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몽골 여행에서 여행지 한 곳 한 곳을 마음에 두고 왔기보다는, 그 대자연 속에 흐름을 맡기는 물아일체를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특정한 스팟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오후 일정으로 가는 커다란 협곡 '욜린암'. 초입부터 범상치 않은 그 분위기가 우리의 감상을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가뜩이나 색다른 이 여행에서 색다른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던 듯 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듣기보다 부르자는, 동화된 누나의 멘트에 서로를 보는 장막에 한 꺼풀이 더 벗겨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외쳤다.
뭐야? 뭐야? 뭔데 이렇게 웅.장.해?
도착한 욜린암의 전경(투어기사님 특별출연).
날씨가 너무 좋다. 좋다고 말해도 넘칠 만큼 좋다. 내가 지겹게 많이 쓰는거 알고 있다. 근데 진짜로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걸 어찌할쏘냐. 이 강력한 표현의 의지를 꺾어서야 되겠나.
우리는 잠시 기다리면서 막간을 이용해 따사로운 햇빛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여행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컨셉을 잡았다. 바로 몽골에 한탕하러온 도적! 두건을 머리에만 써주면 난 변신한다. 그리고 해외파 Rain 누나는 도적소굴에 납치되었다 탈출하는 공주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와 스카프를 온몸에 두르지만 너무도 느낌있고 맵시있게 눈에 띈다. 그리고 헉이형과 진이는 시골에 귀하다는 귀농한 젊은 부부. 긍졍누나는 코디를 해주며 나의 머리에 씌여진 두건을 질끈 묶어준다. 욜린암을 역으로 두근두근하게 만들 준비 완료!
다양한 모습으로 모인 신기한 사람들과 도망갈 말과 교감하는 공주님, 그리고 몽골의 마소년들
자, 이제 한탕하러 가볼까!
말들에 안착하고 둘씩 짝을 지어 유랑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걱정 마시오, 내 곧 돌아오리니.
말을 탈 때는 중학교 2학년쯤 되어보이는 몽골 현지 소년들이 인솔을 도와주었다. 물론 가이드 엥크도 함께! 듣기로는 이곳에서 자라는 몽골 아이들은 말과 함께 크고, 말타기 대회도 참여하고, 어릴때부터 말과 함께 살아간다고 하더라. 어찌보면 자연으로부터 점철된 운명. 그 중에서도 말과 함께하는 그런 삶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 하며 생각해 보게 된 순간도 있었다.
고요했다. 너무도 평화로웠다. 저 멀리 보이는 협곡 사이로 비치는 무지갯빛 불빛이 우리를 더 깊고 비밀스러운 곳으로 인도하는 듯 했다.
어느 정도 지나왔을까. 말에서 내리고 우리는 걸어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인솔해주었던 소년들과 말들은 그 곳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 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자연 앞에 인간은 나약하고 겸손하진다는 진부한 말이 재인식되는 순간이었다. 볕이 비추는, 사람들이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저기를 나는 저기를 타고 넘어갈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도) 실천하진 못했다. 대신 눈내리는 날 비료푸대 하나 타고 내려오면 느낌 있을 것 같았다. 엉덩이는 새파래져 남아나지는 않겠지만!
나는 문득 뭔가에 홀린듯이 일행 무리에서 벗어났다. 앞으로 전진 전진하며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지점까지 이르게 되었다. 본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행동을 저지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 같다. 왜 그럴때 있지 않은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괜찮을 것 같은 혼자만의 개인 행동을 불가항력적으로 행할 때. 그 순간이 찾아온 거다.
일행들을 뒤에 두고 나는 자꾸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말소리가 사라지고 새와 독수리, 바람소리와 하늘만이 나를 다시 반길 때 나는 고양감과 해방감에 주체하기 힘든 감정을 살려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거의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이다지도 무해한 아름다움이라니. 내가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기에 감사한 순간이다.
곧이어 뒤에 일행들이 찾아왔다. 가이드 엥크가 왕이여 어디가셨습니까! 백성들이 걱정했습니다! 하며 나를 또 띄워준다.
잠깐 혼자 있고 싶었구나. 미안하구나(웃음).
곧이어 한 친구가 눕는다. 나도 눕는다. '욜린암'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골목 골목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히 지속될 평안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오감과 육감으로 느끼는 욜린암의 기운과 말 응가 피날레.
어휘력이 더 뛰어났다면 더 수려하게 형용하였을 그 순간이 몽골 여행 중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대로 해가 져가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몽골은 해가 매우 늦게 진다. 정리하자면, 노을 색 없이 우리를 출발했던 지점으로 인도하는 해가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데 웬걸, 느낌이 다시 다르다. 능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로 왠지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쳐야 할 것 같다. 잠깐 기다리라고.
눈을 감는다. 바람 소리.
휙휙 부는 바람이 아닌, 정말 사소하지만 솔솔 부는
그 바람 소리와 감각에 집중하여 본다. 푸르른 볕에 놓인 풀과 구름이 달아나버린 날씨.
행복하다는 감정을 넘어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내가 분간할 수 있는 감정과 언어로 표현하자면 천국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천국은 너무 좋아서 천국인 것도 있지만, 생을 마감할 시절에 가기를 바라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죽기 전에 눈을 감는다면, 그리고 꿈을 꾼다면 펼쳐질 파노라마같은 풍경이 이럴 것이고, 이러길 바라고, 이러지 않을 리 없다는, 인생에 몇 없었던 강한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