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허르헉과 저무는 밤의 끝을 잡고

by 건너별

아침이 눈 감았다 뜨니 왔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수면의 질이 조금 떨어지고 예민한 나도 역대급으로 기절했다가 다시 돌아온 날이었던 듯 하다.



오늘은 8시간 차로 이동하는 날!
다들 꽤나 피곤하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어느정도 했다는 미묘하고 비장한 표정들을 지었던 듯 하다.


긍졍 누나는 장난 섞인 말투로 나에게 묻는다.


누나 : 어제 다른 친구들이랑 밤을 지새웠어?! 즐거웠어 아주?!
본인 : ㅋㅋㅋㅋㅋㅋㅋ누나
누나 : 왜!
그냥 불러봤어~ >_<

아침에 일어나니 단체사진을 찍자고 한다.

알고보니 우리가 함께하는 투어사의 다른팀들이 모두 모였던 장소였던 것이다!

뭐 아무렴 좋았다. 6명이서 한컷. 기사님과 엥크와 한 컷.

스크린샷 2022-09-03 오후 4.06.25.png rain누나 이쁜거 못찾아줘서 미안해. 이것밖에 없었어 ㅎㅎ


그리고는 좀 더 재밌게 찍고 싶어서 토마스를 들어주자고 헉이형님께 제안했다. 가마를 태우니 균형이 맞고 신이 났다. 그러자 옆에 있는 여성 3인방 동행은 합의되지 않은 행동에 영향을 받아 우리도 들어주자!! 서로 급작스럽게 회의를 해대었다. 우리는 이미 동생을 들고 있었고, 무거웠고, 카메라 찍을 타이밍을 잡아야 했다. 그들은 어떻게 들어야 할지 우왕좌왕! 그래서 헥헥대는 얼굴로 나는 소리쳤다(아마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할거면 빨리 해!!!!!!!!!!!!

우리를 지켜보던 다른 팀들은 미소를 지었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우리 팀에 미세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꼈던 듯 하다.


여행은 그 자체로도 꿈만 같은 시간인 건 맞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웃게 되는 건 아니다. 번뜩이고 재미있고 때로는 이상한 아이디어로 순간순간을 좀더 섬세한 악세사리를 선정하듯 장식해 줄 때, 우리는 웃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 포착되었을 때 우리는 그 순간을 특히나 어여삐 여기게 된다.


그리고 어제 같이 놀던 동행들! 나는 가서 같이 사진한번 찍자고 제안한다. 새벽의 기운이 사라진 광활한 아침에는 사뭇 어색한 기운이 다시 돌지만, 나는 그들에게 포옹을 자처한다. 그리고 오늘 밤의 캠프파이어를 기약한다. 이따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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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웃음(왼쪽)과 두 팀 함께(오른쪽)








오늘은 "바가가즈링 촐로" 가는 날. 돌들이 모여 예쁜 산을 이룬 화강암 지대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때부터는 여행지에 큰 관심이 사라졌었다).


그보다는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난 생각했다. 잠을 이제는 자야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잔다.

조용하거나 눕지 않으면 웬만하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혼자 깬 상태를 마주했다.

덜컹거리고, 볕이 드는 악조건에서도 잠드는 동행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20220804_100503.jpg cool cool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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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디멘터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중이다.

나는 오늘은 무언가 차분하게 있고 싶었다. 그동안 차안에서 여러 게임과 대화들을 나누었기에 여러 테마로 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다.


혼자 생각을 시작했다.

동행하면서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랬다.

보통 젊었던 청춘이나 행복한 시간들은 돌아보았을 때 "그때가 좋았지"하고 느끼기 마련인데, 나는 지금 미래로 가지 않아도 지금이 제일 행복하고 청춘일 순간일 거라고. 그걸 느끼고 있다고.


그러게, 다들 잠들고 혼자 달리는 초원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시간이,

굳이 추억할 필요 없이 지금이 정말 행복한 순간이겠구나를 알아챘다.


행복했다!


여행을 할수 있다는거. 즐거울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내가 써놓은 기록을 보니 사색 도중 눈물을 흘리었나 보다. 어떤 감정이었고 어떠한 흐름이었는지 기억은 안난다. 내가 여기 기록할 수 있는 건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졌던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함께 있는게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잠깐의 홀로인 시간도 좋았지. 잠시 시간이 멈추길 바랬지.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을 들으며 "너는 웃다 고갤 끄덕여줘" 라는 가사에 혼자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를 지었지.



인생 여행지가 갱신되어 버렸네.



길이 있을까 하는 의문에 더 호기심만 증폭시키는 표지판을 만났다. 넓은 평야에 떡하니 자리한 이 표지판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인도해주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낙타 떼. 달리는 낙타들과 날리는 흙먼지는 사막과 초원 감성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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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은 하나, 낙타는 여러 명



그리고 중간에 한국인들이 단체로 와서 식물을 심은 곳도 엥크가 설명해 주었다. 이름은 "고양의 숲". 고양시에서 주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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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내지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이 곳에 와서 땀을 흘리며 식물을 심었을 10년 전의 선배들. 지금쯤 30대 이상이 되었겠지.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기에 이런 식물 사업이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마침내 도착한 마을과 점심 식사. 그마을은 이전에 갔던 곳이었다! 가이드가 나는 다른 메뉴를 시켜 주었다. 양고기가 괜찮다던 나머지 동행들도 이제는 양고기에 대한 항마력이 다했다고 외치었다. 양고기와의 전투에서 이제 남은 병사들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기사님과 엥크와 나, 그리고 토마스 정도만 맛있게 먹었을 뿐이다! 아마 이 때는 좀 과식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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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돌아온 마을과 점심식사!



