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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일부터 일 안 나갈 거야"

5년이 지나서야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오다.

by 세아


큰 아이 다섯 살, 작은 아이 세 살이 되었던 해 나는 일터로 나갔다.


하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었다.


위기에 빠진 우리 집 재정 상황에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어쩔 수 없이 가게로 출근하게 되었다.


자기보다 몸집이 큰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등원하는 코흘리개 꼬맹이들을 두고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땐 아이들이 눈에 자꾸만 밟혀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엔 빨리 이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 아이들 곁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망해버린 우리 집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둘째 아이마저 입학을 할 때까지도 회복되지 못하였다.


천안에 우리 아이들이 내려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 이제는 일을 줄이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지만 무늬만 사장이었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광주에 첫 우리 가게를 다시 열었을 때도 이번엔 진짜 우리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다시 만든 우리 가게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했기에 가게에서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예전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아있는 빚을 갚기 위해 버둥댔고 그래서 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빚을 갚아나가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거북이같이 느린 모습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부쩍 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커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난 늘 불안했다.


‘아직 너희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는데 왜 이리 빨리 커가고 있니..’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 너무 아쉬웠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작년 12월 남편이 어떤 일로 내 마음에 불씨를 넣었다. 그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독감으로 돌아가며 아파하던 아이들 옆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 끝에 ‘너희와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네’라고 깨닫고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내일부터 일 안 나갈 거야.”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전업주부로 돌아섰다.

5년 넘게 꿈꿔오던 아이들과의 시간.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졌다. 처음엔 아이들이 아프니 내가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였다.

그런데,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나의 아이들은 걷는 법을 잊었나 싶을 정도로 뛰어다니는 고라니들이고 엄마가 한번 말해주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 두 번 세 번 말해주다 결국 고함이 나오게 만들어 버리는 초등학생들이라는 것을..

곧 사춘기가 닥칠지도 모르는 4학년이 되는 첫째 아들과 형보다 더 기어오르려는 둘째 아들도 모자라 길고도 긴 겨울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는 것을..

아,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너희에 대한 애잔함, 안쓰러움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원했던 너희와의 시간들은 이렇게 소리 지르고 혼내고 결국 눈물로 끝나는 새드엔딩이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예전에 너희와 웃으며 이야기했던 순간들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엄마를 웃게 하던 너희의 미소는 그대로인데 나의 눈에 어떤 가림막이 놓여 그 미소가 보이지 않을까,

나는 과거에 아이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전업주부로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나는 이번 겨울방학을 함께 보내며 많은 생각 후회들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보기만 해도 나를 웃음 짓게 하던 두 아들이 저 아이들임을 잊기 않기로.


그리고 누구보다 매일이 행복한 아이들로 키워보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우리 아이들이지만 매일을 새롭게 겁게 부딪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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