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소신이 필요할 때
아이들이 원하거나 꼭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에는 학원에 보내지 말자고 남편과 얘기하고는 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니니 우리 애들도 보내야 하나 하는 불안감에 보내기 싫었다.
예체능 학원도 그런데 국영수 학습을 위한 학원은 더욱이 그랬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집에서 공부를 잘하여 마음 놓고 보내지 않았던 게 아니다. 딱 보기에도 공부시키면 잘하겠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아직까진 집에서 내가 도와주면 어느 정도 뒤쳐지진 않겠다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집에서 태블릿으로 하는 공부도 어렵다고 징징 거리며 한참을 붙잡고 낑낑 거리는 아이인데 학원에 가서 다른 친구들 쫓아 이해도 되지 않은 채 진도만 쭉쭉 나가는 것이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스스로 공부하는 친구의 자녀 얘기를 듣고 우리 아이들을 보면 속이 터지기도 하였지만 나 역시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아니었기에 부글거리는 마음을 뒤돌아 삭히고는 하였다.
이런 나도 아이들에게 영어만큼은 일찍부터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자막 없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으면 했다.
또한 영어가 아이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걸림돌이 아닌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으론 나와 세계여행을 하기 위해 둘 다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 되었으면 하기도 하였고..
그래서 큰애가 7살 무렵부터 주 1회 영어선생님이 집으로 오시는 방문영어를 하였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상과 책에 흥미를 보이는 듯했지만 1년 가까이 되자 점점 아이들에게 영어가 해야 할 숙제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느 날은 큰애가 나에게 다가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저 아무래도 세계여행 못할 것 같아요"
"왜???"
"영어가 너무 어려워요!!"
아이들에게 종종 엄마랑 세계여행 하려면 영어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영어공부를 하다 너무 어려워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는 뜻이었다.
결국 내 욕심이었다.
하기 싫은 숙제가 되어버린 영어공부도 그만두게 하고 아이들에게 운동 말고 다른 건 시키지 않은 채 학교생활만 열심히 하게 두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느라 저녁 6시가 돼서야 집에 온다는 말을 들을 때나 놀이터에 유아들 말고 우리 애들만 놀고 있을 땐 이렇게 두어도 괜찮을까 싶은 불안감이 감쌌다.
내 주변에 학원을 안 보내는 집은 우리 애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친구네 딱 한 집뿐인 것 같았다.
그 집도 집에서 엄마가 아이들 학습을 봐주고 아이들도 아직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하니 보내지 않고는 있었지만 자기네만 너무 학원을 안 보내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런 불안감에 아이들을 학원으로 떠미는 부모도 많을 거고 자신이 봐줄 자신이 없어 학원에 도움을 받으려 하는 부모들과 직장 때문에 늦은 저녁까지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일명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맞벌이 부부들까지 보내는 이유들이야 많을 것이다.
나도 이번에 아이들이 학년이 바뀌면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제는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봐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내가 도와주는데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학을 들고 올 때면 걱정부터 되었다.
'내가 이걸 알아듣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인터넷으로 학원도 찾아보고 교육서도 읽어보면서 고민이 되었다. 부모의 교육방침에 일관성이 있어야 아이가 흔들리지 않을 테니 내가 똑바로 방향을 정해야 했다.
불안감에 모든 것을 학원으로 맡기기보다 집에서 봐줄 수 있는 건 봐주고 학원의 도움을 받을 건 받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수학, 영어 학원 두 군데를 보내기로 하였고 방과 후까지 병행하니 우리 큰애 역시 다른 집 아이들처럼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아이가 되었다.
모를 때는 이런 아이들을 보며 '애를 벌써부터 저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학원을 보내보니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저녁이 될 수밖에 없는 걸 보고 내가 정말 뭘 몰랐구나 느꼈다.
그런데도 저녁 늦게 오는 아이를 보면 이게 맞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먹었던 마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없다. 아이가 너무 지쳐하면 중단하겠지만 우선은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부분에 매달려 스트레스받기보다 잘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에게 제대로 배워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정한 결정이고 아이도 다녀보겠다 하니 우선은 이대로 지켜보기로 하였다.
요새는 과도한 사교육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다. 그런데 나도 학부모가 되어보니 왜 그렇게들 무리해서라도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모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십 대는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이지만 오직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게 만들어버린 우리 교육현실은 아이들에게 작은 고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모들은 내 아이가 도태되지 않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더욱 아이를 공부로 몰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정책, 무수히 쏟아지는 카더라통신들,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내 눈에 너무 잘 띄는 내 친구 자식들, 내 아이 친구들의 성적들로 '우리 아이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수십 번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다.
저 아이가 곧 있으면 고학년이고 금세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텐데 지금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도 모른 채 저리 태평하게 있어도 될까 싶어 걱정되긴 하지만 결국 불안에 떠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나라는 걸 느낀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니 그래도 불안감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고 이런 내 모습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 아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과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버거워하지는 않을까?
학원 하나 보내놓고 온갖 걱정이 든다.
그래도 일단 보냈으니 잘 따라가나 지켜나 보자.
걱정 좀 집어넣어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