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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어서 밥 얻어먹기 싫어 "

주체적인 삶을 꿈꾼다.

by 세아


내가 이사 온 동네는 1기 신도시 중 하나인 '일산'이다.

새로 얻은 가게가 일산이라 자연스레 나는 가게 주변을 우선적으로 후보에 두고 알아가기 시작했었다.


어릴 적 서대문구에서 자랐고 신혼생활을 은평구에서 했기에 일산은 나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이었다.

20대 대학시절에도 일산에 사는 친구들 따라 라페스타에서 즐겁게 놀아보기도 하였으니 새로 이사 와야 할 이곳에 친숙함 마저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집을 알아보니 연식부터 어마어마한 아파트 단지들이 걱정스러웠고 일산의 젊은 사람들은 전부 파주의 운정, 교하동 같은 신도시로 이사 갔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하였다.


시간이 될 때마다 가게에서 발길 닿는 데로 동네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재건축 선도지구, 리모델링 추진단지'와 같은 현수막들이 걸려있는 곳들을 볼 수 있어 오래된 동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논, 밭 같은 푸르른 땅 뒤로 엄마 친구분이 일산에 산다며 어릴 때 와 보았을 때가 처음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던 시절이니 아파트도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겠지.


다른 지역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가게에서 가까운 동네면서도 깨끗이 리모델링이 된 곳으로 고르면서 일산주민이 된 것이다.


내가 이사 온 후 처음 느꼈던 건 '와,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였다.

아파트를 나서면 가운데 공원을 끼고 쭉 호수공원까지 연결이 되어있는데 그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정말 많았다.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하시는 어르신부터 앉아서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 그네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시는 분들까지 '혹시 이 동네 어르신들은 신도시가 생겼을 때부터 계속 거주를 하시던 분들이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엔 공원을 지나가다 할머니 세 분이 말씀하시는 게 들려왔다.


"늙어서 밥 얻어먹기 싫어."

"맞아, 내가 직접 차려 먹을 수 있음 차려 먹어야지 괜히 눈치 보기 싫어."


그 연세면 며느리든 자식이든 밥상 차려 드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어르신들에겐 그게 눈치 보이고 불편하게 느껴질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또 한 번은 운동 다녀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손으로 해를 가리며 누군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그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으로 걸어오시길래 '내 주위에 아시는 분이 있나? 왜 나한테로 걸어오는 것 같이 느껴지지?' 싶었는데 정말 나한테로 오신 거였다.

찬송가를 다운로드하여서 따라 부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며 도와달라 하셨다.

그 말 끝에 "늙어서 이런 건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라며 쓸쓸히 웃으시는데 "아휴, 저도 이런 거 잘 못해요"라고 말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도 할머니 한 분이 검색대를 이용하기 어렵다며 나를 붙잡고 해 달라 하셨는데 "80 먹은 노인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나이가 먹어 서럽다는 건 쇠약해진 몸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는데서 오는 좌절감 같은 건 아닐까?

바뀌어간 세상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 나이 먹은 것이 서럽게 느껴질 것 같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 귀찮을 때가 많다. 익숙한 방법들,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머리 아프다는 생각부터 들고 그냥 살던 데로 살자 싶기도 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브이로그를 하는 모습을 볼 때나 요새 트렌드에 대해 얘기할 때면 순간 멈칫하는 나를 보게 된다.


'나 혼자 몇 년 전에 멈춰 있는 건 아닐까?'

'이러다 나 혼자 도태 돼버리는 건 아닐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무력감과 두려움.


내가 만났던 어른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계시는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무언가를 할 방법을 알지 못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이먹음에 한스러움을 느끼시는 건 아니었을까.


소외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여전히 많은 채로 나이 먹는다는 것.

이것 또한 중요한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나이 먹어가고 싶은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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