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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Dec 15. 2024

맥도날드 빅맥은 아이 키 성장 촉진제 1

ADHD(ADD),자폐스펙트럼, OCD,발달장애,인지장애,학습장애,영재

많은 분들이 아이 교육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다고 하시지만, 사실 육아의 원리가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다를까? 

나를 긍정하려 나와 가장 먼 쪽을 부정하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학교 선생님의 특별 호출을 받고 학교에 갔다.(나에게는  명 이상의 아이가 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둘 중 누구인지 밝히지 않을 예정이다. 둘 중 하나일거라 대충 짐작하며 따라오시면 된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한다고 하신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이들의 생일파티 초대도 일 년에 열 댓번씩 받아 '인기'까지는 아니어도 무난한 또래관계 능력을 입증했고,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학업수행능력을 지적받을 리 없으며, 다른 사람을 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에게 내 것을 양보하는 마음 따뜻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들었는데,
어떤 면에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다른 보통의 아이들과 다름을 느끼셨길래 특별한 이슈도 없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을까?


영어도 한다고는 하지만, 내 나라말이 아니어서 상대방의 배려없이는 다대일 미팅이 내심 '심장 쿵쾅 손이 덜덜'는게 사실이던 시절이다. 한편, 한국말이었어도, 교장선생님, 상담실샘, 리소스샘, 학과목샘 그리고 담임샘 앞에서 내 아이를 혼자서 대변한다고 상상해보니, 그것 또한 동일하게 마음이 쫄아들것 같다. 언어 문제만이 아닌 듯하다.



캐나다 학교 안의 학급은 (약 7-5년전) 한 학급의 아이들이 20명 전후되어, 선생님 눈에 아이 한 명 한 명의 특성이 모두 잡혔다. 국공립학교 및 사립, 카톨릭학교 등 여러 학교의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담임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아이가 지금까지 만나는 선생님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특성과 문제점에 상당히 민첩하게 반응하는 선생님들이셨다. 선생님의 호출들을 받을 때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탓에 다소 당혹스럽지만, 지나고보니 선생님들이 모두 성실히 자신의 역할을 해주셨던 것 그 뿐이었다.


그토록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선생님께 행동관찰 레포트를 부탁드려, 선생님의 주관적 생각이 아닌 객관적으로 제 3자에 의해 관찰된 행동관찰 레포트와 성적표를 갖고, 아이를 데리고 가정의의 레퍼럴을 받아 소아과의사.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캐나다에 살면서 우리가족의 건강 상태를 트랙킹해주는 가정의를 갖고 있는 것은 캐나다 헬쓰케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워크인 클리닉이 있어서 누구나 자신의 건강상태를 급한대로 챙길 수는 있다. 하지만, 가정의를 갖고 정기적으로 검진받아야한다며 알람을 받고,우리 가족을 들여다 보며 안부 인사를 받고, 각 분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은, 사실 캐나다안의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할 권리이다.


황당한 사실은 예전에는 누구나 갖고 있던 가정의가 대부분의 주에서는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 특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달리 의대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캐나다의 헬쓰케어 시스템은 모두 국가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정책적으로 국가의 스템 안에서 연봉을 주며 관리하는 의사 수를 조절한다. 이민자가 지난 20여년간 급격하게 많아져서 시스템이 늘어나는 국민 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변수이고 (공공범주안에 들어가는 헬쓰케어시스템에 막대한 돈이 드니까...),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의해서 의사가 되면 돈 걱정 안하고 여유있게 살겠다 예상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정작 상당한 세금을 내고 난 후에는 필수품만 구입하면, 한 푼 저금할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한 캐나다 안, 특히 대도시들의 경제사정이 또 하나의 문제이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주는 의사의 연봉이 타주에 비해 30% 높고, 생활물가가 낮은 편이라, 가정의와 전문의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다른 주에서 의사따도 내가 사는 이 주로 오셔서 의료행위를 하시는 정도이다.), BC, ON, AB 의 캘거리 타주의 경우에는 살인물가대비 의사월급이 낮아 타주 또는 미국으로의 의사의 전출이 심해, 의료서비스의 제공속도 등 질이 떨어질 수 있음을 염두해야한다. 코비드, 급격한 국민 수 증가 등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려 작년 캐나다 각 주에서 의대 좌석을 두배 이상 확대했지만, 그 많은 의사들이 세금 비싸고 (연봉의 50%이상), 생활물가는 턱없이 높은 그 주 들에서 졸업 후에 의료행위를 지속할지는 앞으로 5-10년이상 지나봐야 알 수 있다.


