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낭만의 축제, 이토록 선명하고 영화로운

by 건너별
넌 음유시인같다. 낭만이 인간화된다면 바로 너일거야.

숙소로 향하며 헉이형이 해준 말이다. 사실 진짜 말로 한 문장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해석한 뜻은 이렇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거다.


이 말에 나는 마치 매우 어려운 문제를 내고 혹시나 한 명은 맞추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으로 도박을 하고, 정답자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더랬다. 나의 삶의 비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 행동으로부터 자연스레 정답을 유추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출제를 잘 했다는 의미도 들어 나의 행동들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지 싶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우리 에어베드를 색색깔로 펴놓고 눕자고 했다. 말을 떼는 순간 모두가 동의할 것 같은 제안이었기에 피어나는 설렘을 마음껏 표현하였다. 그 향은 쏟아진 향수 병 안에서처럼 우리 6명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 대한 벽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말랑해진 듯 했다. 다리가 아팠는지 앞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는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다. 또다른 향이 피어났을 테지만 나 또한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원래 정방향이었던 차를 동행들 합의 없이 역방향으로 바꾸었으니 나는 역방향 자리에 대한 책임감도 조금은 느꼈던 것 같다.

HMM (왼쪽), 졸려도 앞머리는 포기 못해(오른쪽)


우리는 너무 오래 가지 않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자도 있고, 꽤 이쁜(두번째 숙소 다음으로) 숙소였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거북이 등껍질 모양으로 디자인된 건물들도 인상적이었다.


숙소의 전경. 날씨는 여전히 좋다. 우리는 날씨요정인가 보다.

저녁밥은 소고기나 닭고기 중 고르는 거였다. 맛있는건 정말 참을수 없어~

소고기와 닭고기로 된 식사에 까만 한국을 더하다.

양고기를 힘들어하던 허르헉기피자 헉이형님은 드디어 그릇은 싹싹 비웠다. 그리고 진이는 가져온 김을 펼쳐서 먹으라고 줬는데, 김을 한장 먹을때마다 오바 안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감고 씹으면 나는 집 집 식사 테이블. 눈을 뜨면 다시 몽골. 샐러드와 고기도 몽골. 근데 몽골이 더 좋았다. 나는 몽골음식이랑 정말 잘맞는다! (이러한 믿음은 허나, 후에 라면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함꼐 준 주스도 정말 맛있어서 여러 번 따라 먹었다. 숙소 분위기랑 식사의 질이랑 역시 따라가는 듯 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토마스는 입구에서 다른 한국인 여행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남는 시간에 오신 분들 같았다.

그리고 다같이 걸어가는 데 정자에서 한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강렬한 아이 컨택. 그들도 6명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에 강하게 이끌려 그쪽으로 바로 다가갔다. 뭔가 심상치않다.



나 : 안녕하세요, 저 기타들고 왔는데 이따 같이 노실래요? ᕦ( ᐛ )ᕡ
6명 : 진짜요?!! (≧∇≦)/
나 : 네. 신나죠?! ٩(˘◡˘)۶


신나면 소리질러!!!!!!!!!!!!!!!!!!!!!
٩༼๑・ิﻌ・ิ༽۶٩༼・ิﻌ・ิ๑༽۶

그들의 텐션은 어머어마했다. MBTI로 치면 모두 E일듯한 느낌. 우리처럼 차분하게 할 거 다 하면서 노는 느낌이랑은 달랐다. 이따 정자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씻으러 갔다. 그날은 내가 꿈꿔왔던 버킷 리스트가 이뤄질 듯 한 날이자, 전설의 레전드로 남을 것만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BGM : 스탠딩에그 - 여름밤에 우린 (노래와 함께 읽어주시길 추천드립니다!)



씻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우리는 아까 하기로 했던 색색깔 에어베드 펴놓기를 시작했다.


red. orange. green. blue. purple. rose.

