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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자 못된 아들

by 캉생각

엄마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게 언제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스물다섯쯤? 아니면 스물여섯?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 정도로 들었다.

"너도 슬슬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해."

그 정도였다. 가벼웠고, 나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슬슬"이 "이제는"으로 바뀌고, "좋은 사람"이 "적당한 사람"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엄마는 공식적인 제안을 했다. 선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상대는 무려 이모의 친구의 귀한 따님이었고, (알고 보니 그녀의 아빠가 (내) 아빠의 지인이었다는 것까지를 포함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겠다.


지금 중요한 건, 그때부터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명절 때마다, 가족 모임 때마다, 심지어 전화 통화 중에도. 결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어 있었다.


그전에 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서른 중반의 남자다.

제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부럽다는 직장을 다니고, 세금도 내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 누워 숏폼이나 넷플릭스를 본다.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거나 책을 보러 카페에 간다. 특별히 이상한 구석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내 인생에 덜 일반적인 것을 말하자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 는 점?

정확히 말하면,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


명절 때마다 친척들은 물어본다. "혼자 뭐 하니?" "언제 장가갈 거니?" "좋은 소식 없니?" 아무리 돌려 말해도 그 말은 그 말이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심지어 여행 가서 만난 오지랖 넓은 가이드도 묻는다.

"왜 아직 결혼 안 해요?"

그 '아직'이라는 말에는 묘한 안타까움과 의심이 섞여 있다. 마치 내가 어떤 중요한 시험에 계속 낙방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엔 나도 변명을 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좋은 사람 만나면요."

"일이 바빠서요."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서른다섯을 넘기면서 깨달았다. 나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언젠가 할 것 같은 거짓말, 속으로는 전혀 하지 않을 생각이면서 말이다.


물론 결혼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는 그 로맨틱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결혼식에서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쁘다. 다만,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 그게 내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글은 변명이 아니다. 설득도 아니다. 그저, 서른여섯 살 미혼 남성의 솔직한 고백이고 대자보다. 왜 나는 결혼하지 않기로 했는지, 삶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삶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 결정은 매우 독단적이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미안하다. 내 생의 몇 할을 만든 엄마는 내가 결혼해야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 믿음이 오히려 내 삶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한 구조라니.. 하지만 내 결정은 철석 같다.


그럼에도 엄마께 반성하는 의미로 이 글의 제목은 이렇게 지었다.

"비혼주의자 못된 아들."


자, 이제 내 삶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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