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정말 힘없이 출발한 건 아마도 당연한 운명이었을 거다. 2시간의 선잠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가고 있었다. 그리고 별개로 미열이 나는 듯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 약속을 지켰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나와 엥크의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 그 사이에 그 누구도 입도 뻥긋 않고 차안에서 잠에 빠져든것 또한 필연으로 점철된 결과였으리라.
우리는 차가 밀리는 것을 고려하여 넉넉잡아 3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으나, 막상 차가 밀리지 않아 1시간만에 공항에 도착해버렸다. 다들 잠에서 깨어나, 내면적 고통의 몸부림에 시달리는 듯 했다. 나는 나빠진 컨디션에 자지 않았다면 멀미를 했을 것이다.
어쨌 '칭기츠칸 국제공항' 도착!
우리는 마지막으로 문득 생각이 나 엥크에게 물었다. "그때 퀴즈낸 거 정답이 뭐에요?!"
엥크는 여행기간 동안 두 가지 퀴즈를 냈는데, 첫 번째 퀴즈는 시상식을 마치고, 두 번째 퀴즈에 대한 상품을 걸고 답을 아무도 못맞힌 상태였다.
문제는 "여름되면 풀이 많이 자라서 무성한 풀을 먹고 소가 뚱뚱해지는데, 이런 소를 뭐라고 부를까요~?" 와 같은 넌센스 감성의 문제였고, 우리는 수많은 잽을 날렸지만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맞추지 못해 막바지에 물어본 것이다.
엥크는 뭐라뭐라 얼버무리더니 대답하지 못했다. 문제를 내놓고 정답을 고민했나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하나 더내야징~" 하고 일단 던졌나 보다. 뭔가 우리가 그동안 봐온 엥크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어쩄든 결론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 순간, 왠지 저걸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갑자기 '잠깐만! 동행도 모집하고 고생한 제성이한테 주자. 제성이가 없었다면 이 여행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야. ' 이렇게 멋있게 말하고는 나에게 수여되는 그런 상상. 내가 다른 동행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고 그러면 그림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았다.
동시에 든 생각은, 역시 나는 변태다. 아, 여기서 변태라는 말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박찬욱 감독의 별명 "배운 변태" 와 비슷한 뉘앙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어찌 내입으로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자기 PR시대라지만 아름답진 않다. 가위바위보에 응한다. 근데 웬걸, 내가 다 이겨버렸다! 나의 혼자만의 상상이 결과적으로(만) 현실이 된거다.
엥크는 나에게 연두색 공룡인형을 주었다. 불타는 절벽 "바얀작" 에서 구한 봉인된 스테고사우루스 인 것 같다. 그리고 엥크와 껴안고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인간적이었고, 순수했고, 사소한 풍경거리도 설명해주고 얘기해주려고 하고, 과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진도 찍어주고, 우리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정성을 다해준 엥크에게 너무 고마웠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푹 퍼진 우리. 귀찮은 코로나 입국 QR코드를 작성하며, 너무 일찍왔는데 뭐하지 생각했다.
그러고는 바로 '뭐하긴, 밥먹어야지' 라고 고민을 마쳤다.
현지식에 지칠대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공항 햄버거집' 버거킹으로 향했다.
몽골이라는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쓴 영어. 우리는 하나하나 주문을 넣고, 난 점원에게 "can I check the list?" 를 외쳤다.
햄버거를 먹으며 조금 살아난 우리는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Rain누나의 네덜란드 여행, 그곳에서의 마리화나 냄새와 홍등가 얘기를 들으며 조금은 공감한 이야기. 우리 다음 여행지로 어디갈까 하는 신나는 얘기들. 서로 얘기를 나누며 막바지 갬성으로 깔깔댔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에서 내가 좀 더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한명도 기가 쎄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절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누가 뭐 하자고 하면 거의 다 좋다고 하는 그 분위기가 이번 여행을 더 의미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전날에 내가 시도한 마지막 제안은 한번 거절당했으니, 그건 바로 롤링페이퍼!
손발이 오그리 토그리한 것에 너무도 강한 내가 지난 밤 롤링페이퍼를 제안했을 때, Rain 누나는 몸서리치며 그거 안하면 안돼? 라고 외쳤더랬다. 난 마지막 남은 햄버거 한 입을 입 속에 우물우물 우겨넣고 다시 외친다.
나 소원이 있어.
뭔데?
롤링페이퍼 하자. 헤헤
하루에 걸친 두번째 시도에 다들 빵터져서 까페로 자리를 옮겼다. 게임을 위해 가져왔던 스케치북의 장들을 하나 하나 뜯어내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마지막 남은 장 수가 6장이었다. 이거 의도한 거냐는 형의 물음. 아니 전혀. 나도 신기해.
초등교사인 동행 누나는 익숙한 듯 예쁜 글씨체로 하트안에 이름을 써넣어 한 장씩 나누어 준다.
그리고 나는 서로의 삶의 자산이 될(아주 조금이나마 그렇다고 믿는) 칭찬과 솔직한 생각들을 담아냈다. 지금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들이 나에게 써준 말들만 기록으로 갖게 되었을 뿐이다.
