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과일이 더 맛있다

체질따위 그렇다 치더라도.

by HeySu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이 했던 말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거울이 된다.

엄마가 자신의 ‘상태’에 압도당해있는 상태에 아이를 본다면, 아이는 엄마의 시선에서 소외가 된다. 이때 경험한 근본적인 자기 소외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 나의 상태를 흔들리게 만든다.

아이가 엄마의 시선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반영 받지 못한다면, 아이는 근본적인 소외와 존재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고, 부정적인 평가나 피드백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안정적인 시선의 반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나를 혼내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유년기 기억 속에 나를 사랑스럽게 눈 마주쳐주는 순간은 한순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내 기억의 오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도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군가 내뱉었을 때 취해지는 반응처럼, 내겐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일이다.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시기에 엄마의 시선은 아이의 정서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 탄탄하게 키워내기도 한다.

자라다 보면 당연하게 혼날 일은 많이 생긴다. 하지만 무섭게 혼나는 과정에서조차 아이는 ‘비난’의 감정을 경험해선 안 된다. 그것도 나를 가장 지지하고 보호해야 할 제1의 양육자가 그러하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아이의 정서를 다치게 하고 망가뜨리는 일은 성인이 된 아이의 삶에까지 찾아가 지속하여정서적 지지가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후폭풍을 감당하기엔 그 고통이 끈질긴 불치병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으로 몸뚱이가 마구 흔들려진 사람은 안다. “타인의 지옥”에 빠진 뒤 온전한 나를 꺼내 올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를 내가 하는 ‘나의 평가’로 둔갑시키거나 오인해서는 안 된다. 당당하게 ‘나’를 ‘사랑받을 가치 있는 존재’라 여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끊임없는 되뇜을 통해서 유년기의 억눌린 나를, 눈총받던 나를 밝은 세상 밖으로 잡아 끌어줘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엄마는 사상체질에 유독 빠져있는 사람이다. 사상체질은 사상의학에서 사람 장기의 대소에 따라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네 가지 형태의 체질적 특성으로 분류한 것이다. 엄마는 평생 이것을 기준으로 본인 먹거리는 물론 우리에게 틈만 나면 설교처럼 이야기하며 강조했다. 엄마가 말하는 그 ‘체질’이란 것이, 이미 일상에서도 한방치료에서도 널리 신빙성 있게 쓰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난 그 구분이 달갑지 않고, 먹거리를 체질에 따라 골라 먹어야 한다는 이론들에 자꾸 뾰족한 마음이 일어난다.


하교하거나 직장에서 지쳐 퇴근하고 돌아오면, 엄마는 가끔 식탁 위에 놓인 과일을 먹으라고 하셨다. 과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었지만, 먹는 입이 많아 형편상 그랬는지 싱싱하고 질 좋은 탐스러운 과일을 장 봐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수입 과일이나 제철을 조금 앞서 나온 과일은 좀처럼 맛보기가 힘들었고 늘 조금은 시들어 못난이 볼품없이 못생기고 맛이 덜한 멍든 것들이 많았다.


퇴근 후 어느 날이었다. 집안에서 그나마 유일한 말 상대였던 동생 방에 들어갔다. 말 수가 워낙 적고 나이 차도 네 살이나 나는 동생과는 보통의 자매 사이와 달리 그다지 친밀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틈틈이 난 동생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어쩌면 동생은 그때의 나를 달리 기억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비록 엄마가 다른 이복 자매긴 했어도 나는 동생을 편 갈라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동생 방안에는 탐스럽고 알이 굵은 포도 한 송이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다. 여름의 시작이라 달짝지근 풍기는 포도의 단내가 향긋했고, 보랏빛이 머문 푸르스름한 포도알 색깔이 유독 예뻐 보였다. 동생 방에 들른 엄마는 내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따로 챙겨진 포도를 보고 잠시 당황해 서 있던 내게, 엄마는 급하게 체질 이야기를 꺼냈다.

“넌 포도가 몸에 안 맞는 체질이야. 포도는 찬 성질이라 너는 저걸 먹으면 안 돼. 쟤는 너랑 반대 체질이라 포도가 맞아. 넌 식탁에 있는 다른 과일 먹어.”

내 시선을 피해서 몰래 방안에까지 포도를 따로 넣어줘야 했을 만큼의 엄마 속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싸하고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체질로 둘러대는 말까지 들으니 더 속이 상해왔다.

나 먹으라고 챙겨놨다는 식탁 위의 접시에는 시들고 못난 다른 과일이 담겨있었다. 막상 보니 화가 날 듯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 과일은 먹지 않았다. 속으로는 ‘나도 포도 좋아하는데...’ 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했다. 동생의 방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던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생생한 ‘편애의 기억’ 중 하나이다.

결혼해 분가할 때까지 함께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당연히 받아 온 편애인데도, 또 새로운 듯 느껴버린 ‘편애’ 앞에서 바보같이 상처를 입었다. 왜 끊임없이, 엄마라는 존재의 원초적 모성애를 포기않고 바랬던 걸까. 모성애란 것은 생물학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영영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난 엄마에게 여전히 바라고 있는 걸까.


엄마의 시선 속에 내가 늘 배제되어있었다는 걸 안다. 그리하여 사회생활 하는 동안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나를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힘들었던 거란 걸 안다.

다 큰 어른이 되고서야 이제는 안다.

이제 그만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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