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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Aug 08. 2021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시(詩)

내 안의 살아있는 펜 한 자루가

펜촉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춤을 춘다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오뚝이처럼 이리저리 기울어지며

벅차오르는 춤을 춘다



양지로 나오길 내심 바라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멋진 그 춤들 중 대부분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관객들은 떠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가슴팍을 뚫고 나오는

달구어진 펜촉의

날카로운 따스함은



나의 손끝과 발끝으로 퍼져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자 이제,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었다.




뜨거운 펜촉을,


말처럼

글을 건네고

영화 같은

시를 보여줄


서툰 기대감을,



부드러이 활시위에 얹어

쏘아 낸다




손을 놓고 난 후

찰나의 스침이

제대로 겨누었다는

확신을 준다.



운 좋게도

훅, 하고

너의 가슴팍에 명중.



펜과 활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다시

수 천 번의 춤사위 중에서,

수 백 번의 펜촉의 용솟음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활시위를 당기고,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잡고

마지막 심호흡을 가다듬고

수 십 번의 펜촉을 떠나 보내며



기약 없는 시간 속

수많은 밤들과의

사귐과 헤어짐을 마주하겠지






반대로

누군가의 활시위로부터

나의 몸통을 감싸는 살결에 꽂혀 버린

펜이라는 화살들이

남들보다 더 많아져 버려서일까.




여전히 내 맘속에는

길고 짧은 만년필들이

꿈틀거리는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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