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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Nov 09. 2020

다치지 않아야 끝까지 간다

지난주에 동료의 반에서 학생이 한 명 크게 다쳤다. 플라스틱으로 된 부메랑을 받다가 부메랑에 앞니 3개가 부러졌다. 병원과 가정에 연락하고 학생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동료는 거의 탈진했다. 하지만, 남은 아이들을 하교 전까지 책임을 다해 지도할 일도 남아있었기에 정신을 붙들고 수업했다고 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오후에 교실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두 볼이 발갛게 올라 멍하니 있었다. 그녀에게 위로해 줄 말을 고르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었음을 알았다.


6학년 민수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렇게 잘생긴 남자 어린이는 처음 보았다. 속눈썹도 길고 입술은 또 얼마나 붉던지.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녀석답게 행동은 요리조리 튀었다. 민수가 운동장 조회 후 사라져서 나는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혼비백산했다. 민수는 3교시가 시작될 때쯤 알아서 교실에 스윽 나타났다. 어디서 뭘 했냐는 내 물음에 "선생님, 우연히 연예인 전화번호를 알게 돼서요, 그 누나한테 전화 걸어보느라 늦었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정말 황당했다. 녀석의 능청스러운 태도가 더 기가 막혔다.


6학년 네 반에 걸쳐 친구가 두루 있었던 녀석은 뭉쳐 다니기도 잘했지만 자잘한 다툼을 몰고 다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이리저리 뭉쳐 다니며 문제를 일으켰다. 어느 날이었다. 복도에서 큰 소란이 일어 또 녀석인가 보다, 한숨을 쉬며 나와보았다.


복도에는 농구공이 떨어져 있었다. 민수는 안경을 손에 들고, 한 손으론 눈을 잡고 있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민수가 농구공에 맞아 안경이 깨지며 그 파편이 눈에 들어간 것이었다. 큰일이 났다 싶으니 무서울 정도로 침착해졌다. 나는 발이 빠른 아이 하나를 얼른 보건실로 보냈다. 그리고, 민수가 손으로 눈을 만지지 않도록 두 손을 잡고


 "민수야, 선생님하고 병원 갈 거야.  절대 눈 만지지 마. 눈 감고 가만히 있어!" 했다.

심부름 보냈던 아이가 다시 돌아와 숨을 헐떡거리며 보건 선생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차 키를 들고 와 아이를 데리고 안과로 달려갔다. 읍내에 안과는 한 곳뿐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께서


 "선생님, 여기 들어와 보세요."

 했을 때 정신이 퍼뜩 났다. 캄캄한 진료실 안에는 모니터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선생님, 여기여기 상처들 보이시죠?"

의사 선생님이 가리킨 부분은 눈이 확대된 모니터였다. 군데군데 홈이 파인 부분, 스크래치가 난 부분들이 보였다.


 "다행히 아이가 손으로 눈을 문지르지 않아서 유리조각들을 빼낼 수 있었습니다. 으로 긁기라도 했으면 스크래치에서 안 끝나고 크게 다칠 뻔했어요."


눈이 따끔하다며 오는 내내 눈물 흘리던 녀석은 뒤늦게 놀랐는지 말이 없었다.

민수를 집에 보내고 다시 교실로 돌아와 정신없이 수업을 했다. 퇴근 후 나는 녀석의 집에 방문했다.


미리 전화드렸을 때에는 할머니가 받으셨는데 방문하니 온 가족이 모여 계셨다. 민수는 할머니 집에서 자라고 있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일하고 계시느라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민수와 민수 동생을 키우셨다. 녀석이 늘 서울에 사는 연예인들에 관심을 갖고 그곳을 동경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 민수 데리고 병원 다녀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온 가족 분들에게 인사를 받으니 긴장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렸다.

그 후로도 민수는 자잘히 속을 썩였지만 수업 중에 병원에 뛰어갈 만한 사고는 치지 않았다.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계신 선배님께 동료반에서 생긴 사고를 말씀드리고, 다음 주에 있을 체육수업에 대비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열심히 가르쳐도 학생이 다치면 아무 소용없어. 정년까지 가려면, 애가 안 다쳐야 해."


내 말을 들은 선배님 말씀에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셨다. 교육경력이 모두 다양한 선생님들이지만 저마다 모두 훈장처럼 학생 안전사고에 대한 기억이 있으셨다. 비교적 경력이 높은 편에 속한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늘 교육활동 계획을 세울 때마다 지나칠 만큼 안전을 이유로 몸을 사리셨다. 교직 생활을 거치며 겪은 아이들의 '사고'가 선생님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학생 하나가 다치면 가족들도 속상하고 힘들지만, 담임이 겪는 고통도 만만찮다. 사고의 현장의 있었기에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부터 학생에 대한 미안함까지 고스란히 본인의 책임으로 남게 된다.


나는 정년까지 학교에 다니고 싶다. 아이가 다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학교생활도 놓치지 않도록 애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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