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다시 돌아와 우리는 다시 나갈 채비를 하였다. 대망의 고비 사막의 시작점이자, 노래하는 사막 "홍고린엘스"로 향하기 위해서다. 우리 여행이 하나의 연극이라고 한다면, 발단-전개-절정-하강-대단원 중 절정을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왜 굳이 매달려 있었냐 하면, 차차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출발 전 낮잠을 끝낸, 몽골을 온몸과 온맘으로 즐기는 한 여행객의 까꿍 + 줄어들어 가는 물!
가이드 엥크는 백팩 하나를 준비하면 좋을 것이라며, 그곳에 물을 많이 넣어가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물이야 뭐 조금 참으면 되겠지 하고 말을 흘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시던 물도 함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맥주! 한 두캔 정도 가져가서 정상에서 한잔 뙇 마실 제안을 한 긍졍누나에게 이 순간을 빌어 다시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푸르공에 올랐다. 나는 역방향 자리에 앉아 여기 저기 떨어지는 테이블(차 안에 테이블이 하나 있다)위의 소지품들을 바닥에 자유롭게 구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따가 줍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웬걸, 나중에 줍기로 한 핸드폰이 안보이네? 어디 빠질 구멍도 없는데 샅샅이 뒤져도 없다. 내려서 찾아야지 하는데 없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 난 핸드폰을 애초에 두고 왔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떨어져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마저도 의심. 어디 갔을까. 유심 없는 핸드폰이라지만 아직 사진도 찍어야 하고, 약정도 남아있는 소중한 휴대폰인데!
일단은 멀지 않은 곳에 고비 사막이 있었기에, 찾기를 보류하고 내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사. 막.
그냥 뭐, 가볍게 올라가면 되겠지. 저기 꼭대기까지 찍을 필요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가이드를 따라 걸었고, 이윽고 우리는 4개의 하강을 위한 썰매들을 받았다. 우리 챙겨주려고 미리 경쟁률 쎈 썰매를 4개씩이나 챙겨준 엥크의 정성이다.
그리고 등산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안내하는 사람이나 표지판? 케이블카나 계단? 그런거 없었다. 그냥 모래를 밟고 기울어짐이 시작되는 그곳이 사막 언덕의 초입이었고 고비 사막의 정수였다.
우리는 신남이 아직 부유하고 있었기에, 동행 누나 중 한명이 시합을 하자며 자극했다. 우매하게도 유치한 대결에 응하는 것이 여행을 더 와닿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모래 언덕을 달리기 시작헀다. 봐라, 나는 살아있다!
근데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아직 10% 도 안온것 같은데. 나 참을성 꽤 있는 사람이지만, 물 8통쯤 짊어진 가이드 엥크를 기다린다. 이상하다. 벌써 이렇게 목이 마를리가 없는데. 그래도 아직 웃음.
아직은 그래도!
경사가 조금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끌고 있던 썰매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마술이 시작되었다. 나는 앞에서 3번째로 헉이형과 토마스를 따라갔다. 격차는 말없이 점점 벌어졌고 나는 참기 힘든 갈증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힘들 때 가끔은 꽃이 돼. 까끙2
올라가며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평소에 물을 자주 마시고 또 필요로 하는 나라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모래구덩이는 나에게 자꾸만 속임수를 던졌다. 한 걸음을 내딛으면 다시 반 걸음을 내려가는 두 번째 마술! 경사는 점점 더 급해지는데, 굴러떨어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까지 합세하여 이건 뭐 자신과의 싸움 스페셜이구나 싶었다. 그래, 어서 와라. 안 그래도 조금 늦게 찾아오나 싶었다.
나는 스스로만의 규칙을 정했다. 20걸음을 걷고 그 자리에서 휴식, 그리고 반복. 사실 뒤돌아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또 오르면 되는데, 겁 많은 나는 뭔가 자꾸만 4족으로 엎드려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로 멈춘 후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동행 형은 사족보행으로 가장 수월하게 정상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행렬의 2번째인 토마스는 알록달록 썰매를 마치 등산 지팡이처럼 찍으며, 발은 최대한 깊게 넣으며 갔더니 그나마 나았다고 하더라.
