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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Aug 16. 2021

달리고 싶다

그리움...

   

  빈 벽에 불량배처럼 삐딱이 몸을 기대고 서 있다. 마치 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쇠줄 자물쇠에 단단히 묶인 채다. 달리라는 운명을 타고났건만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매인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갑갑하다. 그의 숨통을 풀어주고자 채워진 자물쇠를 가만히 푼다.

  물상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오랜 시간 비딱한 자세로 서 있었으니 성한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다. 베란다 한편에 쓸쓸히 놓인 자전거는 큰아이가 타고 다니던 것이다. 물상 최고의 시절은 아마도 아이를 태우고 교정을 누비며 달리던 때가 아니었을까. 자전거는 그 시절이 그립다는 듯 허리를 비틀어 앞바퀴가 창밖을 향해 있다. 한구석에 힘없이 묶인 자전거를 밖으로 끌어낸다. 

  딸아이처럼 가볍게 자전거에 오른다. 엉덩이가 안장에 닿으려는 순간 중심을 잃고 욱쓰러진다. 무릎에 피가 나는 건 문제가 아니다. 혹시나 누가 보았을까 봐 주변을 둘러보느라 아픈 줄도 모른다. 다행히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딸아이 키가 나보다 훌쩍 크니 그 높이가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의자의 높이를 간과한 탓이다. 두 개의 바퀴가 하늘을 향해 빙그르르 돌며 신이 난듯하다. 오랜만에 바퀴를 굴린 자전거의 속은 후련한가. 녀석은 내친김에 신작로를 거침없이 달리기를 원하지만, 그 바람은 다음으로 미룬다.

  달리고 싶은 것이 어디 자전거뿐이랴. 혈육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있다. 팔십년대 이산가족 재회 프로그램을 보고 울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생김새를 보고 기억을 더듬어 혈육임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이를 따라 시청자도 함께 눈물짓던 일이 어제의 일처럼 눈에 선하다. 또한, 그들은 지금도 가족이 보고 싶어 애달프다. 애써 그 마음을 외면한 채 굵은 사슬에 묶여 녹슬어간 세월이 얼마인가. 덧없는 세월에 육신은 나뭇등걸처럼 주름지고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메말라 알아보기마저 쉽지 않다.

  급기야 혈육이 아니라고 의자를 박차고 나온다. 달려가 안기고 싶었던 핏줄이건만 멈추었던 시간이 너무도 길었던가 보다. 고달픈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형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생전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었던 형은 어디 가고 대신에 조카를 만나는 자리이다. 사진 속 형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하던 그 모습이 아닌가 보다. 조카의 모습 또한, 낯설기만 하니 어찌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돌아가신 형은 말이 없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짧다. 먼 길 달려간 삼촌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남북 분단으로 혈육은 서로를 향해 달려갈 길이 막혀 있다. 머지않아 만날 수 있으리란 염원과는 달리 흐른 세월이 짧지 않다. 때론 그 길이 훤히 열릴 것만 같다가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닫히기를 여러 번이다. 자물쇠에 단단히 묶인 철책은 쉬이 열릴 수 없다는 듯 무심히 녹슬어 간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마음 졸인 것이 어디 북에 혈육을 두고 온 사람뿐인가. 순한 봄바람인 듯 불어온 화해의 꿈을 안고 힘차게 톱니바퀴를 돌리던 이들도 있다.

  공장은 가동을 멈춘 채 꼼짝없이 묶여 침묵하고 있다. 제품 대부분과 기계는 낯선 도시에서 주인이 달려오기만을 기다린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달릴 기운마저 잃은 채로 붉게 녹슬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품은 마음의 깊이를 간과한 탓이리라. 좀 더 신중해야만 한다. 누군가에게는 꿈이요,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삶이 담긴 곳이다. 그들의 삶에 단단히 잠긴 자물쇠를 풀어야 한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의 바퀴는 어떠한가. 쉼 없이 달려오느라 다른 사람의 마음결을 간과한 적은 없는가. 그러고 보니 큰아이를 임신했을 적이 떠오른다. 키 작은 마른 몸에 유독 배만 도드라진 모습이다. 남산만 한 배를 끌어안고 뒤뚱거리며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찌 그 시간을 고단했다고만 기억하랴. 오직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거침없이 달렸던 것 같다. 예기치 못한 시련에 풀지 못할 자물쇠를 채울 줄 어찌 알았으랴.

  우리는 저마다 살아오며 힘차게 달렸던 인생길을 추억한다. 때론 몸이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기도 한다. 과거의 거침없던 열정이 현재의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문득, 지금껏 달리지 않았던 낯선 길을, 아니 누군가가 달리고 있을 훤한 길을 달려 보고픈 욕구가 강렬하다. 지난날 앞만 보고 전력 질주했다면, 이제는 그리하지 않으리라. 동행하는 이의 마음 길과 주변의 풍경도 살피리라.

  나를 자빠트린 자전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제자리에 놓여있다. 쓰러진 내 모습에 박장대소하듯 뱅그르르 돌던 바퀴도 다시 창밖을 향한다. 너무 오랜 기간 녀석을 외면할 순 없다. 아니, 훗날 달리고자 마음먹을지라도 브레이크가 붉게 녹슨 뒤라면, 달릴 수 없으리라. 서로가 염원하는 지금, 맑은 종소리를 울려야 한다.

  바퀴는 거침없이 신작로를 달리는 것이 원형이자 본능이다. 혈육을 염원하던 이들의 마음에도, 열정을 다해 톱니바퀴를 돌리던 이들에게도 날파람이 아닌 순풍을 가득 채워야 한다. 구석에 있는 자전거 안장을 툭툭 쳐본다. 녀석이 부스스 반응하는 듯하다. 

  요즈음 새롭게 달리고 싶은 길이 있다. 인생길이 향한 곳, 삶의 갈피마다 서린 마음을 뒤돌아본다. 그리움에 가끔은 눈물짓고 때로는 배시시 웃는 이들과 함께 수필의 오솔길을 달리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주변 풍경을 보며 천천히 달린다. 감성이 붉게 녹슬어 창작의 톱니가 어긋나기 전에 사유의 바퀴를 살펴야 한다. 삐걱거리고 녹슬기 전에 내 삶을 퇴고하여 수필의 울창한 숲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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