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04 봄비 마중
대추차와 군고구마
창밖 하늘이 온통 잿빛입니다
봄비가 내려오시려고 비구름 가득합니다
이제 막 수줍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순하고 곱고 사랑스러운
매화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하양 노랑 연분홍 봄꽃들이
우산도 없이 봄비에 젖다가
꽃비 되어 뚝뚝 흩어져 날리겠네요
산 아래 사는 친구가 어제 뒷산에 갔더니
날 따뜻해 진달래 활짝 다 피었다고
한 무더기 보내준 진달래 꽃소식도
오늘 비에 촉촉이 젖어들겠죠
비가 그친 후에는 쌀쌀해진다니
봄꽃들은 꽃 감기 조심하고
우리도 봄감기 조심해야겠어요
겨우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냉동실에 묵혀 둔 대추 봉지를 꺼냅니다
봄비 마중에는 따뜻한 대추차에
군고구마도 괜찮거든요
마침 다용도실에
저 혼자 심심해 나뒹굴고 있는
고구마도 한 봉지 있으니
봄비 오신다는 소식에
모처럼 부지런을 떨어봅니다
고구마는 에어프라이어에 맡겨두고
대추차는 내 손 꽝손에 맡겨봅니다
불면과 호흡기 질환을 예방한다는
대추를 깨끗이 씻어 찜통에 쪄요
과육과 씨를 살살 발라내고
발라낸 대추씨를 동동 물에 띄워
대추와 함께 보글보글 끓여서 달여지는 동안
씨 발라낸 대추를 돌돌 말아 얇게 썰면
예쁜 대추꽃들이 동글동글 피어납니다
대추꽃은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야무진 꽃이 되죠
잘 달여져 빛깔과 향이 은은히 고운
대추차를 오목한 찻잔에 따르고
야무진 대추꽃과 똘망한 잣을 동동 띄우면
따뜻한 대추차 한 잔이 군고구마 곁에서
봄비 마중을 함께 합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사람이든 물건이든 음식이든
그 무엇이든 내가 쏟은 시간과 마음만큼
알뜰살뜰 귀한 거니까요
창문을 스치는 빗소리 들으며
따뜻한 대추차 한 잔
함께 하실래요?
창밖은 초록 봄날의 시간
그리고 우리는 대추차와 함께
달달한 평온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