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티비 프로그램 [티쳐스]를 역주행했다.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삶이 바쁜 가운데, 그리고 시간대가 한국과 다른 상황에서 한국 티비프로그램을 재방송 또는 역주행으로나마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입시지옥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까지 이민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면서, 무슨 한국 입시관련 프로그램을 보나 생각할 수있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입시 이외에도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삶의 본질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도 한국 부모들은 또 그리고 각 국에서 공부하나에 대해서는 남부럽지 않게 성장하신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한다.
이곳에도 공교육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립학교 붐이 있으며,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액과외, 학원 등 학교 외 사교육이 열성이다.
물론 내가 속한 중소도시는 아직 그런 것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다행이지만, 대학이후 프로페셔널 스쿨 입학점수가 해마다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고, 이것이 특정 민족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을 띄게 되는 등, 얼마 안가 이 곳도 교육분야 있어 공공재적 성향보다 사적영역의 힘이 더욱 거세질 거라 예견하는 바이다.
사교육은 선행학습을 기본으로 한다. 학교에서 이미 해당학년의 해당진도가 나가고 있는데, 시장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과거에 학교에서 배워 이미 알고 있는 부분, 또는 현재 시점에 현학년 학교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 부분을 터치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학생들에게 미지의 영역인 새 내용, 즉 '선행'학습만이 돈을 내고 교육을 사기 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열되면, 선행경쟁이라는 부작용을 낳게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문제를 '의미없이' 진도 나가는것에 목적을 두고, 학원과 집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왔다갔다가 누굴 위한 것이냐며... 본인이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먼저 진도를 나가고 있으니 친구를 앞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가져오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의도와 정반대로 심각한 학습결손을 낳는다. 선행을 열심히 할 수록 말이다. 엄마들 사이에 이상한 경쟁이 붙어서, 내 아이가 8살인데, 15살 문제 풀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자신의 프라이드라 생각하며, 소위 자신은 영재부모이며, 특별아이를 키운다는 착각을 만든다. 우월의식에 중독되어 사는 부모들이 많고, 그로 인해 부모는 돈낭비를 하며, 아이들은 시간과 열정 낭비를 하게 된다.
모두 다 허영심과 자기기만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불안을 간파한 자본주의라는 놈이 높은 교육열을 주춧돌삼아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쉬운 나라가 한국이며 한국인이다. 이런현실 가운데, 프로그램을 보며 놀란것이 수학을 가르치시는 정승제 선생님의 수학에 대한 자세였다. 선생님의 주장이 내가 어린 시절 나의 아빠에게 배운 탐구방법 그 대로여서 놀랐다.
부모님이 주는 구구단표를 무작정 손바닥 맞으며 외우는 내 친구들과 달리, 내 아빠는 7살이던 나에게 사탕 두개씩 동생과 둘이 먹으려면 총 몇개의 사탕이 필요하냐는 식으로 구구단 10단까지 내게 스스로 셈하고 직접 큰 종이에 써 벽에 붙이도록 해 사고력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셨으며, 10개의 사탕을 앞에 앉아있는 나와 동생이 똑같이 나누게 하며 10/2=5를 스스로 추론하도록 하셨다. 1×1부터10×10까지 총 100개셈을 유치원생이 직접 써, 벽에 붙였으니 그걸 보는것만으로도 나는 내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수학은 쉽고, 외부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머리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체험했다.
헤르만헤세가 데미안의 이름을 입고 주장한 '자기자신에게 멀어진다는 건 죄악이다, 사람은 거북이처럼 제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말에 220퍼센트정도 공감하는 바, 내가 써 붙인 풀이들은 간결하게나마 내 머리와 손가락에서 일어난 진정한 수학이었음을 자부한다.
이것이 내가 끼운 내 인생 수학 첫 단추였다. 늘 수학이 재미있었고, 고민하는 시간이 설렜다.엄마에게는 별로 다정하지 못했던 남편이었고, 별로 존경스럽지 못할 때도 있는 내 아빠였지만, 나의 첫 수학, 과학 선생님으로서 만큼은 나는 아빠같은 아빠를 갖고 있음에 성은이 망극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들들에게도 아빠께 배운 사고력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결과적으로 고3이 되었을 때, 그 어떠한 사교육이 중고등 총 6년동안 단 하나 없이도, 밤9시에 자고 아침 8시에 기상해도, 3월달 모의고사 2등급을 쉽게 찍었었도, 그런 내 옆에는, 이미 수년전부터 수포자를 자처했던, 학원과 과외 병행하며, 손바닥 맞으며 구구단을 외던 어린시절부터의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원리를 '생각' 해야한다고 말해도 무슨말인지 그들은 감을 잡지 못하는 듯 했다.
늘, 선행보다 사고력과 추론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선행보다 중2인 내가 초6때 진도를 모르면, 누가 우습게 보던 말던 과감히 초6, 초5 진도가 나가던 그때로 돌아가서 이해할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세상의 사교육 파도에 휩쓸릴 필요가 하나도 없다.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터 놓은 사교육이라면, 사교육이 대중의 것이 되었다면, 사실 경제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것은 그리 효용가치가 높은 것이 아니다. 대중을 활용한 박리다매 상업적 가치만 존재할 뿐이다.
수학공부는 모든 공부의 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정답을 맞추고 틀리고가 아니라, 한 문제 한문제를 분석하는 능력, 그 안에서 여러 방향에서 생각하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그 밑에 단순 연산을 유려하게 실수없이 해 내는 능력, 삶에 적용하는 능력.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느시대를 어느 공간에서 살든 꼭 필요한 인지능력, 사고력이다.
chatgpt 시대에 무슨 암기가 의미가 있으며, 지식을 복제하고, 남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정보를 얻는것이 뭐 그리 의미 있고 유용한 일일까? 내 아이가 당장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학업을 그만둔다해도 생각하는 힘을 가진다면 암기만 할줄알고 스스로 학업과정을 설계할줄몰라 과외 선생님이나 튜터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명문대 대졸자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대세를 의식없이 따르지 않고 내가 주체가 되어 신념을 갖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핵은 어디서, 언제든 같다.
주체성을 잃지 말자.
내 삶의 주인은 나 임을 언제나 잊지 말자.
온갖 것들이 판치는 혼잡한 세상속에서 티쳐스는 그것을 내게 다시금 일깨워주었다.티쳐스 선생님들과 출연한 모든 학생들, 선생님들, 그리고 한국에 계신 모든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을 멀리 캐나다에서 언제나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