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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Oct 08. 2024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우리동네의 축소판

당신의 세부코드를 알려주세요. 당신을 게임쇼의 관객으로 초대합니다.




타인은 나에 대해 비밀을 가질 수 있다.

이 비밀은 타자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에 대한 평가로 나는 그 평가를 정확히 알수가 없고, 다만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으며, 상대가 설명해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나 혼자 있을 때와 달리 타인이 있으면, 나는 판단되고 평가되는 객체의 지위로 강등된다.타인의 시선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이 주체에서 객체로 강등되는 경험을 [수치]라 한다.내가 너를 몰래 훔쳐보고 있을 때 나는 주체이며, 너는 객체가 된다. 그러나 그런 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제 3자가 존재하면, 곧장 나는 수치심을 느끼고,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제 3자가 곧 주체가 된다.  

주체가 객체가 되는 순간, 자신의 주체성은 상실되고 타인이 평가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인식에서 [수치]가 발생한다. 제 3자가 나를 겁쟁이, 약탈자, 위선자로 규정하게 되고 이는 오렌지,컵,수첩과 같은 사물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해진다. 이 때문에 인간이 사물로 환원되고 평가받는 것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수치이다]. 수치란 자신의 존재가 외부 시선에 의해 평가받을 것을 의식하면서 발생한다. 수치의 반대말은 [소외]이다.

상호교류는 수치심과 소외에서 서로를 해방시킨다.

By 장 폴 사르트르



Wavve에서 독점 방영중이었던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에 대한 감상평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오징어게임 또는 그 이상의 긴장과 감동을 체험할 수 있는 한국의 한 쇼 프로그램이다.


https://namu.wiki/w/%EC%82%AC%EC%83%81%EA%B2%80%EC%A6%9D%EA%B5%AC%EC%97%AD:%20%EB%8D%94%20%EC%BB%A4%EB%AE%A4%EB%8B%88%ED%8B%B0

프로그램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는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나는 프로그램 출연자나 규칙보다는 감상평을 위주로 남겨볼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이라든지 인신공격에 준한다던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애초에 언급하고 싶지 않다.






[더 커뮤니티] 이곳은 작은 마을이다. 이 곳에는 각종 정치적, 사회, 경제적 성향들이 공존한다. 개인을 정의하는 4가지 분류가 있는데, 예를 들면 보수와 진보 중 각기 치중된 정도에 따라 1,2,3으로 나뉘어 진다. 그러니까, 극 보수나 극 진보는 3점이고, 중도에 가까울 수록 1점을 차지한다.  4가지 분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의 정치적 색깔을 묻기 이전에, 내 글을 읽는 독자님들에 대한 의리의 의미로 내 패를 먼저 공개한다.


1. 보수 VS. 진보


Chatgpt에게 나의 브런치사이트를 알려준 후, 나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해 달라고 말해본 결과, '나의 글에서 나타난 생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드러나는 나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라고 한다. 어찌보면 회색분자라고 폄하당할 수도 있으나, 사실 나의 경우에는 인간의 정치적 진영을 보수나 진보로 편가르기하는 것이 별 의미없는 싸움이라 생각하고, 사실 사람은 어느 편에 있다고 주장하든 그것은 허상에 분명하며, 결국 양 진영을 초월하는 이기적인 존재라 생각하기에 굳이 따지자면 '중도'라는 나에 대한 인공지능의 분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가정환경 상, 정치적으로 무색무취의 부모님께 보수나 진보측에 대한 혐오나 강화를 받지 않고 자랐으므로, 그것에 영향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페미니즘 VS. 이퀄리즘


나는 이퀄리즘을 주장한다. 양성 중 여성은 약자이며,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우대 받는것이 어쩌면 상대적 공평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내 남편과 달리, 나는 양성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동등한 교육, 문화, 사회생활, 학업, 취업의 기회가 주어진 시대(1980년대~현재)와 나라(캐나다)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차간 임금격차가 전세계1위에 빛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적 약자인 여자로 태어나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 없이 사회생활을 한 바탕이 이퀄리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 우리 가족안에 남자형제가 존재했다거나 유교적 질서를 신봉하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나 또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결국, 개인의 생각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환경분위기가 어떠한가에 따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선택일거라 본다.


