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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May 18. 2021

두개의 방

삶은 두개의 방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지 않난 싶다


  손발은 물론 입술마저 파르르 떤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바지를 계산대에 냅다 집어던지는 게 아닌가. 며칠 전 고객이 구입한 바지가 문제의 발단이다. 직접 바지 안 춤에 이름을 써놓고 갔던 상품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써놓은 표식을 찾아 보여주지만, 자기 것이 아니란다.

  마음에 철벽을 치고 이쪽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전날 휴무로 다른 직원이 한차례 곤욕을 치른 모양이다. 상황을 전해 들을 때만 해도 차근차근 설명하면 될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한 일이다. 사건이 이렇게 진전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을 속였으니 보상하라는 고객에게 제품 설명은 이내 말씨름이 되고 만다. 마음이 단단히 틀어진 그녀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런데 그녀의 말과 행동이 좀 이상하다.

  단지 바지 때문에 이토록 역정을 낸다고 하기엔 미심쩍다. 당신의 필적을 도용한 다른 상품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는 당했으나 이번은 절대 당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모습이 사뭇 의연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녀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보기엔 일관되게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바지엔 별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 생각에 집중한 채, 누구의 말도 들으려 않고 불신의 철벽을 쌓는다. 그녀도 나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불현듯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종종 할머니 방에서 잠이 들곤 했다. 할머니의 몰랑몰랑한 젖무덤을 만지고자 품속으로 파고들면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물론 할머니 방을 찾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토와 지푸라기를 버무려 만든 벽에는 창문이 없어 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답답해하자 아버지는 벽에 손바닥만 한 작은 구멍을 내어 동그란 유리를 달아놓았다. 유리를 통해 밖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마당에서 일하는 부모님도 창밖 풍경도 유리를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가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대화를 끊은 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당신만의 세계에 홀로 빠져있는 듯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할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가 줄었고, 더는 누구를 보고도 웃어주지 않았다. 삶의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던 그즈음 할머니에겐 오직 들에 대한 기억만 또렷했던 것일까. 날이 밝아오기 무섭게 밭으로 간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잡초가 아닌 곡식을 죄다 뽑아냈다. 할머니만의 들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역정에도, 아니 간곡한 당부에도 돌아서면 같은 일을 반복하니 부모님의 근심은 커졌다. 급기야 할머니는 영역을 이웃의 농토까지 넓혀갔다. 평생 일만 하신 것에 대한 한풀이 같았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오직 당신만의 생각에 갇혀 철벽을 쌓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슬픈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어른들은 할머니의 행동이 치매를 앓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들은 할머니가 들에 나가지 못하도록 집안에 둔 채 일을 다녔다. 때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할머니가 계신 방문을 잠가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의 무표정한 시선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 마당과 담을 넘어 들로 향하는 듯했다. 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무서워 할머니의 방을 멀리했다.  

  할머니는 과연 당신의 방 벽에 기대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에게 밭은 자식과 가족을 지켜준 소중한 보물이지만, 고달픈 삶의 현장이었으리라. 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고 계속하기엔 힘에 겨운 애증의 관계라 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할머니는 그 힘겨웠던 들일을 손에서 놓자 힘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부모님도 집안 어른들도 지쳐가던 어느 날 할머니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당신의 세계에 갇혀 계시다 문득문득 온전한 마음이 돌아오면 나를 꼭 안아 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의 저편에서 아렴풋하다.

  파출소 순경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녀는 자녀들이 결혼하여 외지로 나가고 병환 중인 남편과 단둘이 생활한단다. 그녀의 작은 몸은 등까지 굽어 더욱 작아 보인다. 저 체구로 자식을 키우느라 일손을 놓을 새가 없었으리라. 더구나 병든 남편을 간호하느라 활처럼 휜 자신의 육신도 돌볼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고단함을 이해하기보단 억지소리나 하는 고약한 노인이라며 마음으로 몰아세운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삶의 훈장만 같다. 그녀가 마음의 빗장을 풀었는지 노기 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다. 다행히 상황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곁으로 다가가 굽은 등에 손을 얹고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말하니 비로소 그녀도 빙그레 웃는다. 평소 저렇듯 환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일상의 고단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칠고 낯선 모습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의 불만을 차분히 듣고 해결하기보다 골치 아픈 고객을 어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나 또한 그녀처럼 나만의 방에 갇혀 산 건 아닌지 돌아본다.

  우리는 간혹 정신적인 결함이 없어도 혼자만의 방을 원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아픈 기억을 잊고자 벽을 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현실과 이상 두 세계 속에 공존하며 때론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한다. 내가 짊어지기 어려운 삶 앞에서 ‘도피’ 내지는 ‘회피’ 처로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에 머무는 것도, 아예 갇혀버리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삶은 두 개의 방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지 않나 싶다. 선택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방에 들어 편안하고 행복하다면, 그보다 평화로운 방이 또 어디 있으랴. 다만 모두가 인적 없는 외로운 섬이 아닌 옛사랑 방처럼 끈끈한 정이 흐르는 방에 머물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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