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세면도구를 꽤나 잃어버린 관계로 사실 여행을 더 하고싶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마무리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훨씬 강했다. 근데 또 지금이 고통스럽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한 건 아니고. 후후.
가이드 엥크는 일어나자마자 푸르공에 우리를 싣고 어제 못갔던 곳에 데려갔다.
시력 좋아지는 물이 나오는 곳!
간단하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들르는 곳인것 같았다.
근데 갔더니 커다란 개 한마리가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냥 사람이 좋다고 날뛰고 하는 걸 넘어서, 진짜 환영을 해주면서 산책길을 에스코트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덩치 큰 개!
배를 보이며 드러누우며 "어서 날 귀여워해 줘!" 라고 대놓고 교태를 부리니 넘어가 줄 수 밖에.
나를 귀여워해라~
같이 가즈아아아앙~
같이 뛰면 같이 뛰고, 잠시 멈추면 드러눕는, 지나간 여행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는 그 검정 털의 친구는 이 여행지에서의 너무도 특별한 기억 중 하나다.
강아지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어떻게 친해지는 지 모르는 나는, 먼저 다가와주는 그 박력에 함께 넓은 풀밭을 함께 뛰놀았다. 더 신난 그놈은 나의 몸에 가벼운 몸통박치기(?) 까지 하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놈 참 이쁘네.
뭐가 꽃이게?
그곳에 있는 시력좋아지는 물이 흐르는 곳에 갔더니 웬걸, 물은 흐르고있지 않았다.
우리는 엥크에게 뭐에요~ 하면 장난기 어린 핀잔을 건넨다.
그 대신 자연스레 시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몽골인의 시력이 좋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엥크의 시력도 궁금해져서 물었다.
"엥크도 시력 엄청 좋겠네요!"
아니 저 라식했어요 ><
엥크는 예전에 한국 생활하면서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고 했다. 우리는 반가운 황당함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몽골인의 라식수술이라니! 폭소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는 도시를 마주하겠지.
한참을 달리니 포장도로가 다시 시작되었다.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때 보았던 포장도로!
한참을 달렸을까,
갑자기 기사님이 차를 세웠다.
우리가 어린 시절 만화에서 보던, 차 앞쪽 보네트를 열고는 직접 부품을 만지기 시작하신 거다.
우리는 엥크에게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차가 고장났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제야 고장난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멈춰있던 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막에서 돌아오는 길이나, 8시간 이동할때 고장나지 않았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첫번째,
그리고 기대했던 한번쯤의 푸르공의 고장이 정말 신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두번째였다.
그리고 세번째는 동행 친구가 마지막으로 하고싶다던 "도로 위에서 사진찍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부른 쾌재였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춤이나 춰버려!
그리고, 다시 눕자.
도로 위에서 눕는 것이 왜 더 짜릿한 일인가 하면, 평소에는 하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기를 깨부술 때의 쾌감, 규칙에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의, 마치 학교 점심시간에 몰래 뛰쳐나와 불량식품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듯한 뿌듯함. 선생님 말을 안들으며 잘나가는 학생이라는 착각에 빠진 삐둘어진 중학생 같은 그 마음으로, 사회적인 규칙의 상대성을 잠시 이용하여 자유를 맛보는 거다. 어찌보면 유치한 거 맞다. 근데 말했잖은가, 유치함과 재미는 어느 정도는 비례한다고.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라붐"영화의 여주인공 소피 마르소의 얼굴과 함께 흘러나오는 Reality의 BGM을 머릿속으로 연주하며 준비한 헤드셋 3개를 꼈다.
우리는 무거운 문명의 이기를 머리에 제법 가볍게 짊어지고 다시 하나였다.
작품명 : 3 idiots.
기사님은 지나가는 푸르공마다 멈춰세우며 도움을 요청했다. 개중에는 한국인 여행객들도 있었다. 원래 이렇게 서로서로 도와주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수리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의 여행을 위해 일부러 고장낸 건 아닐까 하고 착각이 들 정도로, 여행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중간에 식당에서 급하게 점심을 먹고, 대미를 장식할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도착하니 확실히 광고 입간판들과 잘 갖춰진 도로가 즐비했다. 우리는 피자헛 광고를 보며 몽골 피자는 양고기 토핑이 기본이겠지? 하며 양고기를 못먹는 동행들을 놀려 댔다.
날씨는 항상 좋아
몽골 수도의 초입에서 미리 예약한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데에는 꽤나 복잡한 교통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에 애초에 없기에, 좁은 길에 차를 세우는 데 까지는 더운 날씨처럼 약간은 답답한 과정이었다. 마지막에 기사님이랑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빠이빠이했는데 그게 참 아쉽다. 여기서 다시 외친다, 매우매우 감사했어요~ 덕분에 참 안전하고 즐거웠답니다.