색 조화와, 이 여행기에서 지겹도록 언급하는 날씨와, 날씨와 5박 6일 일정의 4일차 밤이라는 목요일 같은 타이밍과,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에어배드 펴는 것(펴는게 조금 어렵다!)도 도와주는 그 모습들이 하나로 맞물리면서 마치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서 신호등의 모든 불이 파란색으로 켜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이 완벽했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형님은 타임랩스를 찍어 주었다. 카메라 촬영을 켜 놓고 우리가 오고가는 긴 길이의 영상을 짧게 압축하여(빠르게 재생하여) 볼 수 있는 영상이다!


엥크도 곧 다가와서 우리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내가 편했는지 내 에어배드에 눕고는 마치 그 배드의 주인인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저무는 날의 박자에 맞춰 포토타임을 시작했다.

자유로운 엥크와 우아한 동행 누나의 걸음걸이.




그러던 와중에 누나가 챙겨온 비눗방울이 떠올랐다. 그거 또 느낌 있곘는데. 너무 좋다.

돌아가면서 우리는 동심의 마음으로 방울진 투명한 주머니들을 만들어 냈다.


나는 문득 춤이 추고 싶어졌다.

탱고나 왈츠 같은 거. 춤을 추자고 했다. 한명이 살사댄스를 배웠다고 하긴 했는데 주저했다. 아니면 포크댄스도 좋았다. 그러던 와중에 형님이 박진영의 허니를 출줄 안다고 했다. 이거이거 안볼수가 없지! 음원이 필요한데 없으니 입으로 대신한다. 도입부 뽀뽀소리부터 음악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해맑게 춤을 시작하는 형과 우리는 티없이 맑게 웃음을 짓는다.



그림자가 나를 유혹하며 춤을 춘다



자리를 잠깐 저쪽으로 옮겨 볼까. 우리 단체샷도 남기면 좋잖아. 마침 그 자세로 찍고 있는 여행객들을 만났다. 그 분들께 부탁한다. 아아 잠깐만요! 웃통을 한 번 더 벗는다. 그게 재밌다.


사진을 부탁하며 이따 기타치는 거 보러오라고 한다. 한분이 격하게 반응해 준다. 너무 좋다.

그리고 탄생한 아래와 같은 역작.


하튜 하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여백의 미 낭낭하게 내버려 두겠다. 그저 느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약속의 장소인 정자로 향했다. 그들은 아니나 다를까 환영의 표식으로 보드카 한잔씩 넘겨 주었다.

우선 우리는 서로 소개하고 게임을 하며 서로에 대해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노래들으며 무슨 노래인지 맞히기! 이들도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구나! 특히 여러 노래를 틀어주는 DJ역할을 하는 한 분은 노래 취향이 너무 내스탈이라 반가운 동창생을 만난 것 마냥 웃음과 공감을 나누었다.


내내 그러면 정신없지만, 이렇게 단체로 정신없이 노는 것도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또 그 6분은 2명씩 아는 사람이라고 하며 우리보고 누구끼리 친구인지 맞춰 보라고 했다. 가만있자, 남자 3분 여자 3분이면 한 쌍은 커플인가?!!!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커플이 아니라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부정한다면, 나는 거짓말 탐지기를 들고 온다. 껍데기를 스스로 벗게 하리라! 라고 혼자 신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커플이 아니었고 나는 바로 숙소에서 거짓말 탐지기와 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 기타를 들고 나왔다!


다시 정자로 향하는 길에 돗자리를 펴놓고 구경중인 또다른 일행을 발견했다.


"기타로 놀건데 괜찮으시면 저쪽 정자로 오시죠!"ᕦ( ᐛ )ᕡ
"공연을 하시나요?" ฅ(≈ȏ ﻌ ȏ≈)ฅ
"네 뭐 비슷한 거에요!" ٩( ᐕ)و


그들은 얌전히 물었고 나는 신나서 대답했다. 흠, 이들은 올것 같지는 않네.


그래도 이게 버스킹이다! 동아리 시절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그 경험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돌아와서 자리를 잡는다.


환호하는 여행객들.

멘트를 시작하지.



"몽골 여행에 기타를 들고 오는게 저의 버킷 리스트였어요! 저에게 있어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지만 부탁드릴 것은,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불러주세요! 그럼 갑니다!"


