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나 미국 등 영미권 어디든 갈 때 유용한 학적부, 졸업장, 성적기록 뿐만 아니라, 캐나다 대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태도, 현지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배웠으며, 모범생이면서도 당차게 자기주장하는 대학 내 남자아이들을 보며 내 아들들을 남자어른으로 키울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시켜 세상에 내 보낼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여중, 여고, 여대 졸업생 캔디가 난생처음으로 만 12세 이후에 남학생들과 한 첫 학교 생활이었다.여자직장에 근무하면서 평등한 관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사이의 다이내믹을 별로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첫 남자와 결혼한 남자물정모르는, 만화에만 존재하는 진짜 성당 수녀님 같은 캔디에게 꼭 필요한 스텝이었다.
남녀공학에서는 기회만 생기면, 쳐다보고, 이성 친구가 되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이들이 많아 놀랐다. 남학생들 특유에 더러운 땀냄새가 나고, 비가 온 날 다음날이면 운동화에서 걸레썩은 냄새나는 아이들이 수 명되어 대규모 강의실 냄새에 어지러워 토할 뻔했던 불쾌한 경험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캐나다 아이들과 최종 학력을 맞추며, 나름대로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정식으로 끝마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자신있다면 꼭 남들과 최종학력을 현지의 것으로 맞춰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는 이민자로서 새 나라에 대한 사회화 과정이 필요했던 내가, 일상생활 불안을 줄이기위해 꼭 필요한 캐나다 적응 과정이었다.
영주권을 딴 후에, 대학에 들어가니 학비와 생활비도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고, 게다가 성적이 매 학기 좋았던 나는 학생 장학금 명목으로 스컬라 십으로 돈을 기부한 어떤 귀족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캐나다를 비롯한 영국 및 유럽국가에는 아직도 어렴풋이 귀족이 존재한다.). Dean's Honour List에 매 년 등록되어, 2학년 끝부터는 나의 캐나다 첫 목표였던 간호대에 전액 장학금 가까운 가격을 받고 입학 할 자격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여러차례 고민끝에 입학 승인을 고사하고사이언스 학부 학생으로 남았다. (간호대 정원이 증가된 2023년 이후와 달리 예전에는 대학 1학년 이상 성적으로 3.85이상이 되어야 간호대를 꼴찌로 합격할 수 있었다.)
사이언스 학부에서 1학년동안의 프리리퀴짓을 끝낸 후, 직업 확실하고, 누구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연봉 보장되는 간호대학 입학을 내려놓고, 4-5년 높은 성적을 유지하며 죽도록 공부하고 졸업해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라이프 사이언스에 남아있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습관적으로 굳어진 나의 생존전략, 즉 People Pleaser Position을 내려놓기 위한 나만의 용기있는 발악이었다. 입학 자격이 몇차례 주어졌음은 내가 몇차례 이상 간호대학에 지원했었음을 뜻한다. 안간다고 거절은 했지만, '이민자로서 간호사이외에 직업 선택의 기회가 많은 직종이 있나?' 하는 현실적인 이유와 내 마음에서 외치는 '제발 나로서 살자' 하는 내면의 소리 간의 질긴 싸움이었다.
불확실함은 바꿔서 생각해 볼때, 내가 원하는 뭐든 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이 마인드 셋이 나의 결정을 도왔다.
캐나다 대학을 다니면, 블루크로스라는 민영 의료 보험에 단체가입되는데, 이를 이용하여 치과, 안과, 카운셀링 등, 일반 병원의 가정의와 전문의가 주는 공공의료혜택 외의 추가적 의료복지혜택을 이로 누릴 수가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캐나다 공공의료에 포함되는, 의사 간호사를 만나는 일반의료진료나 스페셜 의료진료가 아닌, 거의 모든 의료 인접 분야의 서비스권을 500불 전후로 구입해서 1년간 정해진 한도, 규정내에서 사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2년에 한번씩 안경을 새로 맞추고, 치아를 스케일링 하고, 썩은부분은 레진으로 씌우니 시릿시릿하는 느낌이 있어, 금으로 떼우던 한국생활이 그리웠다. 캐나다는 수요와 공급법칙에 의해 금으로 충치를 떼우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내 왼쪽 윗니 소구치에 금으로 떼운 자국을 보던 치과의사는 생전 처음접하는 재료라며 놀라 자빠졌다. OMG,CANDY WHAT A BEAUTY!
내 소구치는 그 날, 캐내디안 치과의사 그녀에게 수퍼리치 그 자체 였나보다. :B
아큐펑쳐 하시는 분에게 가서 허리가 쑤시니 침도 좀 맞고, 한약도 지어올까 방문했는데, 한의사 선생님을 보조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쌀쌀맞게 대응하셨다. 아주머니는 한의사 선생님의 부인 되시는 분으로서, 남편분이신 아저씨 지시를 받으며 함께 일하는 것이나, 손님과 자신의 포지션이 상당히 불편하신 모양이신듯 했다. 손님도 손님나름이라고, 환자라고는 와서 아저씨만 선생님으로 대하고 사모님은 아줌마로 대하니, 기혼자로서 그 마음이 십 분 이해가긴 했다.
