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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Dec 03. 2021

옛날TV 감성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되었을 적, 나는 할머니집에 가서 TV 보는 걸 좋아했었어. 우리집은 케이블 연결이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가면 엄청 다양한 채널을 부모님 잔소리도 없이 볼 수 있었거든.


 그 중 내가 한 초등학교 고학년때~중학교때 할머니집에 방문했을 때, 엄마 아빠가 모임에 가셔서 거의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방안에서 TV와 함께 밤을 샐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지. 투니버스와 JEI 채널을 오가며 각종 애니매이션(특히 스폰지밥) 나오는걸 봤었지. 평소에 집에서는 케이블 연결이 안되어서 13번 채널에서 해주는 '네모네모 스펀지송' 에 익숙했는데, 케이블에서 '보글보글 스폰지밥'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뭔가 낯설었던 느낌이 남아있네. 아무렴 좋았어. 지금보면 유쾌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그 느낌이 왜 그리도 끌렸는지는 잘 모르겠어. 덕분에 나는 중학교 때 스폰지밥 필통을 사서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었지.



https://www.instiz.net/pt/4381616








 그러다 12시가 넘어가고,  '결혼은 미친짓이다' 라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OCN에서 해줬던 것 같아. 고백하자면 그 시간대에 TV를 보고 19세 이하 관람불가 컨텐츠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 같아. 구불구불 감기려던 눈을 이기고 혼자 뭔가 너무 신기해서 다 보고 끝나고도 계속 채널을 돌리며 새벽에 잠들었던 기억이 나. 둥그런 모니터에 초록색 채널 번호가 뜨는 조그만 케이블 TV감성. 친구가 말하길 '기분좋은 공허함'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 기억 저편에 있던 조각이 떠오르네. 채널 번호가 올라갈수록 지지직 거리는 TV 화면이 나온다. 또는 화면조정. 어찌 보면 정말 모든게 끝나버린 것 같은 오싹한 느낌도 드는, 
























 하지만 이내 채널을 한바퀴 돌려 6번, 7번, 9번, 그리고 11번, 13번으로 돌아가며 생겨나는 안도감. 튀어나올 듯한 모니터 안 블라블라 잔잔히 떠드는 TV소리에 그 어느때보다 포근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전원이 꺼지며 하얀 빛의 화면이 가로로 잠시 압축되었다가 사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고요함. 평범한 듯 파도 없는 물결과 같은 편안함.






옛날 TV 감성. 다시는 느낄수 없겠지. 그걸 깨닫고 있기에 그리워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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