쓰고 있으면서도 더 쓰고 싶었다. 함께한 기억이 좋은 만큼 마음이 흘러넘쳤던 것 같다.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느낄 때 그 어느때보다 확실하고 즐거운 단합을 이루어 왔지 않았을까?
근데 마지막 동행 친구에게 글을 쓰면서 열이 다시 나는 걸 느꼈다. 아까보다 좀 더 심해진 거다. 이건 뭐지 싶어 주변에 상태를 알리자 동행누님이 자가키트를 꺼내주었다. 어차피 한국가서 PCR검사를 할텐데 저걸 검사한다고 지금 할수 있는게 없지 않겠냐고 묻자, 상태를 확실히 아는 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속으로 생각했다.
코를 찌르고 결과를 보니 아주 옅은 두 번째 줄이 나타나고 있었다. 거의 안보이다시피 한 줄이었기에 "에이 아닌가보다~" 하고 정신 승리를 해버렸지만, 주변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테스트기에는 아주 옅게 나와도 양성이라고.
뭔가 그때부터 나의 열이 더 심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열이 나든 안나든 비행기를 타고 귀국을 해야 한다. 코로나든 아니든 일단 입국에 성공해야 한다! 아니면 오버 좀 보태서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라. 난 바로 이튿날부터 일을 해야하기에.
어쨌거나 식사와 커피 한 잔까지 마치고, 하고싶은 것까지 다 끝내고 우리는 입국 수속 절차를 밟았다.
기타를 멘 내 모습에 파손우려가 있으니 포장을 해오라고 하더라.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짐을 부치니 마치 여행동안 혹사(?)당한 기타를 잠시 봉인해서 쉬게 해주자는 취지 같았다.
그리고 짐검사. 보조 배터리를 또 까먹고 짐에 부쳐버린 나는 불려가서 칭칭 감았던 테이프를 다시 뜯고 꺼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공항 직원들(영어를 다들 못하시더라)에게 긍정/부정의 제스처만으로, 다른 위험한 짐은 없냐고 다그치는 목소리를 상대하여 겨우겨우 통과해내고 돌아왔을 때 나는 여러가지로 확실히 지쳐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절차를 끝내고 펼쳐진 면세점! 몽골에서 유명한 캐시미어와 보드카와 초콜릿을 살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다. 나는 남은 돈을 탕진하자는 생각으로 아버지 드릴 보드카와 내가 먹을 주스 하나를 샀다. 그러 나니 수중에는 남은 돈이 0원이었다. 잘 된 일어었다! 몽골의 돈 단위인 투그릭은 한국에서는 환전이 불가능에 가깝다. 나중에 듣기로 우리 팀에서 총무를 해준 튼튼 진이는 남은 몽골 돈을 아직도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고 한다.
각자 원하는 기념품들을 구매하는 현지의 진짜 마지막 쇼핑을 마치고 돌아갈 일만 남았다. 몸 상태는 메롱이지만 그래도 남은 영혼의 기운을 끌어모아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남기자.
그리고 탑승. 단순히 한국이 아닌, 현실로 돌아갈 시간. 나는 따로 앉아 그동안 재밌게 보던 드라마의 최종화가 끝나고 TV를 끈 것 처럼 멈춘 시간을 맛보았다.
인천국제공항 도착!
기내에서는 즐거운 여행 되셨냐며 다음번에도 찾아달라고 방송을 보내었다. 네 즐거운 여행이다마다요. 왜 근데 웃음을 못짓겠지.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 입국수속을 밟으러 가는데 열감지카메라에 내가 잡혔나보다. 갑자기 불림을 당하고는 열을 재더니 온도가 38도가 넘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따로 다른 직원들에게 불려가 신상정보를 적고는 정황을 물었다.
"바로 PCR 검사를 하셔야 합니다. 결과는 6시간 뒤에 나올텐데, 검사받고 가시려면 누군가 자가용으로 픽업을 오셔야 해요. 아니라면 대중교통 이용은 불가하기 때문에, 따로 격리되어 결과 확인 후 귀가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깐깐한 마지막 관문에서 난 걸려버렸다. 대중교통을 타면 다른 사람에게 옮을까봐 그런거구나.
근데 난 지금 집에 너무 가고싶은데. 세면도구나 용품들은 거의 다 쓰거나 잃어버린지 오래다.
일단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시골에 계신댄다.
가장 유력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희망을 잃고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몇명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결국에 한명이 데리러 온댄다. 자기 차 없지만 차까지 빌려서!
인천공항까지 픽업을 온다는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친구에게는 물론, 이런 말도 안되게 고마운 친구를 둔 나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그나저나 웬걸, Rain누나가 이쪽으로 걸려 오는게 아닌가. 날 구하러 왔다기보단 잡혀온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 누나도 기침하고 열이 좀 가라앉지 않았다는 말을 여행 중반에 조금 했었어서(심하진 않았다), 함께 감지카메라에 걸려버린 거다.
