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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Apr 14. 2023

"거울과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합니다"

"거울을 흘깃 보거나 옷매무새를 보거나 머리에 뭐 묻었나를 보잖아요. 근데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저를 봅니다. 제가 저를 진단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거품인가 저는 스스로 그걸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거 거품인 것 같은데.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 거울과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지난해 7월 MBC 100분 토론 '유희열의 표절 논란'에 패널로 출연한 김태원 씨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꺼낸 이야기다. 표절이라든가 작곡, 음악 등에 완전한 문외한이기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없지만, 김태원 씨의 이 말은 듣기에 참 좋았다.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본 적이 언제였을까. 옷방과 화장실에 전신을 다 비출 만큼 큰 거울들이 있지만, 항상 거울로 일부분만 들여다봤다. 셔츠가 제대로 다려졌는지, 옷깃은 잘 세워졌는지, 드라이는 잘 됐는지, 뭔가 빠뜨린 건 없는지. 날 것의 내 모습은 왠지 피하게 됐다. 잠자코 나 자신을 쳐다보는 건 성가신 일이었고,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같이 하는 일이나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업무는 대개 취재와 글쓰기이고, 취재에서 글쓰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끈덕지게 들여다본 적이 근래에는 없었다. 매일이 일정한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쳇바퀴의 연속이었고, 글을 쓰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에 능숙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울로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항상 쓰던 문법에 맞춰 어제 쓰던 단어와 문장을 오늘도 반복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를 고민하지 않고 건너뛰었다. '팩트와 맞춤법만 틀리지 않으면 되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에서 내가 쓴 글을 붙여 넣고 오류만 수정하면 됐다. 그게 거울을 흘깃흘깃 보는 모습이다.


비유하자면 OEM 방식으로 중국 공장에서 찍어내는 중저가의 SPA 브랜드 같다고 할까. 깔끔하고 무난한 퀄리티는 보장이 되지만, 결코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는. 저렴한 맛에 사람들이 찾지만, 지갑이 두둑하거나 대체재가 생긴다면 단연코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고 백화점 2층에 입점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매달은 아니더라도 분기나 반기에 한 번씩은 이전의 브랜드보다 가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그런 SPA 브랜드가 되어보자 하는 그런 다짐 정도. 


최근에 안희연 시인이 쓴 '단어의 집'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규모, 몰드, 버력, 잔나비걸상, 적산온도, 길항, 버저비터, 휘도 등 가장 비문학적인 단어들에서 문학적 감상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글재주를 보고 있자면 감탄 밖에 나오질 않는다.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단어들에 시인이 얼마나 애착을 갖고 천착을 하는지 새삼 경외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모르는 단어와 문장이 나오면 대부분 넘겨짚어왔다. '이런 의미로 쓰였겠지'하며 재빨리 글을 덮었다. 그래서 다짐을 해보자면, 국어사전을 가까이해보자는 거다. 새로운 발상과 생각은 새로운 단어와 문장을 통해 태어날 수 있다. 내가 몰랐던, 혹은 쉽게만 생각했던 단어들 속에서 의미와 감상을 길어 올려보자는 것이다. 이런 다짐들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다짐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일부러 브런치에 글까지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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