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날이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뜨거운 날은 이 봄을 느껴보기도 전에 여름이 온 건 아닐까 싶어 빨리 봄구경 하러 가야겠다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에서 가까운 호수공원이라도 가야지 마음 먹지만 미세먼지 경보는 매일이 빨간불이다.
미세먼지 좋아지길 기다리다가는 이 봄이 지나갈 것 같아 주말 일찍 도시락을 준비했다.
날은 너무나 따뜻한데 하늘은 뿌연 게 참 야속하다.
"우리 소풍 갈까?!" 이 말 한마디에 신난다고 뛰어 나가는 아이들.
너네도 나만큼이나 이 날을 기다렸나 보구나.
집에서 바리바리 싸둔 도시락통을 들고 길을 나서니 자전거를 끌고 우리와 같이 공원으로 향하는 가족들이 하나 둘 보인다.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나무 밑 명당자리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미세먼지 걱정은 미뤄둔 채 우리와 같이 나온 사람들로 한가득이다.
아쉬운 데로 평평한 곳에 가져온 돗자리를 피고 앉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멀리 떠나온 느낌이 들어 신이 난다.
아이들도 소풍 온 지 오랜만이라며 설렘 가득한 표정이다.
이 말을 들으니 이렇게 소풍 온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아이들과 나온 지 오래되었구나 싶어 미안해진다.
앉아서 이것저것 먹으며 시간을 보내니 싸 온 도시락통 뚜껑 위로 먼지들이 쌓이는 것이 보인다.
'미세먼지가 심하긴 한가 보네' 싶으면서 이렇게 밖에서 막 먹고 앉아서 쉬어도 될까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깔깔깔 거리며 신나게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가족들을 보며 오늘은 그냥 놀자 싶다.
나는 앞만 보고 사람들 구경하는데 큰 아이는 언제 뒤편의 커플을 유심히 봤는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도 저렇게 사이좋았어요?"
뒤를 돌아보니 무릎베개를 하고 태블릿을 보는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도 없는데 꼭 붙어있는 커플의 모습이 꽤나 다정해 보였나 보다.
"그럴걸? 왜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아 보여?"
"아니요, 근데 저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원래 연애할 때는 좀 더 붙어있고 하지. 너도 연애 많이 해봐. 많이 만나봐야 진짜 너랑 맞는 사람이 누군지 찾을 수 있어."
예전 같으면 연애 안 해! 결혼 안 해! 했을 아이인데 이제 그런 말은 절대 안 한다. 할 마음이 있긴 있는지 '연애 많이 하면 안 좋은 거 아닌가' 끝말을 얼버무린다.
남 연애하는 모습도 실컷보고 많이 논 것 같으니 가자는데도 오랜만에 소풍 왔는데 벌써 가냐며 더 있자는 아이들의 말에 몇 시간을 먼지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더니 집에 갈 즈음엔 목이 칼칼하였다.
금방 떠날 봄날도 제대로 못 느끼게 하는 미세먼지가 원수같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미세먼지 네가 아무리 심하게 발악을 해도 이 봄이 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고 말 거다!
봄날은 금방 가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