한국 의사들의 의료파업이 지탄 받는 면이 있지만,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 정당히 노력하는 건 직업, 나라를 떠나 모두 같다.


담임 선생님, 그리고 제 3의 선생님이 써 주신 보고서들을 챙겨서, 우리 아이들의 소아과 주치의, 3대가 의사 집안 딸인(노하우가 축적되었다는 뜻이다.) Dr. Rachael 의사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각종 병명을 모두 대고, 검사해달라고 했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가 학교에서 잘 못지낸다고 했다고. 그게 일 이년이 아니라, 장장 6년간 이어지고 있다고. 아이의 첫번째 언어는 영어이며, 나의 첫 언어는 한국어라고....


장장 1년여에 거쳐 모든 검사들을 완료했고,  ADHD, ADD, Autism Spectrum, OCD, Development Disorder, IQ.... 모두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모두 정상이라는 황망한 상황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증거가 뚜렷한 상황 아니야?


내 아이는 좋아하는 부분에 푹 빠져 남 인식 안하고, 몇시간이 지나도, 몇일이 지나도 재미 느끼며 잘하며, 어릴때부터 자동차를 일렬로 배열하기 좋아하며, 좋아하는 캐릭터는 수천 수만개 이름을 다 외워 버리고, 사실 어릴때 자신의 배변행위를 불안하게 인식해 커튼 뒤에 숨어서 또는 자면서 응가를 쌌었다. 꽤 오랫동안... 초등 1학년까지, 심지어는 잘 때 기저귀를 채워달라며, 초등 2학년 까지는 자는 동안 똥을 쌌다, 실수 아니고 매번. 물을 좋아하고, 특정 촉감과 식감에 유난히 민감하며, 유난히 수줍음을 탔다. 늘 집안을 빙글빙글 돌며, 특정 놀잇감에 3살부터 10살이 넘도록 집착한다. (아이를 자폐 또는 자폐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고 오인했던 부분).


타인을 괴롭히거나 과잉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부분 외에 다른부분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평가자 등 다른 사람 의식할 필요를 못느끼며, 실제로 과제 제출 기한을 매번 놓친다. 지각을 밥먹듯이 하며, 몹시 각성한 상태에서는 틱 증세를 보여 눈을 깜박인다. 매우 활동적이어서 산만한것이 아니라 조용한 산만함이 있어, 학교 교재나 보충교재 귓퉁이에는 빠짐없이 도그맨이나 캡틴 언더팬츠,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 그림이 빼곡히 그려져있다. (ADHD/ ADD라 오인했던 부분)


고로 교과공부가 참여도가 낮아서 선생님은 최저점을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영어를 기본언어로 한 프렌치 이머전 교육 안에서 흥미를 못느끼고 지루한 나머지, 참여도가 저조하다.( Learning Disorder 등 인지장애라 오인했던 부분, 물론 이것은 고학년이 되어 사회생활안에서의 규범을 배우며 해소된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장난치고 우스꽝스럽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덕분에 또래 아이들의 인기는 있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뭉개버림으로서, 친구가 되는 법을 획득한, 잘난체하는 것보다는 바보 흉내내는 것이 훨씬더 유리함을 생활속에서 깨달은것 뿐) 주변 어른들의 황당한 반응을 받았던 사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남을 웃겨주면 유머러스하다지만, 선생님 기준에 못 맞추는 아이가 남을 웃기는 행동을 하면 그냥 덜떨어진 아이라는 눈빛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열살 전후라는 아이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20살 넘은 성인이 할 법한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이야기를 한다라...(유일하게 나와 선생님이 인정하는 부분)


의사는 오히려 나의 아이에게,


선생님께 더 어려운 문제를 달라고 말해보는게 어떨까?


라고 말했다.


내가 위에 쓴 증거를 관찰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을 조리고, 아파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것도 몇 년간이었는데, 아이의 문제에 집중해 주시하는 과정동안 내가 얼마나 애가 탔는데...

의사맞아? 내 아이가 그저 정상이라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스크리닝 이외에 약물, 행동치료, 사회성 발달 프로그램 개입 등 의사와 관련분야 스페셜리스트들의 특별한 전문적 개입없이 없었다.


