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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30. 2024

초록의 시간 792 양다리참견시점

예쁜 가족

나들이 나온 꼬맹이 남매와

젊은 엄마아빠의 뒷모습이

파릇파릇 정겹고 사랑스러워서

흐뭇 눈길로 바라봅니다


엄마는 아들내미 손을 잡고

개구쟁이 씩씩 걸음으로 앞서 걷는데

아빠는 아장아장 아린 딸내미 속도에 맞춰

꼬물 걸음으로 느릿느릿 뒤따라 갑니다

속도를 함께 한다는 건 찐사랑이죠


꼬맹이 딸 손을 잡고 느리게 걷느라

뒤처진 딸바보 아빠는 딸내미랑

꽃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꽃 중의 예쁜 꽃 찾기 놀이 같은데

쪼꼬미의 꼬물대는 목소리가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아요

아빠 눈에는 그저 딸내미가

세상 제일 예쁜 꽃일 텐데요


어쩌다 보니 두 팀 사이에 끼어

양쪽참견시점이 되고 말았어요

아빠와 딸은 뒤에서 꽃이야기 도란도란

내 앞에서는 엄마와 아들이 큰 소리로

나무 이야기가 한창인데

일부러 귀 기울이지 않아도

똘망똘망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아파트 화단에 빙 둘러 서 있는

나무 이름을 꼬맹이 아들이 묻자

엄마의 대답이 시원 명쾌합니다

 글쎄~

이름은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나무는 나무야~


나무 이름을 모른다는 엄마가

신기한지 꼬맹이 아들이 웃어요

에이 엄마도 모르는 게 있다~

그러자 엄마도 따라 웃으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있잖니 이 나무 이름은 모르지만

나무를 가지고 종이를 만든다는 건 알지

나무로 종이를 만든다는 말에

꼬맹이 아들이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나무를 바라봅니다


공책도 만들고 휴지도 만들고

그래서 고마운 나무라고

똑순이 엄마가 아들을 향해

기특한 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종이를 아껴야 해

두루마리 휴지를  막 풀어헤치거나

책이나 공책을 함부로 찢거나 하면

나무가 아프거든


고마워 나무야~

엄마와 아들이 함께 나무에게

고맙다고 소리 맞춰 인사 건네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유쾌합니다


참 멋진 마무리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 합니다

사랑스러운 가족들 사이를

더 이상 방해하면 곤란하니까요


어린 딸내미와 느리게 걸으며

예쁜 꽃 이야기를 소곤대는 아빠

개구쟁이 아들내미와 즐겁게

고마운 나무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


 같고 나무 같은 가족이 

도란도란 주고받는

향기로운 이야기 곁에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어서

고맙고 사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마워 나무야

사랑해 꽃

그리고

예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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