어쨌든 간에, 그 순간에 스스로 나만의 위기를 경험했던 건 분명했다. 갈증과 겁의 혼종. 가이드 엥크는 한참 뒤쳐져서 더이상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이 백팩까지 메는 걸 자처했건만, 오히려 내가 멜 걸 그랬다! 저 멀리 멀어져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었지 뭐야.
하지만 홍고린엘스 초입의 높이는 300m. 자꾸만 나를 배신하는 모래의 특성상, 600m 정도로 체감되었지만 그래도 20대 남성의 자존심은 나를 정상으로 집어당겼다(더욱 엄밀하자면 옷소매부터 당겨서, 옷이 늘어날까 염려하며 간신히 따라갔다고 할 수 있겠다). 물만 충분했다면 솔직히 괜찮았을 거다. 살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찾고 부족함이 없었던 물. 의식주의 식 중에서도, 3일만 마시지 않아도 목숨을 잃는다는 그 물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본능적이고도 당연한 것이 충족되지 않는 이 여행, 지나고 보면 이것마저도 참 유니크해.
먼저 올라온 둘이 나를 환영했고, 그 뒤를 차례로 진이, Rain누나, 긍졍누나가 뒤따랐다. 중간에 포기할 것 같기도 했는데 모두 다 올라왔다. 밤에 너무 무리하지 않고 잠들었던 점, 그리고 정상으로 오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점 이 두가지가 6명 모두 능선을 밟게 된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중에 다른 투어 팀 이야기도 들어보니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포기한 동행들도 참 많았더라.
덧붙여, 4등으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잇몸튼튼마음튼튼 진이. 청춘을 불사르자며 정상에서 군대 조교 훈련을 시키는 동생의 남아있는 광기에 순응하며, 전방에 힘찬 함성을 '으아!' 하고 내지른 동갑 내기 친구의 생각할 여유를 포기한 모습은 웃기면서도, 짠하면서도 대견하였다. 네발로 기어도 괜찮아, 누가 너를 보고 웃을 수 있겠니.
낙오자 없음 이상 무! 아주 칭찬해 :)
잘 나와서 단독샷 한 컷(왼쪽). 웃음을 잃지 않는 긍졍누나의 모습(가운데)과 안힘든척 하는 동행들(오른쪽).
그리고 바라본 반대쪽 풍경은 놀라웠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실감이 안나는 모습. 실물을 보고 사진 같다는 건 그리 감흥 없는 말이지만, 그림 같다는 건 칭찬이다. 이질적인 속성의 아름다움, 그것이 우리가 감동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사진을 찍고 말이 없던 나는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썰매를 얼른 타보고싶기도 했고, 저어기 밑에서 헥헥거리는 가이드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 사실은 그의 백팩에 있는 물을 마시고 싶었다.
타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무슨 경운기 타는 속도로 모래를 헤치고 내려가 가이드 엥크를 마주했다. 왜 못올라오냐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따지자, 그의 고백은 이러했다.
아까 친구들 만나고 올때 맥주를 마셨는데, 그게 화근이었다고. 그걸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그래, 귀엽고 인간적이니까 봐준다.
그러고는 홍고린엘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바닥에 귀를 대보라고 했다. 그러니 웅우웅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여기 바닥엔 물이 지나간다고 했나? 어쩄든 그 소리가 마치 노래하는 듯 하여 '노래하는 사막'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했다.
노래하는 사막, 홍고린엘스. 하지만 나는 너무 목이 말랐다. 저 멀리서 지기 시작하는 태양을 보았다. 그 태양이 마치 흔하게 느껴지던 쨍한 빛이 아닌, 무언가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맞다, 내 목구멍이다.
요약하자면 타오르는 석양의 목마름, 노래하는 사막!