신체 뼈와 심장의 구조, 피의 흐름을 그리는 시험에서 이 아이는 딱 2번보고 8학년 과학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세포의 구성요소를 형태가 아닌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해 세포제작에 26점 만점에 27점을 받았다. 7-8학년이 되면서, 학과목의 난이도, 공부할거리가 생기니 역설적으로 참여도가 높아졌다는 연락을 받고, 각 학과목 성적 우수자로서, 학기말에 우등생만 초청되어 상장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되었다? 사실 원래 그런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들의 아이를 향한 평가 기준에 아이 스스로가 맞출 수 있게 고학년이 된 아이가 사회생활에 맞춰 성숙되어 성적을 잘 받아와 안심하는 나는, 만일 아이가 아직까지도 성적을 잘 받아오지 않았어도, 아직도 학교 공부가 너무 쉬워 컨텐츠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아 선생님의 오해를 사 최하점을 받아왔다면, 과연 나는 아이 자체로서 아이의 잠재능력과 독특성을 인정해 줄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다.


늘 학교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 책만 줄창보고,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만 수정하며 하루를 보내던 내 아이. 책을 끼고 살아서 러블리 하다고는 하지만, 무난치 않아 부모에게는 걱정거리였던 아들. 적절하게 무난하게 살면 좀 좋나. 남들과 비슷하면 좀 안되나.


집단안에서 '무난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이 아이의 개별성과 독특성을 무시하는 아동 학대적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인식하지 못했었을까...캐나다는 왜 한국과 달리 아이의 개별성을 존중해준다는 근거없는 편견을 갖고, 의심없이 이 곳 교육 시스템을 믿은 채로 막연히 내 스스로 눈을 감았을까? 학교는 인간이 참여하는 첫 사회생활의 장이며, 교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모여있는, 각종 노하우와 지식, 지혜가 축적된 집단지성의 장이라 뛰어난 개인보다 나을 것이며, 각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정답지일까? 학년이란 무엇이며, 각 학년에서 배우고자 설계되는 모든것들이 과연 모든 아이들의 학습 목표 및 수준과 부합할까? 왜 교과서가 없는 교실과 교사는 교과서가 있는 교실과 교사에 비해 유연하고 유능할 거라 믿었을까?교사를 신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각 교사의 사고방식은 아이의 전인적 인격수준을 평가하기에 충분할까?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세상 앞에 충분히 변론할 수 있는가?


위에 쓴 타당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내가 냈던 조바심, 그 산더미만한 걱정 근심결국 내 안에서 만들어낸 픽션이었다.


내 아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적은 단서를 발견만 해도, 초등학교 교사나 엄마, 어린이집 교사, 담임선생님, 학원선생님 누구든 자신의 머릿속에서 빙빙도는 친숙한 병명을 해당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대입하며, 지금 이순간에도 자신도 모르게 붙였다 떼어내었다를 반복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정신과전문의로 대표되는 누군가가 한국 어린이들의 발달 장애와 관련한 모든 질병에 대해 공중 매스컴을 타고 일반화 하는데 지대한 노력을 한 결과, 한국에 사는 거의 모든 아이들 그리고 나와 같이 외국에 살면서도 한국 프로그램을 보는 모든 엄마들의 머릿속에서 한 두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명과 내 아이의 모습은 끊임없이 붙였다 떨어졌다 붙였다 떨어졌다 하며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표준화 되어가고 있다.


걱정의 핵심에는 그저 불안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했던, 성인이 볼 때  이상하고 기이한 거의 모든 행동들은 크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어린아이이기때문에 하는 행동들이지, 유아발달표준에 맞지 않기에 한국사회에서 흔히 유행하는 소아정신과 질병기준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볼 수 없었다. 교육으로 치료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정말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크면서 없어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 경우가 많다.


어른과 다르기에 아이 한 둘에만 집중하고 있는 엄마 아빠 눈에 그들의 행위가 이상해보이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걱정과 근심이 샘솟지만, 단순 집착이 근심을 낳고, 이 근심을 바탕으로 아동 비즈니스가 교육과 치료 분야에서 성행인 것을 본다.


학교든 병원이든 표준이라는 거, 정말 생각보다 허술하다. 때로는 의미가 없다.



지금이야 그 터널을 지나와서 '아이가 크는 과정이에요' 하며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한 창 그 터널안에 있을 때에는 나는 우리 티비에 나와서 한국말로 엄마들을 상담하는 우리나라 소아정신과 선생님을 내 맘대로 맹신하고 지극히 정상인 내 아이를 부정했었다. 여자아이들은 이런 경우가 드물다고 하는데, 왜 y염색체는 불안정해서 걱정을 만들어내냐며 성별까지 비난했었다.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을 부정했다. '이 곳은 자폐면 자폐이지, 자폐스펙트럼'까지는 진단하지 못하는 허술하고 어리석인 의사들만 가득한 곳이라며, 앞으로 1-2년안에 한국에 들어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를 철저하게 검사해서 반드시 무엇이 문제인지 잡아내고야 말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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