그리고 바가가즈링촐로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의 추억을 소개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날씨요정이다.

20220804_182033.jpg 근두운을 소환해서 비행기 대신 타고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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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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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은 돌을 하나 쌓고 두바퀴(아니면 세바퀴)를 돌며 소원을 비는 거라고 했다. 항상 소원은 그냥 지금 행복한거지~ 라며 넘겼지만, 이날은 꽤나 구체적인 소원을 빌었던 듯 하다.


20220804_181829.jpg 태양을 따라가는 나침반 모드 on한 상태
20220804_182556.jpg 단체샷 빼면 섭하지
20220804_183615.jpg 바가가즈링 촐로를 내려오면서


중간에 힘들어서 잠시 드러누웠다. 지쳤지만 다들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새벽마다 잠을 어느정도 자고 일어났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이드는 우리가 지쳤다는 걸 느꼈는지 얼른 숙소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듯 하다.

우리가 잘 마지막 게르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이내 사라졌다.


풀이나 잔디가 무성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숙소 바로 앞에는 말들이 새끼와 함꼐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이 정도는 자연을 지켜 주어야 다른 야생동물들과 공존하는구나!


20220804_194257.jpg 멀어진 말들과 전경


나는 너무 신기해서 다가갔다. 그들과 교감 내지는 소통을 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멀어졌다. 하긴, 나도 새끼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다른 종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우선 피하고 보겠지. 달려가서 깽판(?)을 치고 싶은 마음을 삼키며 동행과 함께 멍하니 그들의 휘날리는 갈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짐을 풀고 게르 주위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연기가 나는 곳을 발견했다. 나는 홀린 듯이 다가갔다. 그러니 우리가 먹을 저녁식사로 추정되는 허르헉을 요리하고 계신 게 아닌가! 부부와 귀여운 아들이 운영하는 게르 민박집과, 허르헉 요리를 하는 그 장면. 이건 귀하다 싶어 나는 그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



몽골 하면 가장 생각나는 요리 '허르헉'. 양고기들을 넣고 숯을 사이사이에 낑겨 넣어 준다. 그리고 각종 야채(양파를 넣어주는 듯 하다)로 잡내를 제거하고 향미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연히 마주한 자연스러운 요리 광경. 우리는 여행을 가면 유명하거나 정말 맛있는 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갑자기 마주한 식당에서 예상치 못한 맛을 발견 했을 때 더욱 더 큰 기쁨을 느낀다. 몽골이라는 나라에서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움이 그 어느것들 보다 '진짜'다. 연출되지 않은 것들의 아름다움, 이것이 내가 몽골이라는 나라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몽골 갔다 온 친구가 이야기하길 향이 별로라지만, 나는 이따가 맛있게 먹어야지!





그리고 우리는 다같이 모여서 파티를 하는 것처럼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덕처럼 쌓인 허르헉들의 비주얼은 모든 이들의 탄성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왠지 손을 잡고 뜯고 싶었다. 산적 감성으로 고기를 뜯는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와구와구 씹히는 몽골 음식의 정점, 허르헉! 고기가 특별히 부드럽거나, 풍미가 매우 뛰어나지는 않아도 몽골이라는 나라를 느낀다는 그게 좋아서 먹고 또 먹었다. 또 먹고싶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맛이 안나겠지. 뭐 또 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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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소리 나는 비주얼. 만화에서 나오는 그 고기다!(왼쪽) 나는 기꺼이 게걸스레 손으로 잡고 먹는다.


그리고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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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진행자가 이끌어주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불꽃과 함께 하는 세상에 다시 없을 특별한 불멍이었다.


나는 기타를 다시 꺼내 들었다.



몽골에 기타를 들고 오는게 소원이었다고 나를 소개하고 우리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잔잔한 감성으로 이어가는 노래들.


그 중에서도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그 날이 마무리됨을 다시 깨달았을 때 우리의 여행이 막바지로 가고 있구나를 실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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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마무리한 캠프파이어. 하지만 이대로 잘 수 없었다.


카메라로 사진찍는걸 좋아하는 헉이형은 저 먼 곳에서 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별을 배경삼아 찍는 갬성 가득 사진들. 우리는 다시 에어배드를 폈다.


맞다, 나 별보러 왔는데!


우리는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별로부터 빛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최소 10초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예쁜 사진을 위한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 운치있는 바위 위로 올라가 별 포인터로 별을 비추고 별을 감상했다. 그리고 에어배드 바람이 쏙 빠져서 돌 위에 드러누워서 쏟아지는 눈앞의 별들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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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입고 한장, 뻇어입고 한장. 포인터랑 별빛 은 잘 안보여도 뭐 어때.



캠프파이어와 자연.


허르학과 저무는 밤의 끝을 잡고,

별 아래 잠들어,

우리는 밝은 빛의 설렘으로부터 따뜻한 빛의 아쉬음까지의 그라데이션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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