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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오신다.

나의 또 다른 가족.

by 세아


우리 시부모님은 강원도분들 이시다.

강원도 중에서도 서울에서 가까운 쪽인 홍천이라 처음 신혼집이 있던 응암동까지도 자동차로 한 시간 삼십 분이면 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편이어서 아이들이 어릴 땐 종종 오시고는 하였다.


처음 결혼 하고는 전업주부였으니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신다는 이유로 일주일씩 있다 가실 때는 온종일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혼 전 친정엄마가 시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기도 하였고 그때의 난 아직 어렸기에 시부모님 말에 무조건 '네네' 하며 잘하고 싶은 마음 가득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시어머니와 붙어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육아방식과 어머니의 육아방식의 차이부터 사소한 생활습관들까지 '그렇게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그냥 참고 넘겼지만 내 안에 불만들은 쌓여가고 있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며칠간 아이를 봐주시고 집에 돌아가시기로 한 날이었다.

큰 애가 3살 즈음이었는데 자꾸 그러지 마시라고 하는데도 아이를 업어서 어린이집까지 데리고 가셨다. 그때 아이가 한참 고집부리고 할 때여서 고치려고 애쓰던 중이었는데 어머니는 아이가 원하는 데로 해주려고만 하시니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서며

" 어머니 그러실 거면 이제 오지 마세요."라고 말이 나왔다.

그때는 내 말이 어머니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그동안 쌓여있던 어머니에 대한 불만들이 그렇게 폭발해 버린 거여서 어머니의 마음까지 헤아려드리지 못하였다.

그때 어머니가 상처를 받으셨다는 걸 한참이나 지나서야 어머니 입으로 듣게 되었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나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손주가 보고 싶은 마음에 오시는 거였겠지만 다들 이 봐달라 하면 손을 내젓는 요새시대에 본인이 나서서 손주 봐주러 오신다는데도 며느리라는 애는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어머니에게 오지 말라고 화를 내버리니 그동안 애 봐준 공도 없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백 번 잘못한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10년이 넘는 결혼생활동안 남편과 나 둘만 맞추어가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는 시댁식구들에게 남편은 처갓집에 맞추어가며 이제는 두 가족 모두에게 어울리는 구성원이 되어버렸다.

10년 동안 아버님에 대한 마음은 처음과 거의 변함이 없는데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이리저리 요동을 쳤었다.

어머니에게는 어느 날은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다가도 어느 날은 스트레스 되는 원인으로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친정엄마에게 처럼 마음껏 불만을 쏟아 낼 수도 없으니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 구석엔 응어리진 마음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결혼 전 어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는

"우리 불만이 있으면 쌓아두지 말고 말해서 풀자."라고 하셨었다.

어머니도 주변에서 고부갈등을 겪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테니 나와 갈등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듯이 어머니도 딸이 아닌 며느리인 나에게 불만이 있어도 일일이 다 말하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에게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감사함과 죄송함 뿐이다.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평안히 사는 모습만 보여드린 것은 아니었으니 그 죄송함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시부모님의 모습에 감사함까지 아들 못지않게 며느리인 나도 죄인이 아닐 수 없에 어머니에 대한 불평은 생겼다가도 금방 사그라든다.


한국의 며느리들에겐 어쩜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시'자 식구들이 나에겐 스트레스의 원인도 아니고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 아닌 진정한 내 편 중 하나임을 느낀다.


이번 주엔 시부모님이 오셨다 하룻밤 주무시고 가기로 하였다.

이사 후 첫 방문이니 두 달만이시다.

제주도 아가씨네 다녀오며 사 오신 갈치며 쌀, 김치까지 또 이고 지고 한가득 가져오실 테지.


어머니 아버님은 오실 때면 양손 가득 우리 먹을 것을 잔뜩 챙겨 가져 오시는데 돌아가실 때 내가 드리는 건 빈 김치통뿐이니 아직도 나는 불효며느리를 못 벗어났다.


시부모님 오시면 꽃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호수공원에 예쁘게 핀 꽃이라도 구경시켜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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