몽골의 절정은 그렇게 붉은 빛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다른 동행 5명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중턱에서 생각을 해보니, 저들은 석양이 제대로 질 때 까지 기다릴 작정이구나 생각했다. 더불어 그들이 목마를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는 문득 다시 올라가고 싶어졌다. 엥크에게 가방을 전해 달라고 하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가방을 메고 다시 사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래더미는 경사가 아무리 급해도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난 후 겁이 사라지고,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목덜미도 촉촉하게 적시니 이제는 다시 오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르는 도중에 물이 없는 한국인 여행객이 너무 딱하여 먹다 남은 물을 나누어 주게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서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종종 영화에서 나오는 데,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나도 겪을 일이겠지?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행이 물이 가방에 꽤 남아있었다.
정상에 다시 오르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듯 했다. 나는 동행 5명 뒤에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들이 나를 발견할 때 까지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 둘 바라보며 휘둥그레 나에게 외치는 즐거운 고함.
그래, 이거지! >0<
그리고는 패션 쇼가 시작되었다. 맥주 한 모금에 썰매 판자. 자연앞에 웃통을 벗고 우리는 어깨 동무를 했다. 부끄럼은 사치였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더욱 만들 에너지를 마른 하늘 아래 조금은 쥐어 짜냈다.
우리는 반대편 언덕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왜냐, 지금 있는 스팟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사람이 없는 우리만의 세상에서 가장 목마른 유토피아임을 직감하고 반대편 언덕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다양한 인종의 다른 여행객들을 마주했다. 정상에서는 통로가 두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였기에, 좋든 싫든 '스치는 인연'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유쾌하게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모래 묻은 손이라 주먹을 건넬까 싶었는데 그냥 시원하게 손바닥으로 마주쳤다! 그리고는 따봉을 날린다.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영어로 말을 건네지 않아도 무슨 말 하고싶은지 서로가 안다. 그게 또 하나의 여행의 묘미라고 강조하고 싶다. 서로 지나가며 이상한 사람처럼 끼룩끼룩 거려도 된다. 다시 한 번, 미쳐도 되니까 미친다. 그래도 된다. 여행이니까. 여행이니까.
그리고 이동한 반대편의 언덕에서 우리는 7명만의 시간을 가지었다. 다시 안올라왔으면 어쩔 뻔했냐. 너무도 완벽하도록 바람직했고 석양의 타오름은 마치 캠프파이어 불꽃의 타오름으로 바뀐 것만 같았다. 함께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추위를 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모일 명분을 만들어주는 상징적인 요소가 담긴 그 캠프파이어의 불꽃 말이다. 멀리 비추는 석양이 우리를 위해서 빛나고 있는 것만 같은 과도한 상상도 해보았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맥주광고 말투로 읽기 요망)
12개의 손가락으로 하나 된 기분
그 와중에 하나 실수가 있었다. 아마 본인이 그런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많은 곳에서 모래썰매 판자를 챙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 거 하나를 더 들고 와 버린 거다. 나는 몰랐다, 내것만 들고 온줄 알있는데, 우리는 4개였던 썰매가 5개가 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다시 되돌려주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뭐 어차피 아래로 내려가면 다 반납하게 되어있긴 하지만, 혹시나 이글을 보실, 썰매를 약탈당한 그 분께, 여행에 있어 드라마틱한 순간을 뺴앗아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대자연 앞에 미니멀한 옷차림으로 마지막 정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썰매를 이번에 제대로 타기로 했다.
몸을 뒤쪽으로 젖히고, 중심을 잡고, 엥크나 나를 밀어준다.
출발!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면서도 중심 잡기가 어려워서 금방 나뒹굴었다. 하지만 모래라 전혀 아프지 않았고, 몸은 모래로 뒤덮이여 갔다. 아, 올라갈때보다 내려갈때 모래를 온몸에 칠하게 되는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썰매가 5개라 동행 누나 2명은 함께 탔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제일 속도가 빨랐다고 했다. 나도 같이 탈걸 그랬다!
중간에 자리를 옮기고, 다시 썰매를 타고, 모래로 샤워하기를 반복하다 문득 주변을 느껴 보니 하늘은 보랏빛으로 바뀌어 갔다.
저물어 가는 사막의 밤과 누워있는 나.
몸을 뒤로 한껏 젖히고 노래하는 사막의 2절 후렴 쯤을 지나 마지막 피날레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