우리는 짐을 게스트하우스에 풀고 시내 관광을 준비하고 나왔다.
몽골 시내의 전경. 솔직히 그렇게 특색있거나 한 느낌은 아니었다!
미니 선풍기를 들고 나와 잇템이라며 까르르 웃는 누나들앞에서, 나는 그 아이템은 준비성과 참을성을 맞바꾼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라며 다시 놀려주었다.
그리고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해야 했기에 우선 관련 기관으로 가서 검사 확인서를 받기로 했다.
엥크는 택시를 잡고 남자 3명을 먼저 보내었다. 택시기사님께 자세한 설명을 해준 후, 도착한 곳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우리는 탔다.
근데 가면서 이야기하기를,
우리 셋은 다 유심 없는데 어떻게 연락하지?
그동안 넓디 넓은 풀밭에서 터지지 않던 유심이 이제는 도시 속에서 쓸모있게 되었는데, 신경써본적이 없던 나머지 오판을 내려버린 거다. 우리는 여성 3명은 유심을 해왔고, 남성 3명은 유심을 해오지 않았다!
그래도 뭐, 내린곳에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 하며 도착해서 편의점도 들르고 몽골시내의 분위기를 느꼈다.
내린 곳의 풍경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림이 커질수록 불안감도 커졌다. 근데 쪼금 커지다 말았다.
어찌해야 하나는 생각보다는 일단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비정상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아직 여행의 자유를 굳이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그곳은 나에게 드넓은 초원이랑 비슷한 입장이었다. 장소가 주는 감상은 둘째 치고, 내가 자유로운 상태라는 건 변함이 없었던 거다.
그동안 다운로드 받은 것 중, '여름과 어울리는 아이돌 음악'을 틀었다. 도시답게 세련된 걸로 가자!
신이 인간을 만들때를 가정한다면, 여러 가지 능력들을 배분했을 거다. 사람마다 높은 값을 가진 능력, 낮은 값을 가진 능력이 있을진대, 나에게 있어 춤이란 최하의 능력치로 정의된 것이었다.
그래서 춤을 못춘다. 근데 그냥 추는거다.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꽤나 무관심하다. 도시 사람들은 역시 여유가 없구나. 헤헤.
그러다 그들 세 명이 우리를 찾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더 지났기 때문이다. 이건 택시를 못잡아서 기다리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형이 먼저 주변을 살폈다. 한국음식점에 도움을 요청하자고 하더라!
코너를 돌아 한국음식점으로 갔다. 거기는 운좋게도 와이파이가 있었다.
켜고 보이스톡을 건다!
우리의 위치를 설명하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또 움직이면 다시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통화 품질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여자 쪽에선 계속 "어딨어?!" 를 외치고 나는 가게 설명을 해댔지만 확실하게 장소를 선정해야 하니 쉽지 않았다. 여러 혼선을 빚다 "버거킹 건너편 한국음식점이야!" 를 외치고는 알았다며 이쪽으로 오겠다는 엥크와 세 소녀들.
이윽고 우리는 만났다. 멀리서 보이는 서로를 보며 달려와 손을 깍지로 잡고 흔들었다.
마치 종영한 TV프로 중 무한도전의 "텔레파시 특집" 처럼 우린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사실 솔직히 말하면 여성 3인방이 쬐금 더 반가워했던 것 같다).
그냥 보이스톡 걸지말고 텔레파시를 보냈어도 됐는데!
무덤덤한 남성 3인과 불안에 떨었던 여성 3인의 대비는 후자의 분노를 자아냈다! 평온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떻게든 다시 만나~"하는 나무늘보와 같은 마음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다년간의 여행으로부터 온 바이브다. 그들은 해외여행이 처음인 사람도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나보다. 그리고 나중에 춤춘 썰을 풀어주니 2차 분노에 우리는 꽤나 큰 재미를 직관할 수 있었다.
어찌 됐건 이제 광장도 구경하고 백화점도 가고 해야지!
지나가다가 수련회를 가는 듯한 학생 무리들을 만났는데, 나랑 옷색깔이 너무 비슷해서 옆에 동행인척 따라가 봤다. 수줍음 반 황당함 반으로 웃는 여고생들. 나는 "안녕" 인사를 건넨다. 그들도 "안녕"해준다.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반대방향이라 바로 빠이빠이했다. 이 장면이 웃긴걸로 치면 진짜 제일 웃긴 순간인데 카메라로 담지 못해 아쉬울 뿐.
그리고 도착한 '수흐바타르 광장'! 우리 서울로 치면 시청앞 광장쯤 되겠다. 사진 한 장 찍어주자!
다들 막바지 여행인데도 멋지고 이쁘다!
