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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Aug 07. 2021

안개

    

  대문을 여니 싸한 기온이 목덜미를 스친다. 사방이 짙은 안개에 잠긴 상태다. 자동차가 길게 늘어섰을 도로는 겨우 몇 미터 앞만 보일 뿐, 차량의 형체들은 보이지 않는다. 희뿌연 안개가 생업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들을 꾸역꾸역 삼킨다.

  자동차 앞 유리 습기를 제거하고자 와이퍼를 작동한다. 생업을 멈출 수 없으니 안개 속을 헤치고 달려야 할 참이다. 비가 온다고 눈이 내린다고 일상을 멈출 수 있으랴. 날씨 변화에 주춤거릴 처지가 아니다. 문득 안개 자욱했던 호수 둘레 길이 떠오른다.

  물안개가 잠포록이 내려앉은 저수지는 묵언 수행 중인 것만 같았다. 빗방울이 떨어져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 자박자박 걷는 낮은 발걸음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방금 함께 걷던 지인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더니 급기야 그들의 발자국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오히려 안개 밖에 혼자 갇히고 말았다.

  눈앞에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리라. 안개에 가려 먼 곳을 볼 수 없으나 발아래 작은 물상들과 눈을 마주하는 시간도 좋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대부분 겪지 않을 삶을 걱정하느라 현재의 귀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삶이 어찌 늘 찬란하기만 하랴. 때론 천둥 번개와 짙은 안개 속인 듯,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다. 그렇다고 달리던 생을 멈출 수는 없지 않던가. 삶의 가속도를 줄이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라는 자연의 배려만 같다. 안개 속에 갇힌 작은 것들의 움직임에 귀 기울여 보자. 땅을 비집고 오르느라 부딪히는 작은 생명의 소리도 안개에 가려 들리지 않던 새소리도 비로소 들리리라. 

  홀로 해찰을 떨다 놓쳐버린 지인을 찾아 보폭을 맞춘다. 도시에선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을 또 다른 지인이 카메라에 담아준다. 생업에 묶여 이렇듯 소소한 시간을 누린 시절이 언제인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덕분에 주위에 숨탄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오감을 열고 소리에 집중한다. 작은 것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잦아드나 싶더니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선명히 살아난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주인을 찾고 있는 것일까. 녀석의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레 큰길로 진입한다. 짙은 안개는 신기하게도 자동차가 달려가는 속도에 맞춰 길을 연다. 짙은 안개 속일지라도 세상을 두려워말고 용기 내어 나아가라는 의미인가. 안개가 유난히 짙은 날엔 더 찬란한 햇살이 떠오르는 것을 기억한다. 삶이 안개 속만 같다고 두려워 말자. 짙은 안개를 벗어나면 분명 찬란한 당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다만, 세상을 향한 삶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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