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살아있는 펜 한 자루가
펜촉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춤을 춘다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오뚝이처럼 이리저리 기울어지며
벅차오르는 춤을 춘다
양지로 나오길 내심 바라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멋진 그 춤들 중 대부분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관객들은 떠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가슴팍을 뚫고 나오는
달구어진 펜촉의
날카로운 따스함은
나의 손끝과 발끝으로 퍼져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자 이제,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었다.
뜨거운 펜촉을,
말처럼
글을 건네고
영화 같은
시를 보여줄
서툰 기대감을,
부드러이 활시위에 얹어
쏘아 낸다
손을 놓고 난 후
찰나의 스침이
제대로 겨누었다는
확신을 준다.
운 좋게도
훅, 하고
너의 가슴팍에 명중.
펜과 활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다시
수 천 번의 춤사위 중에서,
수 백 번의 펜촉의 용솟음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활시위를 당기고,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잡고
마지막 심호흡을 가다듬고
수 십 번의 펜촉을 떠나 보내며
기약 없는 시간 속
수많은 밤들과의
사귐과 헤어짐을 마주하겠지
반대로
누군가의 활시위로부터
나의 몸통을 감싸는 살결에 꽂혀 버린
펜이라는 화살들이
남들보다 더 많아져 버려서일까.
여전히 내 맘속에는
길고 짧은 만년필들이
꿈틀거리는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