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김태리 주연의 영화 [문영]

#서울독립영화제,#독립영화,#김태리,#동화,#모성애

by 후루츠캔디 Jan 12. 2025
아래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김태리 주연의 독립영화 [문영]을 보았다. 우리 가족은 연기력이 돋보이는 배우들의 작품들을 추적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윤여정 등 클래식한 배우들부터 안재홍이나 김태리 같은 신세대 배우들까지 다양하다. 특히, 등장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작품은 가족 모두에게 큰 감동을 준다. 아마도, 나와 내 남편이 감정표현을 다소 억누르며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이런 연기를 통해 대리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일 것 같다.


[문영]의 주인공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고 다니는 것은 작은 캠코더는 영화감독의 꿈을 상징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한 도구이다. 문영은 캠코더를 통해 자신이 갈구하는 '모성애'를 수집한다. 이 창을 통해 그녀는 중년 여성들에게 '엄마'라는 감정을 이입하며, 잃어버린 모성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인 회복 욕구를 잘 드러낸다. 그러나 문영의 현실은 아빠의 술주정과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부성애의 결핍이나 손상에 대해서는 부정한 채, 늘 엄마만 쫒는다. 문영의 방은 자물쇠로 늘 잠겨져 있으며, 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으로 보여진다. 그런 그녀의 삶에 어느날 뜻밖의 인연이 찾아 온다. 열살 많은 여성을 통해 문영은 다시금 세상과 소통하려는 용기를 얻는다. 이는 모성을 뛰어넘은 인간간의 연대를 뜻한다.


상처 받은 적 있는가?철통방어하려 문에 건 자물쇠처럼,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입을 닫고 마음을 닫지만, 회복하려는 노력은 남모르는 방식으로,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계속된다.  모두는 어느 측면에서 결핍되어 있으며, 또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제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따뜻하게 대하다보면 누군가는 뜻하지도 않고, 위로받고, 감사하며, 혹 빗장 덮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있는 건 바로 진심 어린 사랑이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모성애란 무엇인가... 누가 이 개념을 만들었으며, 누가 이상화했는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혜택을 얻었고, 또 얼마나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이들이 상처를 받았나. 모성애에 대한 기대는 종종 여성들에게는 억압으로, 남성들과 아이들에게는 결핍으로 작용한다.


동화와 신화 속 여성들은 모성애, 희생, 혹은 무력함으로 그려진다. 신사임당의 신화, 평강 공주의 신화, 효녀 심청의 신화를 이룬자가 과연 존재하는가? 그 신화들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억압해 왔으며,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과 남성들에게 모성결핍을 선물해주었는가.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일곱 난장이들(Sleeping Beauty), 미녀와 야수는 서구 여성들의 무력함을 정당화 시키며, 잠만자도, 가난해도, 제대로 된 왕자만 발견하면 퐁퐁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어린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에 죄의식이 없는가.


남녀모두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은 현실적 책임감이지, 신화가 창조해 낸 환상이 아니다.


왕자를 만나지 않아도 인생 개쪽박찬것이 아니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내 부인이 평강공주가 아니라 내가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 아니다. 원래 네가 못났기 때문이다. 못난 너를 인식하고, 개인적 장점과 사회적 요구사항을 잘 버무려서 시너지를 만드려면, 머릿속 신화를 지우고, 스스로 깨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싫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는 대중의 본능 때문에, 옛날에도 지금도 그렇게 동화 신화가 구전되는 것이 가능한가보다.


마찬가지로, 모성애라는 이상이 결핍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엄마', '모성애'를 찾아 헤매는 인간 본연의 에너지로 인해, 그것을 찾기 까지 문영은 마음을 걸어잠그고 지내는데, 고등학생인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동시에,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므로, 한편 그것의 덧없음을 동시에 아는 생물학적, 사회적 시기가 내게도 온 것이 반은 다행이다.


내가 경험한 엄마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간 중 한명의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많고 많은 여성 중 하나 인 우리들의 엄마는, 약점도 강점도 동시에 지닌 완벽할 수 없는 한 명의 인간이다. 어린 아이 때의 딸은 먼저 성인된 엄마의 모습을 신데렐라의 계모나 콩쥐의 계모처럼, 언제 어느때나 내게 극복할 수 없고, 방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끼칠 수 있는 동시에 무한한 기쁨이나 구원을 줄 수 있는 인간 아닌 인간으로서 우상화되며 두려워한 나머지 경외시하는 존재로서 상징화되지만, 사실 상 사회적으로 볼 때 한 여성 즉 한 개인은 뜯기고 찢기고 죽도록 피나게 노력해도 결국 시대속에서 사회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한마리 개미과 다를 바 없는 개인에 불과하다.


어린이가 아직 경험하기 이전인 '성인'에 대한 환상 때문에, 어미에 대한 아픔과 상처, 고통을 안고 평생 애정결핍 비슷한 모습으로 살다가 그 상처에서 벗어나 내가 어린이가 아닌 성인임을 인식하게 되면, 상처가 환상에 의한 덧없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그동안 아파하느라 보낸 시간과 노력, 왜곡된 삶이 보이며 허망한 끝에 결국, 내 어릴적 엄마였던 그녀를 나로서는 무모한 선과 악이 공존하여 경외시해야할 여신이 아닌, 하나의 현실적 인격체로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회복을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맹렬하며 때로는 잔혹함을 요구한다. 남이 써놓은 글을 이해하는 척, 사고방식을 카피하면 달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 잊고 잘살자며 상처를 부정하거나, 초탈인 줄 알았던 요가나 명상으로 사실은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내 내면을 보며 그 때의 감정에 도취되는 과정을 겪으며 충분히 가슴아파해야만 현재로 탈환되며,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여자는 나이 든 여자를 환상한다. 아무에게나 어미에게 갈구했던 사랑을 달라고 애원하며 이상화하다가 곧 대상에 대해 스스로 상처받고 뒤로 내동댕이 쳐진다. 어미에 대한 상처가 극복되지 못한 채, 그 후에 맺는 다수와의 관계도식이  엉망으로 왜곡되어, 상대의 지지와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 좋을 수 있는 관계까지도 망쳐버리는 경우를 여럿 본다.


나이가 들면 갖추어질 성숙, 변화, 통합된 자아가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이루어지는 것 이라고 신화처럼 동화처럼 넘겨짚는다. 실제로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물 속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는,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그리고 민감한 극소수인데도 말이다. 비관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현실적 자각이야 말로 모든 여성과 남성이 상처도 열등감도 경험하지 않게 하는, 자유인격체로 만들어주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발견하게 하는 조망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뭐, 월하지 않으면 어떠냐, 이상적이지 않으면 어떠냐, 남보다 없으면 어떠냐, 무식하면 어떠냐. 쓸모있지 않으면 어떠냐...


모든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주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치유될 수 있다. 있는그대로모습으로 괜찮다는 깨달음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와 해방이 아닐까. [문영]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여성성과 인간성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문영]은 한 소녀가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도 치유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동시에 모성애라는 개념과 인간 회복 본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엄마'를 넘어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나를 발견해준,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  본성경쟁 단편작 김태리 주연의 [문영] 감상평이었다.

이전 14화 [티처스] 본질은 신념에 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