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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Oct 22. 2024

[결혼지옥] 상대적 약자 대상 프로그램, 과연 옳은가?

프로그램 진행자 중 가장 높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은 탈퇴한 '하하'일지도

타인의 문제와 해결을 위한 접근방식, 해소과정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덩달아 내 안의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방송이 이어지는 동안, 나와 내 남편은 [결혼지옥] 이라는 프로그램을 거의 모든 회 시청하던 주 시청자 중 두 명이었다.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대부분의 갈등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생각과 감정에 귀인 한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상의 나와 현상의 배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로 오기 이전, 결혼하기도 이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즉 과거경험과 상처에서 비롯된 경우가 80-90% 인데, 심리치료와 상담과 비슷한 방송들을 보며 전문가들의 첨언을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치료실에 가서 시간과 비용,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고도 우리의 삶을 '공짜로' 조금 더 든든하게 하는 기분이었다.


캐나다에 살아도, 한국 티비를 시청할 수 있는 한, 전문가의 도움과 늘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보이지 않아도 백서포트를 받는 기분이 들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지난 한 해, 두 해...


감사하게도 이민과 정착 시간이 남에 따라, 우리는 개인 상담과 글쓰기 등을 통해 우리 각자의 문제를 해결했고, 그것들이 합쳐서 선을 이루는 경험을 했다.


방법은 티비 시청이 아닌 이 곳에 있었다. 


합법적 동의를 거쳐 공개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비춰지는 어려움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찾아 내려는, 기존의 티비 프로그램을 통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내 문제 직면하기, 골똘이 바라보기, 솔직하게 느끼기, 슬퍼하기, 인정하기, 화해하기 라는 직접적 문제 직면에 우리 문제해결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용기와 함께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했다.


내면의 상처 극복 성공의 중요 포인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은, 1)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사적인 이야기를 토로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주는 2)전문가, 직면의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한 threshold를 넘을 만큼 충분히 투입되는 3)시간에 있다.


남이 다 보는 공간, 나의 솔직한 내면의 음성에 대해 누구든지 온갖 잡음을 첨가할 수 있고, 나의 공적인 관계가 방해될지도 모르는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절대로 치유의 힘이 발휘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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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문제가 해결된 후, 우울증과 기존의 사고 왜곡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그 후 이 프로그램을 보니, 이전과 좀 다른 시각에서 프로그램과 내용이 해석된다.


첫번째로, 자세히 보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널리 우리 주변에 사회속에 퍼져있는 '일반적인' 이웃들이라고 일컫기에는 다소 어려운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이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웠다. 


부자가 출연한 적은 없으며, 중산층이나 일반 서민이 아니었고, 그보다 어려운 형편에 계시며, 경제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고 계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잠시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부부이며 출연료 제의가 있다 하더라도, 티비에 나와 우리의 사생활을 전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음만 있다면 전세계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영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적 문제를 알리려고 할까?


다소 이성적 사고가 어려운 상태의 출연진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 상태가 치료되는 우울증 등의 심신 미약상태이든, 영구적 경계성 지능 상태이든 자신의 인권을 지키는 것에 대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임시적, 장기적 상태의 사람의 아픔을 출연진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가?


널리 인간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들의 얼굴이 누구에게나 정면으로 캡쳐당하고 익명 게시판을 통해 맘대로 그들에 대해 씹히며, 세상 그 누구도 본인을 지켜주지 않은 어린시절 방임에 대한 상처를 다시 경험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다른 사람들의 문제상황을 자극적 소재로 활용해 티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던말던 소비재로 사용하는 것은, 재아무리 일급 변호진을 갖고 계약하에 일하는 방송관계자들일테지만, 법 위에 사람의 소중함이 먼저임을 간과하는 행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아픔 위에서 조언하고, 훈계하며, 댓가로 돈을 벌어가는 앞에 앉은 패널들은 옳은 행위를 하는 것일까?자신들의 일감이 되어주는 일일 출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모든 사람들의 알 권리가 있지만, 사생활 보호에의 의무 또한 있으며,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는데, 훼손당할 명예라는 것이 없는 일반 소시민의 사생활은 아무리 그들의 동의가 있다 한들, 그들의 아픔이나 사생활이 맘껏 누구에게나 소비되는 것이 정당한 행위라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과 존경 없이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이런 방송을 장기간 지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기몰이와 돈벌이를 위해 다른 사람의 아픈 사생활을 팔아도 되는 것인가


자신의 삶에 문제의식을 갖고 출연을 신청한 일일 출연자 모두와 그들의 행위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 중 내가 제일 심하다.


그리고 내가 출연자와 같은 상황에 놓여졌고, 출연자들 만큼 어린시절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 배우지 못했다면, 생각할 시간도 유린당하고 일해야했다면, 나는 그들보다 더 힘들고,  살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아픈 경험이 나를 인격적으로 더 못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하늘에서 내려온 썩은 동앗줄이라도 잡아 보기위해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신청하고, 출연제의를 복권에라도 당첨된듯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생활을 모두 내어 놓고, 우울로 정작 자기자신또한 보호할 수 없는 그들이지만, 넉넉한 환경에서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상태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고 있다면,  내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잘 살았을 그 들일거라 단언한다.


이런류의 프로그램들로 어린이들을 비롯한, 약하고 힘든 사람을 맘대로 소비하고 괴롭히는 일이 이제 그만,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방법으로 부부싸움을 통해 기존 부모와의 상처를 극복할 수 없듯,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는 둣한 접근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쾌속 직면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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