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빵집을 열긴 했는데요...(8)
‘마감세일이라….'
봉규는 다음부턴 늦게 오는 손님들에게 마감세일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팔라쉬가 싹쓸이 아닌 싹쓸이를 한 덕분에, 봉규는 오늘은 조금 일찍 가게를 닫았다. 진열대에 홀로 빵은 역시나 이곳 사람들에게 생소한 소보로빵이었다. '이렇게 맛난 빵이 남다니' 외롭게 남은 그 빵은 봉규의 저녁이 될 터였다.
그래도 오늘 퇴근길 그의 발걸음은 약간 가벼웠다. 웬지 마감세일이라면 매일 빵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빵집을 키우고, 직원을 뽑는 상상까지 닿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또 집을 지나쳐 버렸다. 발길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지난번의 공원이었다.
평일 오후의 공원은 주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공기는 더 차분하고 고요했다. 하늘에는 노을이 뉘엿 지기 시작했고, 주황빛과 분홍빛이 섞인 아름다운 색깔이 공원을 물들였다. 봉규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지난번 소년을 만났던 바로 그 자리, 그 벤치에 또다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여전히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봉규는 놀란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여기에 또 와 있다니.'
그는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년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학교는 안 가나? 학원도 안 다니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호주는 한국처럼 사교육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 봉규는 오늘도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소년은 집중하여 또 공원을 그리고 있었다.
“안녕. 꼬마야. 오늘도 그림 그리니?”
봉규는 웃으며 물었다. 메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메튜예요. 지금 공원은 빨개서 이뻐요. 그래서 그려야 해요”
아이는 그에게 그 귀여운 말을 건성으로 한 후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봉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도 여기 그려줄까요?”
봉규는 살짝 놀랐지만 요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고맙다. 그려줘.”
봉규는 소년이 고마웠다. 봉규도 소년에게는 작은 풍경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얼른 가방에서 소보로빵을 하나 꺼내 메튜에게 건넸다.
“이거, 너 줄게.”
그림에 열중하던 소년은 금세 색연필을 놓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빵을 받았다. 소년은 바로 비닐을 뜯지 않고 겉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냄새도 킁킁 맡았다.
“이거 먹어봤어요!”.
봉규는 그 모습을 보며 그럴 리 없다 생각했다. 우리 가게에서 소보로빵은,아시안들만 간간히 사가는 빵이었던 데다 늘 한두 개 남을 정을 정도의 인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닐걸, 이건 소보로빵이야. 아마 본 적도 처음일걸.”
소년은 조심스럽게 작은 한입을 떼어먹고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좋아하는 빵이에요”
웃으며 말했다.
‘어린애라 거짓말을 하는구나. 저번에도…’
그런 거짓말쟁이일지라도 아이가 기뻐하며 빵을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차, 우유라도 줄 걸.' 그는 소년에게 잠시 있으라고 말한 뒤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시원한 우유와 젤리 한 봉지를 급하게 사서 다시 공원으로 돌아오자, 아쉽게도 메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당황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년이 앉아 있던 벤치 위에는 그림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그림이 날아가지 않게 꼼꼼히 소년 주먹만 한 돌멩이도 올려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 그림에는 방금 전까지 그가 보았던 공원과 노을과 본인이 그려져 있었다. 선물이었다. 그가 호주에 와서 처음 받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