이념의 선택은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바탕에 깔린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3. 서민 VS. 부유


당연히 나는 서민 출신이다. 서울의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20여년을 살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더러는 우리동네에도 터줏대감 부자가 있긴 했지만, 나는 동네 상위10%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중위 30-60%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우리동네는 재계발이라든지, 개인간 격차가 큰 동네가 아니어서 상대적 불평등을 배우지 못하고 컸다는 것에 나는 감사한다. 아주 부자는 빼고, 중간 계층의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서는 너가 부자, 내가 부자라 잴 것도 없이, 다른 동네에 비하면 너나 나나 매한가지인 차이라 서로 으스대거나, 초라할 필요가 없는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살았다. 그래서 '돈으로 뭐든 할수 있다' 라는 물질 만능주의라든지, '돈이 없어서 초라하거나 배가 고프다' 등의 돈에 웬수라도 진 자세를 체험해 본적이 없기에 돈 이외의 가치를 살피고, 행복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본 건, 각기 다른 동네에서 모여든 대학교 때가 첫 시작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당연히 부모님께서 책임져주시고, 학교에 다니면서 사용할 밥값이나 여타 문화생활비를 부모님께 조력받아 생활하던 나의 기본값이 누구에게나 적용될거라 생각했지만, 졸업하자마자 학자금대출을 상환해야하고, 점심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집에서 건강한 식단을 준비해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았다. 구 집에 놀러갔는데 성별이 같은 동생과 대학생인 현재까지도 같은 방을 써왔다는 말을 듣고,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의 깨끗하고 넓직한 방을 갖고 사는 것이 누구나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는 당황했고, 친구는 당황한 내게 미안해했다.


그보다 더 극한 경우는, 강의시간에 잠을 자는 경우이거나 수업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였는데, 3년이나 5년 후쯤 우연히 논현동 한복판의 커피숍에서 요상한 차림새의 그녀와 마주쳐 황급히 모른척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숨겨주었던 기억이 있다.


한편, 부모님과 매주 백화점을 쇼핑하며,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벌써부터 좋은 곳에 취집자리를 찾아 선을 보는 친구들, 미스코리아나 아나운서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보고 입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뭐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아니기에 성상품화를 일삼아 취집이나 하려는 계집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살았던것같다. 모두다 한 곳을 보고,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생각을 가져도 정답은 하나. 결혼잘하기. 로 관철하는 아이들을 보며, 왜 똑똑하게 태어나 좋은 교육받고 자랐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나의 생각? 반반이다. 현실적으로 이해는 가되, 아직도 그들의 삶의 태도가 나를 설득할 수는 없다. 내가 아직 고생을 덜 했을테지.


높낮이 없이 완만한 동네에서 나만의 가치를 찾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캐나다 위니펙 SW이라는 심심한 중소도시에 와서도, 볼거리등 여타 자극없는 이 곳에서 사이즈 맞게 무난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남편은 원래 서울이 아니었다가 7080년대 강남개발로 상대적불평등이 큰 지역에서 돈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며 산 사람이다. 원래 논밭이었던 땅이 삐까뻔쩍한 금테두른 땅으로 바뀌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산 사람이라, 이권이 있는 동네 특유의 각박함과 상대적 불평등으로 인한 삭막함, 그리고 행운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다. 그로인해 아주 큰 이익을 본 벼락부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들이 얼마나 가진것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고, 또 조금 더 가졌다고 상대를 초라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아는 부유층 혐오자이다.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을 남몰래 무시하던데, 스스로만 그 사실을 모른다. 본인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동시에 물질 신봉자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금전에 욕심이 없어서 절약한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절약하는 만큼, 본인이 돈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얼마나 돈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지.


남편이나 나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님에 의해 처해진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인격의 다름이다.

이 또한 어느정도까지는 생득적인 가치이지, 퇴폐화 선택 전 까지는, 개인의 선택이나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분류라 보기 어렵다.



4. 혁신 VS. 전통


전통적 가치관을 신봉하느냐 변화를 추구하느냐 하는 것을 묻는질문에 대해, 인공지능은 나를 혁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라 '지금까지의 내 글들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아무래도 전통적 가치관을 쫓는 사람이 캐나다 이민까지왔을리 없지. 아니 이민을 와서도 모든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것은 개인의 혁신성을 낳고 성장하도록 한다. 와서 하는 고민이라는 것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할 것이냐이며,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안에 나 라는 존재가 어떠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느냐 이기에 혁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부딫히는 곳은 바로 가정안이다. 가정안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녀자의 책임이 막강하기에 본인은 극구 부정하지만, 전통적인 입장을 고집하고 있는 내 남편의 경우, 나의 바깥활동을 살짝 못마땅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가정생활의 책임을 내게 떠민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당연시 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 너무나 개혁적이며, 깨인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남편에 있다. 스스로에 대한 문제인식이 전혀 없다.


이는 우리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이민 1세대 한국아저씨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처가집과 멀어지고, 기존 사회생활에 대한 강박이 줄어든 것이 자신의 현실인 한편, 요리라는 집안에서의 책임에 대해 아직도 부인의 책임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불공정성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본인이 언어를 불편해해 아이 숙제나 학교 컨퍼런스, 병원, 행정, 심지어는 교통사고 신고에서 본의 아니게 자유로워졌으나, 그곳에서 남은 에너지를 집안일로 불태우리라는 생각을 가진 이민자 아저씨는 안계신것 같아, 아니 우리아저씨는 그런 분이 아닌것 같아 씁쓸하다.


