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까지 차별하지 마세요

나도 이제 좀 말하고 살겠습니다

by HeySu



“나는 정말 힘들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을 힘조차도 없다고 느껴질 때조차, ‘책에는 나의 이야기가 없다’고 느껴질 때조차도, 책을 펼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 한 분이 하신 말이다.


나도 40대에 접어들고부터 부쩍 책을 많이 찾게 되었다,

아플 때는 병원을 찾는 게 당연하듯,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한 날은 책이 있는 곳으로 향하곤 했다. 어디에도 쉬이 내뱉을 수 없는 ‘혼자 담은 말’들을 이곳에서 하소연하고 나를 다독이는 소리를 듣는다.

오은영의 <화해>를 읽던 날도 그랬다.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미움과 원망이 버무려지고,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인 내 모습이 끔찍하게 싫었던 날. 나를 알아주는 이 책을 만났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하염없이 자신을 형편없다고 여긴다. 단지 아이다운 행동을 했을 뿐인데도 자식을 잘못 다루는 부모로 인해서 끊임없이 자식에게 잘못된 생각이 심어진다. 아이는 자신을 까다롭고 문제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꾸준하게 자신에 대한 왜곡된 자아상, 세상을 보는 왜곡된 창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자란 성인들은 인생의 계단을 돌아가느라 상처 입고 다치고 떨어지고, 때로 주저앉아 울고 있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었던 어린 나는, 오로지 본인만의 감정이 소중했고 그것에 지나칠 정도로 솔직했던 엄마로 인해 ‘지지리 운도 없고 복도 없이 태어난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더 이상 ‘이해하기’를 먼저 해가며 엄마를 참아내지 않고, 내 멋대로 하고픈 말도 하면서 이기적으로 살아보자 ‘다짐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 아이와 두 살 터울 나는 조카가 태어나서부터였다.


내 출산 즈음, 난리도 아니었던 엄마·아빠의 이혼소송은 얼마간의 재산분할을 하는 조건으로 취하가 되었고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너덜너덜하게 서로의 속을 보여가며 싸워댔던 몇 달간의 공방은 마치 그 둘 사이에서만큼은 없던 일처럼 지워져 버렸다.

모든 생채기와 어색함은 자녀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 깊은 상처를 남겼음에도 엄마·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엄청난 소송비만을 날리고 재결합하기 전, 엄마·아빠가 자식들 앞에서 약속했던 모든 것들은 애초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흘러가고, 동생은 첫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동생네로 조카의 첫 이불을 선물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산한 동생, 친딸에게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었던 ‘친정엄마’의 마음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고 조카를 위한 선물이야 질투할 일이 아니었지만, 두 살을 갓 넘긴 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야 동생과의 사이에서 편애가 당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서운함을 감추고 자랐다.내 아이 대에 와서도 이 편애가 계속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엄마는 내 아이에게는 보통 친정엄마가 챙겨준다는 아이 이불, 내복, 배냇저고리 등의 유아용품 어느 한 가지 선물로 보내온 적 없었다. 원래 그런 거 신경 못 쓰는 성격이라 생각했다. 동생에게는 보내졌다는 ‘친정엄마의 선물’ 이야기를 들으니 맘속에서 폭풍이 일었다. 꿀렁꿀렁 몸 밖까지 넘쳐대는 설움과 화를 더는 억누를 수 없었다.

얼마 뒤 다른 일로 걸려 왔던 엄마의 전화에서 터져버렸다. 모든 것을 쏟아내듯 서운함을 토로했다.

“정말 그러면 안 되지, 내 아이한테도 그러면 안 되지!” 서린 한을 한껏 소리치며 쏟아내고 울었다.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대들 듯 따져 묻고 원망을 쏟아냈던 것은 ‘나의 일’ 때문이 아니었다.

‘내 아이의 일’이었기에 나는 그러하였고, 또 그래야만 했다.

내 아이가 조카와의 사이에서 아무 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받아왔던 편애라는 대접을 은연중에 받게 될 거란 걸 깨달았을 때, 아이가 언젠가는 어린아이의 육감으로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미 모성으로 무장해 있는 내 마음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나는 무섭고 어렵고 맞서기 힘들었던 존재에 비로소 눈을 마주하고 용기 내 맞설 수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숨이 끊어질 듯 울고 있는 내게, 저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다가왔다.

아주 아주 작은 손으로 내 등을 토닥토닥, 토닥토닥 말없이 두드려주었다.


내 아이는 올해로 열네 살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은근한 편애’는 실재한다.

아직은 나만 느끼는 아픈 그것을, 아이는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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