몽골의 문화가 묻어있는 도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그만큼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의미가 담긴 건물이 있고 하는 것은 잘 모르니 생략(여행스타일이 애초에 그렇지가 않아서 몽골을 좋아한 것도 있다!).
그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거기사 동행들은 보드카나 초콜릿, 티백 같은 것들을 살 작정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살건데, 그래도 뭐 하나는 사갈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백화점 가는 길과 도착!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면서 아이 쇼핑을 했다. 캐시미어, 전통의상, 초콜릿, 게르나 낙타를 표현한 기념품들, 사진들, 마그넷과 팔찌들.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많은 것들이 즐비했어서, 그리고 이게 투어에 포함되어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한 가디건. 수많은 옷들 중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건 그동안 내스타일의 옷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입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비싸서 사진 않았다. 주변 동행들은 찰떡이라며 웃었다. 그러게, 나도 진짜 갖고싶은 디자인이야. 이거 비슷한 옷 보신 분 이 계정으로 정보를 담아 메일 좀 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까페 가서 음료도 마시고, 마트에 가서 한국에 있는 직장 동료나 가족들 줄 보드카도 마저 사고.
그리고 투어 일정상으로 정말 마지막인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웃백같은 고급음식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양고기 샤브샤브집' 을 표방하는 이 음식점은 기대감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동안 로컬 음식보다 더 대중적인 맛이겠지 하고 상상하기도 하면서.
돌리는 테이블과 육수와 채소와 볶음밥과 고기와 맛좋은 쏘쓰!
음식들은 전부 양고기였다! 그때 깨달은 것 같다, 여기는 우리가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듯 양고기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말 사실이구나!
나는 몽골을 또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양고기랑 너무 잘맞아~
지쳐서 한마디 말 없는 헉이형, 몰래 따놓은 캔맥주를 마시는 긍졍누나, 그리고 맥주 한잔 시킨 엥크.
그 속에서 우리는 이따가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지? 이야기하며, 보드카를 뭘 먹을지 고민하며, 익은 채소와 고기들을 맛 좋은 특제 소스에 찍어 먹었다. 확실히 레스토랑은 달랐다! 로컬과는 다른 깔끔한 맛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곳이 이 투어사의 관행적인 마지막 코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편의점에서, 문득 난 수염이 신기해 한 컷.
우리는 엥크와 다음 날 공항으로 데려다 달라고 추가 비용과 함께 따로 요청했다. 내일 만나기로 하고, 숙소에 들어와 씻고, 마지막 대망의 밤을 보낼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나는 사실, 여행하는동안 와이파이조차 켜고 싶지 않았다. 오기같은 것은 아니고, 여행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옴과 동시에 연락도 확인할 셈이었다. 근데 이미 아까 보이스톡을 해버렸지 않은가! 그래서 와이파이를 켜고 친구들에게 잠시 몽골 여행의 아름다움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여행사로부터 온 연락도 이틀만에 답장을 했다. 그들은 연락이 없어 걱정했다고, 울란바토르에 잘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역시 내맘대로 연락 끊기는 어려운 일이야~
우리는 캐치마인드같은 그림보고 단어맞히기 게임도 하고, 거짓말 탐지기도 다시 꺼내어 서로의 속마음에 대한 질문도 했다. 그 중에 아까 길잃었을때 열받았다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 튼튼 진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미안해. 근데 돌발상황이 너무 없었다 이번 여행. 오히려 난 좋았어~
사실 울란바토르의 클럽에 가고싶기도 했어서, 누나랑 같이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근데 놀다보니 시간도 너무 늦었고 피로가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생으로 마신 보드카 "칭기스칸"은 연약해진 나를 무너뜨릴 결정적인 힘이었다. 정리하자면 나에게 쏟아지는 잠은 불가항력이었다.
안돼, 안돼, 난 자기싫어!
옆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그들과 놀고싶은 마음을 피력했지만 난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그때가 새벽 4시였다.
나는 한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시 놀고있는 그들에게 갔다!
다시 좀비모드로 일어난 나는 잘거냐고 물었고, 진이와 긍졍누나와 토마스는 이미 마무리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8월 15일에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안된다며 지금 놀자며 떼를 썼지만, 밤을 셀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쯤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몽골.
내일이면 이제 이 나라를 뜨게 되었구나.
몽골은 차가 고장나도, 길을 잃었어도 그저 몽골이었다.
자연스러움!
몽골이라는 나라의 매력을 한마디로 이렇게 다시 꺼내어 표현하고 싶다. 이 단어 안에 포함된 여러 가지 의미를 이번 여행기를 통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밤은 그다지 풍부하진 않은 감상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아마 점점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고, 자주 보던 도시의 건물들이 나타나서일 거다.
침대로 몸을 던지며 무슨 생각조차 할 겨를 없이 잠들었지만, 이 생각만은 하나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