다. 브레다 성의 열쇠를 바치는 패장의 얼굴에는 슬픔과 체념이 가득하다. 오른쪽에 갑옷을 입고 서있는 장군은 스페인의 암브로조 스피놀라 장군인데 자세를 낮춘 네덜란드 장군의 어깨에 한 손을 얹은 채 그의 얼굴을 따사롭게 쳐다보고 있다. 그는 상대 장군이 들고 있는 열쇠에 시선을 맞추지 않으므로서 패자에 대한 예를 다하고 있다.
스페인은 넉 달 동안 브레다 성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성 내부로 가는 모든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고 고립시켜 승리를 얻어냈다. 네덜란드는 명예 항복을 요청했고 이에 스페인은 그들이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한 채 성을 떠나도록 허락함으로써 승국의 관용까지 과시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승리는 스페인의 사기를 한층 드높였으며 스페인 최고의 극작가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에 의해 연극으로까지 상연되었다. 벨라스케스가 이 연극을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스피놀라 장군 뒤로 하늘을 향해 빽빽이 치솟은 창들의 질서 정연함은 승전국 병사들의 기개를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는데, 덕분에 작품 제목이 <창검>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면 오른쪽을 압도하는 말의 뒷모습은 네덜란드 장군의 뒤편에 서 있는 말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등장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개인 초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실감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몇몇 인물들은 벨라스케스와 친분이 있었고 개인 초상화도 이미 제작한 적이 있었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 곳곳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신비감은 색과 빛 그리고 대기의 흐름을 잡아내는 데 치중한 베네치아 화가들을 연상시킨다. 전쟁을 주제로 하는 그림들은 이 그림과 마찬가지로 배경은 격전지나 전투 장면을 연상시키는 배경으로 하고 앞부분은 중심인물들을 배치하곤 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직후에 그린 그림으로 그가 그린 유일한 역사화이기도 하다. 패자에 대한 배려와 예 이부분은 우리의 삶에서도 필요한 덕목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