그리고 우리만의 콘서트를 시작했다.


인트로를 장식하는 장범준 노래 메들리.

떠있는 별 아래 애덤 리바인의 Lost Stars.

몽골 초원 한가운데에서 나를 외치다.

내리는 이슬비에 바치는 이적의 RAIN.

신청곡으로 받아 연주한 걱정말아요 그대.


아로하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까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른 투어의 가이드들, 그리고 아까 "공연하시는 거에요?" 물어보던 여행객 3분. 나머지 3분은 그냥 두고 나왔다고 했다. 어찌 됐건 환영!



다들 노래를 따라 불러준다. 한두명씩 노래를 신청한다. 그리고 신청곡을 받는다. 오래된 케이팝과 팝송.



까만 어둠속에서 빛나는 하이얀 별들 아래 벌어진

나의 세계와 우주가 기운을 담아 바라고 원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한 결과로 벌어지고 있는

낭만의 축제였다.


선명하고, 영화로운,

우리는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꿈을 '이룬다' 는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몽골의 여름날의 축제는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몽골 여행 중 고대하고 갈망하였던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정자에서의 신선 놀음이 마무리되고 나는 조금 더 놀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의 게르 방으로 들어가서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 사이에 기타를 치며 바닥에 주저앉아 마저 분위기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나를, 그들이 불러들였다.


들어가니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다른 새로움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까 DJ 역할을 해 준 한 친구는 사업가였다. 가게를 곧 오픈한다고 했다.

굉장히 예의바르고 깍듯하고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해주었다. 기억나는 건 '학창시절에 인기 많았어요?'하는 질문. 너무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 친구는 대기업의 인턴이 끝나고 전환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쪽 동행을 모은 친구였다. 동행이 중간에 빠져나가서 고생을 많이 했더라. 결론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랑 함께 와서 좋다고 했다. 역시 리더의 자리는 어렵다. 내가 운이 좋았어!


한 분은 제주도에서 일을 하는 분이었다! 인스타에 몽골갈사람을 스토리로 모집하자, DJ를 해준 사업가 친구가 반응을 해주어서 함께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얘기를 나눠 보니 진짜 친구 케미인 것 같았다. 그래도 서로 인생에 다시 없을 여행을 함께하게 된 건 따뜻한 인연임이 분명해 보였다.


나머지 두 분은 함께 온 친구분이셨는데, 내 말을 조용히 들어주셨다. 한 분이 나를 차분하고 순수하다고 해 주셨 던 것 같다. 차분함은 나만의 개성임을 재인지시켜주는 그 말에 감사한다. 근데 순수한건 아니다. 어찌 됐건 긍정적인 어조라서 고마웠다.


우리 동행과 달리 나이대가 조금 더 어리신 분들이라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딱 사회초년생이 겪을 고민들과, 시작하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리 사는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다양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면 너무도 닮아 있다. 그들에 대한 마음은 곧 나에 대한 마음이 되는 것을, 어찌 진심을 담아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대화들.

여행은 새로움이고 꼭 비행기타고 멀리 떠나야지만 여행이 아니라는 말.

아까 나를 외치다를 들으며 감정이입하며 울컥했다는 말.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며 보드카를 마시며 무르익는 그 새벽이, 나의 5명의 동행들만 모르는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다. 자러 간다는 내 말에, 얼마 안되는 거리를 데려다 주며 내일 보자는 그들의 따뜻함에 이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



오해하지 말라. 한분은 내가 잡아먹은 거 아니고 자고 있는 거니까.(+ 뽀글이 감성의 오렌지맛 보드카)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였다.


별을 따로 구경한다는 다른 동행들도 들어간지 오래인 듯 했다.



별이 더더욱 잘 보이는 새벽 하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일은 우리 투어의 마지막 밤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생각이

막바지로 치닫는

여행의 아쉬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새벽 별 아래 아주 잠시
아프도록 올려다본 하늘에
나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라는 찰나의 순간을 살고 있었나 보다.



반의 반도 담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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