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희 여기 있어요!"

가장 우주적인 오해, 마지막 이야기.

by 캉생각

“산이 떨어졌다!” 궁궐 밖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빛을 앗아간 뒤 그대로 있었다. 구조요청을 보내는 붉은 불빛과 아우성이 온 시내를 가득 메웠다.

"우리 창조자인가!?"

"우리와 소통한 그것들인가?"

"다 무슨 상관인가? 다 무너졌는데!"


그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 산 같은 것이 우웅댔다. 소리보다 진동인 것 같았다.

곧 그것은 쪼개지며, 무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다리의 그들이었다. 그것들의 발 높이는 에크샤의 궁보다 높았고, 머리는 하늘에 닿는 듯했다.


그 시각, 에크샤는 홀로 펜트하우스 결심실에 있었다.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방. 모두가 우러르던 웅장한 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천장이 낮아 보였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바깥은 조용했고, 방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는 버튼을 눌러 회선을 열었다.


“지란…”

"네 폐ㅎ-지직-" 짧은 응답음이 들렸다.

그 시각 지란은 연구실에서 무너진 천장 아래, 전선을 붙들고 있었다. 온통 부서진 사무실 틈에서 통신회선만 겨우 살아 있었다.

“저게 무엇인지 알겠느냐능…”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지란이 답했다. “죄송합니다. 그것들인 듯합니다.”

에크샤는 머리에 손을 얹고, 책상을 고개로 덮었다.

“저것들은... 우리는 너무 작다능…”

지란은 숨을 고르듯 말없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것들은... 예상보다 큽니다”

에크샤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에크샤가 즉위 후 처음으로 “능”이라는 말을 빼고 말한 순간이었다. 지란은 그것을 인지했을까?


아니다.

지금 그는 듣지 못한 것보다, 저들이 들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한 듯했다.

지란은 다급하게 송신기의 주파수와 출력을 조정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

우주선의 문이 열리기 직전, 또람스와 아담은 미지의 착륙을 차분히 준비 중이었다. 또람스가 우주복을 껴입으며 아담에게 물었다.

“실행력과 아이디어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아담?”

아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실행력이 아닐까요?”

또람스는 이어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다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이디어는 수백만이 꿔도, 결국 이루는 건 실행하는 자의 몫이니까요.”

“아주 맞네. 그럼 자네 생각에, 우릴 여기에 오게 만든 사람은 누군가?”

“우리 모두죠.”

“틀렸네. 나야.”

“자네는 우리의 브레인이지.” 아담은 순간 으쓱하려다 멈칫했다.

“나는 손발이고, 머리도 일부 포함했지.” 도람스가 우주선 헬멧을 마저 썼다.

“아… 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가 지란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외계행성 첫발의 주인공은 또람스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역사적인 한 발만 앞두고 있었다.


“잠깐만!”

우주선에 대기 중이던 제이슨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는 지금 새로운 신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여기에서 왔다고?”
그들은 애써 입은 우주복도 벗지 않은 채, 다시 선체로 들어가 신호를 듣기 시작했다.

“오…오… 그지직 찌지직—”

“잡음 아닌가요?” 지란이 말했다.

“아니, 이건 진짜 신호예요”
제이슨이 신호를 반복 재생하며 말했다.

“그들이 진짜 여기에 있다는 소리예요!”

그들은 우주선 밖으로 당장 뛰쳐나갔다.


그 과정에 우연히 아담이 첫발을 내디딘 인류가 되었지만,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아니, 사실 아담은 알았다. '얼떨결에 먼저 나온 걸 어떡할까?')
튀어나온 인간들은 지구보다 무거운 중력을 느끼며, 절박하게 황야를 누볐다. 시야가 닿는 곳에서 그림자 진 곳까지.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제이슨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드론을 전개했고, 아담은 쭈그리고 앉아 튜브를 열어 토양을 한 움큼 수집하고 있었다. 그때 또람스는 문득 생각했다.

‘아, 맞다! 첫 발자국!’

그는 이미 그가 만든 수많은 크레이터들은 잊은 채, 조금이나마 볼록한 흙더미를 발로 꾹 짓이겼다.


–--

지란은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이제껏 고민한 117개의 인사말 중 하나를 겨우 골랐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신호를 보내는 찰나, 국경 끝 높은 곳 외찾티 본부 또한 결국 거대한 어둠에 눌려졌다.
그의 다급한 마지막 비명은 지구인들의 선체에 닿아, 수신기를 두드렸다.


“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그는 송신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티소론 수만 년간 일궈온 문명의 마지막 공식적 발신이었다.




-


에필로그

티소론 문명 사전. ( ~18,017(에크샤 정권))

티소론 생명체들은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고 단단한 몸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티소론인의 크기는 약 0.1mm, 세균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생리 구조와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다. 그들의 체내 시스템은 최소한의 에너지로도 고효율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곳에도 한때 수만 종의 생명이 번성했으나, 현재는 17종류의 생명체만이 살아가고 있었다. 단연코 그 행성의 지배자는 뇌가 몸 전체 30% 부피를 차지하는 지성체 티소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동 범위는 전체 지역의 0.00001%도 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이동해야 할 필요성도, 이동할 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티소론 행성과 생명

크기: 지구보다 2배 큰 티소론의 성은 초기에는 거대한 습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위성의 궤도 이탈로 인한) 수백만 년의 기후 변화 끝에 오늘날 대부분의 지역이 건조한 사막으로 변했다.

중력: 강한 중력은 생명체가 크기를 키우는 데 제약을 가했고, 작고 밀도 높은 생명체들이 진화하게 만들었다.

기후 변화: 과거의 습윤한 환경에서 현재의 건조한 기후로 변화하며 생존 조건이 혹독해졌지만, 티소론인들은 이를 극복하고 문명을 유지했다.


티소론 문명의 발전

티소론 생명체가 행성 표면에 처음 출현한 것은 약 5천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광범위한 습지와 다양한 생태계 속에서 생명체들이 번성했다. 그러나 약 7천 년 전, 그들 문명이 처음으로 조직화되며 철학과 예술, 과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래로 만든 요리를 먹었으며, 지구말로 사막에 사는 그들에게 식량은 지천이었다.


문명의 발전

지적 수준: 티소론인들은 초기부터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많은 변화와 멸종을 바라보며 그들은 생존에 대한 열망보다, 삶의 이유와 무상함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사회의 중심은 철학과 논쟁 같은 비물질적인 가치에 있었다.

도시와 건축물: 티소론의 도시는 초미세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지구인의 관점에서는 모래 알갱이처럼 보일 뿐이다. 티소론의 국경은 인간기준으로 200cm에 불과하며, 건축물의 높이는 최대 1cm를 넘지 못했다. 인간의 눈으로 볼순 없지만, 거미줄 같은 터널이 국가가 전체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티소론 문명은 과거 습윤했던 시기의 자원을 기반으로 에너지를 생성했지만, 사막화된 현재는 강력한 태양 에너지를 활용해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강한 중력은 그들의 신체적 발달에 제약을 주어, 삼족보행의 기어 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말랑한 그들의 다리는 약해 보이나 골격은 튼튼하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지만, 놀라운 정밀도로 구조물을 건설하고 사회를 조직화한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아니, 이 곳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