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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May 19. 2021

님의 침묵

현란한 말보다 가슴을 울리는 간절한 언어는 침묵인지도 모른다.

찌루 시선은 오늘도 창가에 머문다. 꼬와 나란히 앉아 있던 날이 그리운가 보다. 몸짓 작은 녀석의 뒤로 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평소 좋아하던 간식으로 달래 보지만 신통치가 않다. 혹여 마음에 병이 들지나 않을까, 친구를 그리는 목마름에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두 녀석이 처음 만난 그날 풍경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팽팽한 긴장 속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놈과 빼앗으려는 놈의 거친 하악질로 분위기는 살벌하다. 영역확장을 위한 힘겨루기는 어찌 보면 짐승의 본능이리라. 두 녀석의 첫 대면이 순조롭지 않았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걱정과는 달리 둘은 더 없는 단짝이 된다.
  종일 비가 추적거리던 날이었던가 보다. 큰아이가 홀로 비에 젖어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 꼬를 집으로 안고 온 것이다. 그날부터 가족들은 고 작은 녀석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다. 등과 다리는 검은 색 털이고, 배와 콧등은 하얀색 털로 마치 턱시도를 입은 듯 매끈한 고양이다.
  찌루는 어린 꼬가 혼자인 것이 안쓰러워 지인의 집에서 안아 온 녀석이다. 온몸이 하얀색 털인 우아한 자태에 페르시안 종이다. 꼬가 의젓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면, 찌루는 고양이답지 않게 살갑고 애교가 넘친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평온해진다. 날이 갈수록 인간과는 다른 정이 쌓인다. 녀석들과 정답게 지낸 시간이 두 해가 꽉 찰 때쯤이리라.
  꼬가 저 홀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여느 때와 다른 녀석의 행동을 일찍 알아채지 못한 탓이리라. 먹이도 잘 먹고 조용하던 녀석이 숨을 헐떡이는 걸 더운 날씨로 여긴 무지함이다. 숨소리가 심각하여 급히 동물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폐에 물이 차올라 호흡이 어려운 상태란다. 매번 정기검진을 받아왔던 터인지라 진료 결과가 당혹스럽다. 의사의 말이 고양이는 점잖은 동물이라 아파도 내색을 하지 않는 편이란다. 말 못 하는 녀석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하니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꼬의 입원을 결정하고 의사에게 꼭 살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선다.
  찌루는 사라진 꼬의 채취를 찾아 사방으로 분주히 뛰어다닌다. 늘 함께하던 친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몰라 몹시 불안한 모양이다. 안쓰러워 다음날은 찌루를 데리고 면회를 가려고 했는데, 그 애틋함도 모르고 꼬는 매정히 이별을 고한다. 그리 맥없이 꼬를 보냈다. 예고 없는 이별의 고통을 어찌 모르랴.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한용운 시인은 읊지 않았던가. 이별의 대상이 사랑하는 연인이든 형제든 슬픔의 깊이는 비슷하리라. 지난날 느닷없이 부모님과 사별하고 그리운 당신을 수없이 불러도 대답 없는 침묵에 절규하던 시간이 또렷하다.
  투병 중인 어머니는 속절없이 말라갔다. 몸을 감싼 근육마저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 채,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숨이 차올랐다. 저렇듯 고통스러운데 차라리 편안한 곳으로 가시면 낫겠다 생각하다가 흠칫 놀라 몸을 떨었던 기억도 여러 번이었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 지극정성 간호에 매달리는 언니에게 비하면 그저 방관자와 같던 나였기에 언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말 없는 침묵이 길어졌다. 옛말에 불행은 연이어 온다고 했던가. 코끝을 간질이던 봄날, 이별을 채 정리할 사이 없이 몰아닥친 부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표현이 서툴렀던 당신의 속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탓이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아버지와 며칠을 지내며 나누었던 짤막한 몇 마디가 허공에서 맴돌았다. 당신은 내 걱정은 하지 말라며 시어른 잘 모시라고 하였다. 결혼 직후인 딸의 등을 떠밀어 제집으로 보낸 지 삼 일째였다. 당신과 며칠 더 머물러 함께하였더라면, 이토록 애통하지는 않았으리라. 회한이 서린 마음에 침묵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길은 한없이 적막했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문상객도 없는 상가는 어둠보다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메마른 목은 컥컥거릴 뿐 울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한다고 봉분을 매만지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쓸쓸히 떠나는 상여 뒤를 휘청거리는 자식은 맥없이 따랐고,봄꽃마저도 차마 잎을 펼치지 못한 채 잔뜩 움츠렸다.
  주인을 떠나보내고 적막에 휩싸인 옛집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선뜻 찾지 못하고 주저하던 곳, 애환이 서린 옛집 대문 앞에 선다. 마당 한구석에 낯익은 냄비가 뚜껑이 사라진 채 홀로 뒹굴고 있다. 된장 건더기를 고기라며 수저에 얹어주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 기억마저도 그리운 마음에 코끝이 찡하다. 냄비를 한쪽에 바로 놓아두고 어머니의 체취를 맡고자 부엌문을 연다. 온기가 사라진 부엌은 오랜 세월 탓에 천정이 무너져 뻥 뚫린 채 하늘이 주인이다. 순간 눈앞이 뿌예진다. 서둘러 뜰팡으로 나와 말루에 소복한 먼지를 털고 앉아 집안을 둘러본다.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 집안 곳곳은 추억 속 물상들로 가득하다.
  나의 시선은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쓴 어머니가 광으로 부엌으로 분주한 발길을 쫓는다. 아버지는 지게 가득 베어 온 소꼴로 여물통을 채운다. 송아지를 낳은 암소가 기운이 솟는지 우렁차게 울어 젖히는 소리가 마치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두 분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부를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적막 속 침묵만 무겁게 흐른다.
  찌루의 시선은 여전히 창가를 향한다. 녀석은 슬픈 이별을 이겨내는 중이다. 아니 어쩌면 단짝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 슬픔을 삭이는 중이리라. 하늘도 녀석의 애틋한 마음을 아는 듯 봄빛을 찬란히 비춰 그의 침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다.
  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던가. 어쩌면 현란한 말보다 가슴을 울리는 간절한 언어는 침묵인지도 모른다. 살며시 그들이 보내는 언어에 귀 기울인다. 숨소리보다 낮은 신호에 나만의  몸짓 언어로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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