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가 비혼이고 연애를 과거형처럼 써놓았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연애 중이다. 심지어 2년 이상의 나름 장기 연애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예민하고,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이다.(혼자를 선호한다는 다른 식의 표현이 많아 다행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2년 넘게 한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 나 스스로 고민해본 적이 있다. 답은 '적당한 거리'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나고, 연락도 자주 한다.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염려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서로 캐묻지 않는다. 서로 더 자주, 오래 만나자고 요청하지도 않는다. 아주 먼 미래를 말하지도 않는다. 지금이 딱 좋다고 말한다. 이 거리가 우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관계가 희미해진다. 지금 우리의 거리는 완벽하다. 연애에 최적인 관계이다.
어떤 글에서 읽은 그리스 신전의 두 기둥을 상상해본다. 두 기둥은 각자 독립적으로 서 있지만, 함께 무언가를 떠받치고 있다. 기둥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풍경이 오간다. 햇빛도 그림자도 자유롭게 지나간다.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 각자의 공간이 있고, 각자의 시간이 있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함께 있고, 서로를 지탱해준다. 완벽한 균형이다.
그런데 결혼은 이 그리스 신전을 더 강하게 하자며 벽을 짓고 울타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어? 울타리가 생기는 것도 좋아 보인다. 남이 못 들어오게 하는 목적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얼마나 숨막히는가? 그리스의 상징적인 명소가, 성수동 칵테일바 담벼락과 뭐가 달라지겠는가?
남쪽 바람이 부는 곳에는 가족의 의무가, 서쪽에는 개인간의 통합이, 동쪽에는 2세의 고민이, 북쪽에는...(내가 유부남이 되고서야 알게 될)문제가 자리 잡을것이다. 신전은 요새가 되고, 두 기둥은 하나의 벽이 된다.
그냥 그대로면 안 될까?
이 세상 남들이 다 겪는 대로 따라가도 좋지만, 아빠나 남편이 아닌 '나', 나 스스로 온전히 늙어가고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누군가의 남편으로 정의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지 않다. 그저 나로 살고 싶다. 내 이름으로, 나 개인으로.
나는 지금 연애를 한다. 사랑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본능만큼만 두고싶다. 옛시절 누가 만든 제도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 자유로운 바람이 드나드는 관계,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비혼주의자는 연애도 하지 않거나, 진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비혼은 사랑의 거부가 아니다. 제도의 거부일 뿐이다.
지금의 이 관계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1년 후에는 끝날 수도 있고, 10년을 더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독하게 행복하다는 것이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나는 비혼주의자다. 그리고 연애 중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