이러면 안되는데 뭔가 동지가 생긴것 같아 반가워졌다. 헤헤.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그 항공편의 여행객들의 입국수속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한번에 데려갈 작정인가 보다. 이게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한 나는 나머지 4명에게 카톡으로 "먼저 가.." 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어딘가로 따라(끌려)가서는 코찔림을 당했다. 나는 데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는 얘길 하고는 찔리고 바로 짐을 찾으러 가려 했다. 앗, 그전에 함께 걸린 Rain누나는 그냥 결과 나올때까지 기다린댄다.
픽업 오는 친구에게 누나까지 데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쯤에서 뜨거운 안녕을 해야했다. 코로나로 의심받는 여행객과 방역복은 입은 검사 담당자들 사이, 그 멋쩍고 애매한 분위기에서 나는 맘껏 표현하지 못하고 담에 또 보자는 민망한 웃음과 함께 인천공항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거의 1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공항에서는 짐찾으러 가라고 전화까지 왔다. 사람 한명 없는 수하물 찾는 구역. 멈춰있는 컨베이어 벨트와 공허감. 마치 사람이 다 빠져나간 텅빈 무대를 관망하는 것 같은 얕은 허무함을 느꼈다.
그리고 덩그러니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 구석에 웅크려 있는 백팩과 봉인된 기타. 마치 땅을 보며 엄마가 언제 올까 오랫동안 기다리던, 긿을 잠시 잃었던 아이 같았다. 백팩을 들쳐매니 아차, 이 기타의 봉인을 해제해야 한다. 손잡이나 가방끈이 모두 꽁꽁 테이프로 싸매어져 이대로 들고갈순 없기 때문에.
몇 안되는 사람 중 공항 담당자로 추정되는 이에게 다가가 "칼이나 가위 있나요?" 물어본다.
약간 예민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공항에서는 위험한 물건 취급 안합니다."라며 눈도 안마주치고 대답하는 직원분.
평소같으면 타격이 1도 없겠지만, 괜히 얄미워지는 단호함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빨과 손톱과 힘으로 그 봉인을 해제하기로 했다. 바닥에 앉아, 뽁뽁이와 테이프로 대여섯 바퀴는 감겨진 그 기타의 껍질을 벗겨낼 때의 나의 감정은 '서러움'이었다. 당연히 떼는 과정이 힘들어서도 있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신체의 원시적인 방법만을 이용하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뜯어내는 그 모습을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뭐 그렇다고 운다거나 감정이 격해지진 않았다. 그냥 서러움을 적당히 느끼며 나는 기타를 본모습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친구가 오려면 시간이 꽤 남았다.
나는 배고픈것은 둘째 치고, 갈증이 나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한국적인 음식인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2~3 편의점을 돌아다니니, 뜨거운 물은 커녕 서서 먹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조차 없더라. 백팩과 기타를 메니 돌아다니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식당가를 가자니 그렇게 헤비하게 먹고 싶진 않다.
옛날에 혼자 여행할 적에 이런 원초적인 욕구 해소를 위해 고생한 경험이 많이 있다. 비용과 내가 원하는 것을 저울질하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려는 태도. 그 사이에 지쳐가는 나. 한국에 돌아왔는데 잠시 혼자만의 여행이 또 시작된 거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마지막 남은 편의점으로 갔다. 그곳엔 앉아서 먹을 데가 있었다!
여전히 뜨거운물은 없었지만 전자레인지가 있었기에, 생수를 사서 부어 레인지에 데워 먹기로 했다.
나는 짐을 옆에 놓고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육개장을 안먹던 국물까지 모두 마셔버렸다.
친구가 온다던 시간보다 좀 일찍 밖으로 나왔다. 차가 오면 바로 타는 게 좋기 때문이다.
몽골은 참으로 건조했는데, 한국은 여전히 습하다.
나는 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돌 위에 걸터앉아 우선 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정했다. 이런 고생 끝에 집에 갈수 있게 되었다고.
진이는 맞지맞지 하며 사투리를 섞어가며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 친구차가 이윽고 도착하고는 환희의 감사인사를 전하고, 근황토크도 하고, 여행 이야기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곧 토마스에게 전화가 오더라.
형 몸은 괜찮아?
아니. 죽겄다.
마지막까지 참 다이나믹하게 여행하네 형!
잠시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목소리 톤은 진심이었고 여러 의미가 담긴 그 말에,
아픈 와중에도 소리를 내어 웃었더랬다. 그래, 그 말이 나에게는 이번 여행의 최고의 요약문이다.
그리고 스윗홈에 도착하게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짐정리를 하는 데에 익숙한 나임에도,
가방에서 선물들과 빨랫감들만 간신히 내놓고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와 합체하였다.
마지막에 크게 아프다고 해서 내 여행이 얼룩진다고는 절대 생각 안한다.
다만 감상이 사라지고 순간의 고통이 나의 유일한 과제로 변할 뿐이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헉이형과 긍졍누나에게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는
그동안과는 사뭇 다른 깊이의 신나는 잠으로 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