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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돈 꼭 지키리라

by 세아


예전부터 아이들 용돈을 따로 모아 줘야지 했었다. 간간히 받는 용돈을 입출금 통장에 넣어 둬 봤자 이자랄 것도 없어 어떻게 굴려주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 '짠!' 하고 꽤 모인 목돈으로 건네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쯤 수협에서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적금을 들면 꽤 높은 이자를 주는 적금을 발매했다.

동네 수협마다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부랴부랴 달려가도 대기 인원이 엄청났다. 뉴스에서는 새벽부터 은행문 앞에서 대기하는 줄들이 엄청나다고 기사가 나기도 하였다.

친한 엄마랑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자고 은행 문 열기 전에 달려가 순번 안에 들었고 나는 통장 만들기에 성공하였다.

그것이 내가 만든 우리 아이들의 첫 적금통장이었다.


호기롭게 매달 나라에서 주는 아동지원금에서 10만 원씩 떼어 입금하기 시작하였다.

5년 완납을 할 경우 받게 되는 이자는 수십만 원으로 이율이 거의 없는 다른 은행들에 비해 훨씬 쏠쏠하였기에 열심히도 넣었다.

하지만 우리 집이 흔들리면서 빼먹는 달이 점점 많아졌다.

아이들 백일, 돌 때 들어왔던 금반지며 어머니가 주셨던 금반지들까지도 다 팔 때였지만 아이들 통장만은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통장만은 지키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천안에서 가게를 나오고 새로 우리 가게를 차리려 할 때 돈이 부족하게 되자 결국 아이들 통장에 손대고 말았다.

만기가 마 안 남아 아깝기도 하였고 아이들 것이라 깨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키던 통장을 깨버리니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였다.

그래서 주거래 은행이었던 하나은행에 가서 아이들 예금통장을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너희의 돈을 지키리라!'


아이들의 용돈을 수시로 넣으면서 저번에 쓴 돈에 몇 배를 더 채워주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1년을 조금 넘겨 다시 아이들 통장에 손을 대고 말았다.

이번 역시 가게를 옮기며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돈 나올 곳이 없자 잠자고 있는 아이들 돈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네 아이들은 자기 통장에 천만 원도 넘게 있다며 자랑을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두 번이나 통장의 돈을 뺏겼으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자기 통장에는 얼마가 있냐고 물어와 난감하고 미안하였다.


그래서 아예 빼기 힘들게 증권회사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그런데 주식에 '주'자도 모르던 나는 통장만 만들고 이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통장은 무용지물로 버려져 있었고 요새 재테크 공부에 빠져있는 나는 다시 증권회사통장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만들었던 통장은 그냥 두고 내가 이용하는 회사에 새로 아이들 계좌를 만들어줘서 같이 관리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서류만 제출하면 편하게 아이 계좌를 만들 수 있다기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다운로드하여 사진까지 찍어두었는데 망할 놈에 얼굴인식에서 넘어가지를 못하였다.

미성년자라 부모의 신분증 확인과 얼굴 인식이 통과돼야 하는데 아직 기술부족인지 내가 못하는 것인지 얼굴 인식에서 번번이 실패하였다.

신분증의 사진 실제 얼굴의 불일치로 30분여간의 씨름을 하다 결국 포기하였다.

찾아보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내가 이용하는 증권회사가 있어 다음 날 아이들 계좌를 만들러 직접 방문하였다.

직원이 적어 대기만 한 시간 넘게 걸렸지만 이번에는 꼭 아이들 돈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서 끝까지 기다려 계좌를 만들고 말았다.


큰 아이가 11살이니 성인이 되기 전까지 목돈을 만들어주려면 9년 남았다.


그 안에 다시는 빼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 돈을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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