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셔보세요. 안 잡아먹어요
호주에 빵집을 열긴 했는데요...(9)
다음 날, 봉규는 출근 준비를 하며 내내 소년의 표정을 떠올렸다. 메튜가 빵을 받아 들고 기뻐하던 순간과, 소보로빵을 맛보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분명히 맛있어했어' 봉규는 생각했다.
‘근데 왜 이제껏 안 팔렸을까?’
그 순간 그는 무릎을 쳤다.
'내가 그동안 새 빵 진열은 해놨지만, 맛을 보여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구나.'
그는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그저 빵을 판매할 생각만 했지, 새 빵을 시도해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그들에게 맛을 보여줘야지.’ 그는 마음을 굳혔다. 봉규는 오늘 당장부터 가게에서 시식을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빵을 잘라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손님들이 오가며 한 번 맛을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마 이 동네에서, 아니 호주에서 시식하는 빵집은 나뿐일 거야!' 그는 생각하며 혼자 기뻐했다.
요 며칠간 이 빵집에서는 시식을 제공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드나드는 사람이 늘었다. 손님인 척 시식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생기긴 했지만, 봉규는 그것조차도 기뻤다. 그동안 한산했던 가게에서 고민에 빠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출도 어느 정도 띄게 늘었다. 물론 시식에 드는 비용을 빼고 나면 수익은 큰 차이는 없겠지만, 그는 그것을 광고 비용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정도는 투자할 만해, ' 봉규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주변에서 옷을 팔고 있다는 팔라쉬도 종종 빵집에 들렀다. 그는 한 번 올 때마다 빵 한두 개를 사 가면서, 그만큼의 시식을 즐기고 갔다. 오늘만큼은 팔라쉬도 시식 순회 후 머쓱한지 봉규에게 말을 걸었다.
“이 집 빵은 정말 다 맛있어요.”
봉규는 그의 칭찬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식만 하고 나가는 고객들에 비해 그는 안정적인 고객이었다.
“고맙습니다. 늘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네요.”
그러자 팔라쉬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이 빵들은 어디 빵인가요? 원래 여기 빵이 아닌 것 같은데”
계산대에선 봉규는 진열대 너머 무슨 빵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단팥빵과 소보로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한국에서 많이 먹는 빵이에요. 한국만 파는 건 아니겠지만".
그러자 팔라쉬는 눈을 반짝이며 봉규에게 대답했다.
“한국인이세요?"
의아해하는 그를 보고 봉규는 그가 이어 자신이 북한인인지, 남한출신이냐 물을 거라 생각했다. 세계정세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늘 한국인에게 묻는 탓이었다. 그러나 팔라쉬는 또 다른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었다.
"전 당신이 중국인인 줄 알았어요. 한국 사람이었군요.!”
봉규도 순수하게 되물었다.
“아, 그래요? 그러실 수 있죠. 팔라쉬는… 인도분이신가요?"
그러자 팔라쉬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아뇨".
봉규가 순간 말실수를 한 건지 걱정이 들려는 순간, 팔라쉬가 이내 "저는 파키스탄 사람이에요.”하며 크게 미소 지었다. 둘 다 헷갈린 만한 나라에서 왔다며 웃었다.
국적소개 이후로도 팔라쉬는 계산대에 한참을 서서 이야기했다. 본인 딸이 본인과 다르게 이쁘다는 얘기와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틈나면 한국 배우와 가수들 얘기를 하며, 심지어 집에서 혼자 한국어도 배운다고 했다.
“다음에 따님과 함께 와요. 한국 빵을 준비해 둘게요,”
봉규가 말하자, 팔라쉬는 환한 미소로 “그런데 우리 딸은 잘생긴 한국배우를 좋아해요”하며 성큼 가게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