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분유맛 자판기 우유

아빠 따라 등산 다니던 길의 소회

by HeySu


나는 자매 중 가장 몸놀림이 날랬다. 체력도 걔 중 괜찮았던 것 같고,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던 성격인지라 골목을 누비며 골목 아이들을 끌고 놀았던 날이 많았다.

따로 공부해라 마라, 방과 후에 내가 뭐하고 어딜 다니든 신경을 쓰지 않는 집이었던지라 저녁 먹기 전에 들어가면 되는 '자유스러운' 날들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초등 시절 운동회 달리기 종목은 늘 대표로 뽑히었고 학교 간의 대회에서도 늘 입상하는 등, 달리기 상장은 매년 꼭꼭 받아왔다.


아빠는 주말마다 산에 다녔다. 내가 따라가겠다고 한 것인지, 아빠가 가자고 한 것인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등산길에 내가 늘 함께했다.

어설프게 조금 오르다 지쳐버리는 그냥 보통의 어린아이였다면 아빠는 날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지 모른다. 징징거리는 건 우리 부모님껜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나중에 언니로부터 듣고 보니 내가 울면 아빠가 머리를 엄청 쥐어박았다고...


집 근처의 가장 가까운 산은 관악산이었다. 서울대학교 정문과 나란히 한 버스 정류장에서 등산을 즐기러 온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의 나는 돋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서울대학교 정류장에서 우르르 같이 내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서울대'하면 우리나라 최고 똑똑한 학생들이 가는 대학교라는 관념 하나만큼은 콱 박혀있었기에 내심 존경 어린 눈빛으로 부러워도 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서울대학교에 가고 말겠다는 의지나 집념 따위는 그때 심어지지 않았던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신기할 일이다.


초등 3,4학년 무렵의 나이인 나는 중도에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 아빠의 지체 없는 발걸음을 뒤따라 다람쥐처럼 뛰듯이 땅을 박차고 올라다녔다.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알게 해 준 아빠께 감사했다.

지금은 산 동물들 놀랄까 봐 정상에서 "야호"하는 일은 금지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사는 집 바로 동네 뒷산에서는 금지라고 하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

'야호'를 외쳐보라는 아빠의 부추김에 안 그래도 부끄러움 많던 나는, 한껏 오른 열로 이미 벌게져 있는 얼굴이 더 검붉어질 정도로 수줍으면서도 '야호'를 외치곤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일은 더더군다나 좋았다. 폴짝폴짝, 넘어지는 일 없이 잘도 내려왔다.



아빠는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면 고무 다라에 떡 같은 간식거리들을 잔뜩 담아 쭈그리고 앉은 할머니들로부터 떡 한봉다리를 사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호사였다. 흰 떡고물이 잔뜩 붙어있는 떡이었는데 고소함이 엄청나서 매우 좋아했었다. 어쩌면 아빠가 등산가는 새벽, 알람 따위가 없었었어도 벌떡 하고 자동으로 몸이 일으켜지는 마법을 부린 건, 이 하얀 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가끔 그 떡이 그립다. 시장 떡집이 세 군데나 되는데도 비슷한 떡은 찾아 먹어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추억이 맛인가 보다 하는데 못내 아쉽다.

달랑달랑 , 떡이 든 봉지에 손을 넣어 한 개씩 빼먹으면서 두 다리 엇갈려가며 깡충깡충, 걷는 듯 뛰는 듯 아빠 근처를 맴돌며 따랐다.


등산로를 내려와 집에 갈 버스를 기다린다. 정류장 뒤편으로는 자판기 몇 대가 나란히 서 있는 대합실 공간이 있었다. 정류장 위로 덮인 지붕 아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유로이 서 있고, 아빠는 버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철컹하고 백 원짜리 하나 자판기 동전 구멍 안에 집어넣고 밀크 우유를 뽑아주셨다.

지금처럼 고급 우유도 아니고, 가짜 분유 우유다. 유난히 뽀얗고 달짝지근 뜨끈한 우유가 식도를 타고 죽 내려간다.

혀 전체에 퍼지는 것은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더불어 행복감이었다.


그게 그렇게 좋았기에 나는 마흔다섯이 넘은 지금에도 그 맛이 여전히 기억난다 . 그날의 공기는 산 위부터 흘러 내려온 나무 냄새, 숲 냄새가 났다. 빨강 파랑 옷에 모자도 꾹 눌러쓴 등산객들의 쨍한 색채도 눈에 보이듯 여전히 선명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올 무렵부터 비가 오는 날도 있었다. 비로 인해 공기가 차가워지고 젖은 몸도 떨려올 때 아빠가 우유를 뽑아 건네셨다. 그날 손에 감싸 쥐었던 우유는 찬 손에 온기를 전하며 모락모락, 하얀 김을 뽑아 올렸다 .

정류장 밖으로 내리는 비, 젖어 들어가는 풍경, 내 손에 들린 우유의 뽀얀 김은 그림처럼 그 순간을 박제시켰다.


요즘도 살면서 가끔 마음이 허해질 때는 길을 가다 일부러 자판기를 찾는다. 공원 산책을 갔다가도, 지하철 플랫폼에서 한참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리면서도, 가끔 들르는 도서관의 자판기에서도 밀크 우유를 찾는다 .

위생 문제인지 왜인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우유 메뉴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있어 봐야 코코아 정도?

싸구려 분유라도 찾아 타 먹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날도 더러 있다 .


유독 나만 데리고 다녔던 아빠의 등산길, 그 반나절의 시간은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함께 걷기도 하고, 뒤처지는 나를 챙기느라 간간이 뒤돌아보는 아빠가 좋았었다 . 산을 잘 타는 나라서, 아빠의 속도를 맞출 수 있는 나라서 내가 기특하고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 시간은, '사람 OOO'으로 아빠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충격처럼 실망하고 상처받게 되었던 마흔셋의 어느 날까지, 모두에 맞서 아빠의 편에 서서 옹호하고 믿었던, 기꺼이 아빠를 애정했던 내 마음들이 잔뜩 만들어진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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