가장 좋았던 건, 의료서비스 트레벨을 하며, 민영 의료보험이 커버하는 각 헬쓰케어 직업의 장점과 단점을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영 의료보험이 제공하는 확장된 의료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서 호기심 반, 치료 반의 목적으로 학교에 다니는 동안 4년간 캐나다 의료관광을 했는데, 그곳에서 소*언니를 만났다. 소별언니는 캐나다 정식 마사지 치료사이다. 언니는 중국말과 한국말 그리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분이었다. 나와 같은 나이로 귀결되었지만, 배울점이 있는 진실하고 예쁜 사람은 난 무조건 '언니'라 모신다. 내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있다 말하니, 자신의 신상명세와 동시에 현재 자신의 직업의 장단점과 직업인으로서의 한계, 그리고 내가 희망하는 모든 직업에 대한 자신의 보고 느낀 생각을 말씀해주셨다. 그 언니의 뇌피셜만이라고 할 수가 없는것이, 언니의 손님들이 주시는 데이터이기 때문이다.살아 숨쉬는 정보를 나는 다음번에 내 아이를 데리고 놀러올 것을 담보로 참 오랫동안 자세히도 획득했다. ( 각 직업인과 직종의 존엄성을 보호하고자 소별언니 그리고 언니의 고객과 직업군에 대한 자세한 평론은 이 곳에 담지 않을 예정입니다.)
마사지를 하거나 받다보면 신체 깊은 곳을 터치하기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개인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힌트를 제공하면, 소별언니의 주 고객은 헬**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몸으로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람일수록 정작 업무상 재해로 뼈, 연골이 닳아버려 마사지사를 찾아온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셨고, 자신이 다시 캐나다에 와서 직업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리고 보험수가가 더 높고, 권한이 더 높은 직종으로 가겠다는 말도 하셨다. 공부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자금적 여유가 있어서 당장 직업선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는지 그 두가지 변수에 의해 헬쓰케어 안에서의 직업선택의 보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예시들을 보여주신 언니의 말은 현실성이 있었다.
무언가에 본격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몸 담기 전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팔고,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말을 철저히 귀담아 듣고, 그 안에서 나의 직업방향을 정하는 것의 의미를 삼십대 중반이 넘어서 진정 배우게 되었다.
직업선택이나 학과 선택은 절대로 깃발뽑기나 사주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또는 한국처럼 성적에 맞춰 배치표대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육감적으로 진행되어야하는 일이었다. 자기실현또한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처럼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딫혀보고, 경험해보고, 만들어가면서 'feel이 이끄는대로, 오로지 신념만으로 믿고 헤쳐나가는 것'이 아닌, 때로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며, 누가 뭐라해도 내 몸과 정신에 진짜 맞지 않는, 아닌 것을 빼 나가며 쉐이핑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여부를 막론하고 혹여나 사회에서 낙오될까 붙여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무조건 올라타는 것이 아닌, 주체성있는 선택이 되어야함을 몸소 체험했다.
상담 카운셀러와의 경험도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사실, 학기 중 시간을 내어, 나의 과거 이야기, 내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될 수 있다. 내면에 과거부터 쌓여온 불순물이 많을 수록, 내가 학업기간동안 흘려야할 눈물의 양도 많고, 상담날을 중심으로 이삼일간 감정으로 얼룩진 채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 나가야하기에, 보통 정신력 없이는 이 상담치료를 학기 중에 시작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의 불순물이 계속해서 내 삶의 연료를 빼앗아가고, 그로 인해 내가 진짜 에너지를 써야할 현재 삶에 방해가 되고, 일상적 감정이 자꾸만 불필요하게 오염된다면, 상담치료시작은 이르면 이를수록 내 삶에 필요한에너지 효율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평소에 이렇게 브런치나 내 일기장에 내 감정을 인지하고, 글을 쓰며 풀어내는 연습을 해 나간 덕에 8회기 끝에 아픔과 작별하고, 이제는 편안해진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카운셀링의 효과에 의문스러워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카운셀링에 필요한 시간과 돈 그리고 전문가를 준비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직면하는 연습부터 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충분히 시동을 걸고, 몸을 풀고, 열감을 장착한 후에 전문가를 만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웜업에만 시간과 돈을 다 날리고 정작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최대한 야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마주칠 용기를 장착하고, 상담사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의 내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내 스스로에 그 시간만은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어차피 이 세상은 당신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당신과 나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가 않은데,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내 이야기에 반박도 반론도 하지 않고, 그 감정과 생각 그대로를 고스란히 들어주는 '전문가' 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 전까지 한국말로 이야기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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