중이서혁

이것이 나의 글속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에 의한 나의 사상 프로파일이 되겠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은 추론을 꽤 정확하게 해냈다. 딱 한가지 빼고...




나와 가장 비슷한 프로파일을 갖고 있는 출연자는 누구일까 살펴보았는데, 그레이, 테드 그리고 슈가가 가장 부합했음을 확인했다.


체적 맥락안에서 그 사람들이나 나나 극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중간에 가까운 완만한 점수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하며 쇼를 관람했다.


징어 게임 등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우리는 그들의 게임의 관객이 된다.


모든 관계는 관람당하는 피관찰자와 관람하는 관찰자로 나뉜다는 한 철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쇼를 관람하는 동안 우리는 참여자를 마음껏 관찰하고 평가하는 입장, 즉 상대적 우위를 체험할 수 있다. 출연진 즉 피관찰자들프로그램 쇼에 걸린 상금과 벌칙의해 자신의 대부분을 노출하지만, 관찰자를 평가하거나, 선택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염탐하고 판별하는 관찰자만의 권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일종의 을인셈이다. 갑이 된 관객, 즉 우리가 이러한 서바이벌 쇼를 짜릿해하고 재미있어하는 이유이다.


벤자민은 본인 스스로 철저하게 짠 각본 안에서 불순분자임을 끝까지 들키지 않고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슈가또한 자신의 생각과 색깔을 감춘채로 늘 게임에 없는 사람처럼 임했다. 자신의 색깔이 강하고,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본인 속은 시원할 수 있지만, 역시나 한 집단안에서는 여러가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그리 안전한 행동이 아니었다. 즉, 나의 생각이 강하면 강할 수록 나를 선호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나뉘며, 이것은 단체생활과 서바이벌 게임에서 그리 유리한 자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가면을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번 안전한 선택이었다. 똑똑하지만 멍청한 사람의 가면을 쓰거나, 한국말을 잘 하지만 못하는 척, 그리고 누군가를 혐오하지만 좋아하는 척,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는 척. 본인 스스로 가면의 여부를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지,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가 또는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는가는 본인의 안위와 사실 별 관련이 없는 변수라고 봐도 무방함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나의 기본 생각처럼 모두는 이기적이었다. 그의 정치적 색깔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통된 결론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이권이 주어지면, 그것을 양보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그 이권이라는 것이 영원하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유한한 이권을 가짐에 있어서 이것을 자신을 위해 영속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설사 자신의 권한이 침해 될 수도 있는 후속 상황이 예견된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진 권한을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영구대장이 된 '백곰'을 비롯한 3인의 이권공유에 대한 토론이었다. 백곰은 약속한대로 자신의 이권을 구성원을 위해 양보했지만, 그녀 또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의로 쓸 수 있는 권한이 1개뿐인 상황. 즉, 다른 한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2인들 각각의 또는 둘 중 한명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 둘은 자신들의 이기성과 익명성을 수호해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이 둘은 팀원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양보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목숨권을 저장하는 것을택한 것이다. 영구대장백곰은 자신의 팀원에 대한 권한 양도 즉, 자신이 배풀 수 있는 모든 선과 권한을 최대한으로 구성원을 위해 베풀었지만, 정작 자신 이외의 2명의 팀원이 권한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팀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 2명은 백곰에게 자신들을 지켜준 백곰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선한 대장이기에 짊어져야하는, 그렇지만 사람들이 못본 체 하는 '책임의 블랙존'이 이 곳에서 존재하는 것을 보고, 더 커뮤니티 쇼의 퀄러티를 극찬하는 바이다.


리더선출에 숨은 뜻 또한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강한 리더쉽이나 자신만의 입장과 색깔이 확고한 강력한 리더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켜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줄 부드러운 리더를 원한다. 선거 전과 후로 리더의 입장이 달라지는데, 선출직전에 가장 빛났던 리더는 선출과 동시에 자신의 의견이 무참히 밟히고, 오히려 구성원에 의해 자기 중심을 잃고 모든것을 희생했지만 구성원의 비난만을 받는 입장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선한 뜻을 갖고 있는 리더라도, 리더쉽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리더로서 자신의 우선순위를 먼저 설정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유일하게 팀 구성원들과 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은 벤자민이었고, 다른 모든 구성원을 평가하고 관찰하고 기만,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인 불순분자가 벤자민임을 안 순간, 그레이는 그를 혐오했고 극노했다. 걱정마시길. 관객이 제3자가 되어 벤자민을 보고 있으니 벤자민 또한 피관찰자로서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 시청자 모두가 증명한다.


이것이 셋팅값이든 자연스럽게 진행되온 창작의 결과이든 다른 쇼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의 다양성을 보여준 입체적 구성과 허구의 협동과 이기성 등 현실성을 보여줌으로서 기존의 잔인했던 서바이벌 쇼의 형식에서 한층 진보된 작품을 보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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